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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Feb 05. 2019

식당영업에서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

미디어 홍보는 약일까, 독일까.

 한때 요식업계에 있던 사람으로서 최근의 백종원의 골목식당 사태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왠만해선 인터넷의 댓글을 달지 않는데 처음으로 댓글이란 것도 달아봤다. 


사실 스브스에서 '골목식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했을때부터 이건 아니지 싶었다. 더구나 그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골목상권의 재벌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백종원씨라니 모순 중에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싶었다. 

그 사람의 입맛이 모든 기준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건 수많은 종류의 프랜차이즈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가 대중화된 입맛을 지향하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보면 오히려 대중들의 입맛을 획일화시키고 저급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의 퀄리티와 서비스에 먼저 신경써도 모자랄 판에 다른 곳, 그들이 영세하고 실력없다고 말하는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들에게 하는 솔루션이라는 것이 작금의 한국 경제에서의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 요식업계에 도움이 될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출연자들이 화제가 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과 잡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백종원씨의 솔루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층들에서도 갑론을박이 일어났고 일명 방송국놈들의 작위적인 편집으로 인해 피해를 겪었다는 사장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뒤늦은 폭로를 이해하는 글들도 있었지만, 급할때 단물 빨고 안되니 남탓을 한다는 악의적인 반응들도 만만치 않았다. 


예전 일이 생각났다.

첫 식당이었던 제주에서 어느정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할 무렵, 신문사에서 취재요청이 왔다. 지역 신문이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받아보는 취재 요청이었다. 며칠 전 그 신문사의 고위간부 한 분이 우리 식당이 맛있다는 소식을 어찌 듣고 직접 찾아오셨었다고 했다. 돈까스를 너무 맛있게 드셨고 이 정도면 지역맛집으로 소개해도 좋겠다 여겨 부서내 담당기자에게 취재를 지시했다 했다. 제주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내게,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해 풀죽어 있던 내게 그 소식은 참으로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일이었다. 따로 사진이 나가는 건 아니라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취재에 응했고 인터뷰는 담백하게 끝났다. 담당기자는 돈까스를 시켜 맛있게 먹고 값을 지불하고 갔다. 구독하던 신문도 아니었고 지역신문이라 어디서 파는지도 알수 없었는데 다행히 알바하던 친구가 동네에서 어떻게 신문을 구해 가져다 준 덕분에 기사를 볼수 있었다. 그냥 기사가 나왔나보다 하며 덤덤히 읽고 한켠으로 접어두는 내게 직원은

"사장님, 이거 확대해서 액자에 걸어놔야 하지 않을까요? 남들도 다 그렇게 하던데. 일부러 돈내고 기사내서 홍보하고 하잖아요. 우린 돈내고 한것도 아니고 먹고 맛있어서 취재한거니까 자랑스럽게 손님들한테 보여줘도 될것 같은데요."

"아이고. 낯간지러워서.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난 정말 그렇게 현수막 걸고 확대해서 액자걸고 하는거 너무 싫더라. "

그래도 그냥 넘기기에는 좀 허전해서 신문을 오려 계산대 옆 당시 간헐적 이벤트 소식을 전하던 판넬에 끼워두었다. 계산하던 손님이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하는 마음이었다. 우연히 보게 되면 그래도 좀 흐뭇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고 나름 추억도 될 것 같아서였다. 


 기사가 난 다음날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신문에서 보았다며 전화를 해오셨다. 위치를 묻고 한번 찾아오고 싶다 하셨다.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전화하신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지역신문이다 보니 유료고객보다는 노인정이나 복지회관 같은 곳에 무상으로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지로 신문에서 봤다며 찾아주신 분 중에는 휠체어를 타고 할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일부러 오신 할아버님이 계셨는데, 낮은 세개의 계단을 올라 들어설 수 있는 식당 입구에서부터 휠체어 오르기가 힘들어 나와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돈까스를 주문하신 두 분은 어찌나 천천히 뜨시던지 곁에서 뭐라도 챙겨드리고 친절히 해드리려던 나의 의도와는 달리 한없이 오래 계시는 통에 언제 가시나 하는 귀찮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냥 식사만 하시는게 아니라 사장인 나를 불러 언제부터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당신이 이곳 토박이로 몇년째이신지, 예전 이 동네가 어땠었는지 과거로 자꾸만 회귀하시는 통에 가뜩이나 일손은 없고 마음은 분주한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그렇게 지역신문에 난 효과는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신문에서 봤다며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기부를 하라는둥, 장애인인데 물품을 좀 사줄수 없겠느냐는 둥 어디서 어떻게 알고 안 받아도 될 전화들만 번거롭게 울렸다. 


 당시 경험으로 미약하나마 미디어에 노출된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때 방송작가를 꿈꾸며 아카데미에서 작가수업을 들었던 이십대 중반, 한참 잘 나가던 코미디 프로 작가의 수업이 있었다. 

방송인의 꿈을 안고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질문을 던졌다.

"방송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합니까?"

순진했던 우리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그게 기자든 작가든 방송인으로서의 기본이며 사명이라 생각한다고대답했다. 한없이 웃겼던 그의 코미디 작품들과는 달리 엄청 시니컬했던 그 작가는 역시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방송은 철저한 조작입니다. 카메라는 찍고 싶은 것만 찍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것만 찍습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건 찍지 않습니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면 되는 것입니다."

참 충격이었다. 저 사람은 방송국에서 얼마나 험한 일을 겪었으면 저렇게 불신이 가득한 것인가 안스럽기도 했고 순진한 우리들의 꿈을 짓밟는것 같아 비난도 했다. 손은 희극을 쓰고 있는데 표정은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산전수전 겪다보니 알겠다. 미디어는 진실의 힘이 없다는 것을. 미디어는 포장하고 확장하고 실어나르고 여론을 호도하고 입맛을 길들인다는 것을. 


 서울로 올라와 잠실에서 고로케집을 했을 때다. 문 열자마자 줄서기 시작했던 당시 우리가게는 그 여름 그 동네에서 가장 핫한 곳이었다. 갓 튀겨진 고기 고로케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섰고 촘촘히 들어선 상가내 점포들은 장사에 방해된다며 우리를 찾아와 항의하기 일쑤였다. 동네 커뮤니티에서는 우리 가게에서 줄 안서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며 팁이 올라오기도 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요리의 특성상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수 없었고 팔리고 나면 준비하는 시간을 위해 잠시 문을 닫은 채 작업을 해야했다. 다시 문을 열어도 금새 팔려버려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원망과 원성을 들어야 했던 정말 핫했던 그 때. 지나가던 어떤 이는 우리 가게를 보며 손님 줄 세우기 위한 작위적 방법이라며 우리를 마케팅에 도가 튼 사기꾼으로 몰기도 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던 정말 뜨거웠던 그 여름, 그날도 어김없이 문을 닫고 분주하게 고로케를 만들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생생정보통의 작가라고 했다. 소문 듣고 전화했다며 방송제안을 했다. 당시 코너제목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대박난 가게의 비법을 찾는 컨셉이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나중에는 하루치 매출을 공개하는 방송을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순간 아주 잠깐 고민했다. 생생정보통은 나도 즐겨보던 방송이었고 방송의 파급력이 어느정도는 있을만한 프로였다. 내가 먼저 제안한 것도 아니고 방송국쪽에서 먼저 제안한거니 어찌보면 기회중에 기회일수도 있다 싶었다. 솔직히 방송욕심도 조금은 있었다. 작가는 우리의 하루 매출을 묻더니 금새 한달 매출로 산정하면서 그 매출이 나오는건 맞지 않느냐 했다. 현재 하루 매출로 보면 맞긴 맞는데 아직 한달 매출은 안나와봤으니 모르겠고, 더구나 일년 매출이라고 하면 더더욱 알수 없는 먼 얘기였다. 종종 방송에서 대박난 가게의 하루 정산 매출을 보여주고 자막으로 처리하던 일년 매출방법이 떠올랐다. 그땐 방송을 보면서 저렇게 많이 버는데 왜 가게는 저리도 낙후되었을까 의문을 품었던 가게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쨌거나 우리가 나갈 프로는 아니었다. 

정중히 연락주셔서 감사드리지만 아직 체계가 없어 방송할 단계가 아니고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소위 말하는 대박난 가게라 할수도 없다고 말했다. 작가는 아쉬워하며 알겠다고 했다. 언뜻 들려오는 얘기로는 근방에 방송국 피디인가 작가인가 살고 있어 근방에서 핫한 곳은 금새 방송을 탄다고 했다. 결국 그 코너는 우리가 아닌 그 동네에서 멀지 않은 다른 고로케 가게가 방송되었다. 

옆에서 전화내용을 듣던 남편은 

"왜 방송한다 하지 그랬어. 나쁘지 않을거 같은데."

"아냐. 우리한테 도움이 될거 같지가 않아. 방송 알잖아. 방송 나가면 대단히 성공하고 잘되는 줄 알꺼고 이면에 분명 뒷말 많을 꺼고. 엉뚱한 곳에서 악의적으로 음해하는 세력들 나올꺼고.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그만큼 성공했다 말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

그때, 방송 안하길 잘했다고 난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방송을 했더라면 분명 훨씬 더 많은 골치아픈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억측과 오해들이 난무했을 거고 우리는 결국 지쳤을 꺼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던지는 가시같은 말들이란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특히나 지금처럼 영상매체가 대중화되고 시각적 표현이 확실한 때에 미디어는 필요악일 수 있다. 미디어의 힘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자의적이 아닌, 방송국이나 타매체의 잣대에 의해 이용되어지는 미디어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시킬수 있다. 잘 이용하면 분명 약이 될 수 있겠지만 어설프게 대응하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이 미디어다.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고 해서 그것이 꼭 긍정적 관심이 될 수는 없다. 그 이상의 부정적 관심들이 무더기로 발생하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이다. 그 부정적 관심을 감당할 수 없다면 애초부터 미디어에 노출하지 않는 것이 우리같은 서민들에겐 제 명에 살 길이다. 


미디어는 진심을 담는다? 

글쎄다. 미디어는 그저 이용하기 위한 또 하나의 플랫폼일 뿐이다. 미디어는 철저한 포장이어야 한다. 특히 사업에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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