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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r 18. 2017

영화면 좋겠다.

지하철 생활

 지하철 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매 순간이 악몽과도 같았던 필리핀 생활을 접고 들어오자마자 이곳 지하철 매장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개찰구를 통해 들어가고 개찰구를 통해 빠져나온다. 지하철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도 긴 지하보도를 따라 걷고 기다리고 뛰어다닌다.

 가끔은 공항을 방불케하는 애틋한 이별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반가움에 얼굴가득 미소가 떠나지 않는 재회의 광경도 목격된다. 어느샌가 매표소가 없어지고 무인 충전기가 들어선 기계 앞에서는 언제나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아 곤란해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외국인들이 보인다. 아직 이 동네가 낯선 우리에게 길을 물어보는 이들이 하루에 정기적으로 줄잡아 대여섯명은 빠짐없이 등장하고, 오만원권을 받아주지 않는 무인 자판기에 당황하며 만원짜리 환전을 요구하는 이들 또한 하루에만 대여섯건이다. 우리가 싸서 진열해 놓은 김밥은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에겐 그저 늘상 보이는 포스터 같은 것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듯 지나치지 못하고 빠짐없이 들르는 방앗간 같은 곳이 되기도 한다.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보며 시간이 임박해지면 사람들은 일제히 경주를 하듯 뛰기 시작한다. 우루루 한차례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지면 다시 반대편으로 도착한 이들이 개찰구를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우리는 의미없는 만남을 한다.


 평일과는 달리 한가한 어느 토요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아 실로 오랜만에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귓가에 흐르는 재즈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갑자기 스르르 눈이 감겨지며 마치 음표처럼 내가 떠다니는 꿈결같은 환상에 빠졌다. 여전히 열차의 도착을 알리는 땡땡 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은 바삐 매장앞을 지나갔다. 그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를 중심으로 한 이 조그만 공간은 슬로우 모션이 되고 매장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빠르게 편집되는 영화의 기교 같은 거.

그리고 음악이 끝났을때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것이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가 끝나는 막바지에 자주 나오는 흔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의 모습을 뒤로 하고 잠시의 장면전환 후 자막위로 흐르는 한 문장.

'5년후'

짧으면 6개월 후고, 보통은 2년이나 5년, 그보다 좀 지나치게 길다 싶으면 20년 후, 더러는 100년 후도 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뭐하다 끊긴 듯 찝찝하게 궁금하던 터라 그 자막이 그리도 반갑게 와 닿는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되는건데?

그 자막 뒤로 흘렀을 시간의 이야기들은 사실 그리 궁금하지 않다. 몇년 후의 결과를 보기에 앞서 그렇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시간들에 대해서까지 헤집어 볼라치면 번거롭기까지 하다. 대부분이 해피엔딩인 그 몇년 후의 드라마 막방 이야기들에서는 행복한 결말만이 부각될 뿐이다. 몇년간의 타국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선글라스를 쓴채 캐리어를 끌며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공항씬은 가장 흔한 '몇년후'의 엔딩씬 되시겠다. 열 몇시간이 넘는 기내에서도 쓰지 않았을 선글라스들은 왜 그리 쓰는 건지, 좁은 기내좌석에서 머리 부비며 불편하게 잠들었을 몸은 어쩜 그리도 패션쇼장 들어서듯 완벽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수 없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드라마 '몇년후'의 엔딩씬은 주인공의 성공이다. '몇년전'까지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고생사와 얽키고 설킨 인간관계들, 이어지지 않던 인연과 풀리지 않던 커리어, 이뤄지지 않던 사랑등은 그렇게 '몇년후' 공항 입국신에서 거의가 해결되고 해소되는 복선을 불러온다. 보통의 20부작 시리즈에서 18회나 19회까지 주인공의 파란만장 인생사에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런식의 '몇년후'의 행복한 공항 입국씬마저 없다면 기꺼이 드라마를 떠나보낼 기분이 들지 않을 것이다. 작가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그쯤되면 그건 그동안 드라마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같은 것일 게다.


 난 그 드라마의 '몇년후' 주인공이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시련들, 괜찮다가도 불쑥불쑥 기어나와 절망과 무기력이란 이름으로 나를 갉아먹는 이 고난의 시간들을 훌쩍 뛰어넘어 성공적인 그 '몇년후'의 내가 되었음 좋겠다. 그 엔딩을 향해 가야하는 시간들이 이처럼 막연하고 어렵고 길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영화이길, 하나의 스릴러 또는 새드, 비주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봐줄 수는 있는 정도의 로맨틱 영화이길 바래본다. 그리고 그 영화의 엔딩은 언제나 해피엔딩이 될거라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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