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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Feb 08. 2018

베트남 다낭

2018 우리의 겨울여행_1

 딸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 다낭으로 날아왔다.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을 잘 버텨준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 그리고 그동안 바쁜 이 엄마를 이해하고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뎌준 내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난 9개월여 동안의 지하철 생활을 통해 틈틈히 모은 적금을 과감히 깨고, 큰 아이는 알바로 번 돈의 일부를 보태고, 작은아이까지 할머니가 주신 용돈을 모아 보탠 돈으로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했다. 매장을 정리한 1월 말까지 빡쎄게 일을 하고 큰 아이의 주말 알바를 피해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우리는 짐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이곳 베트남 다낭으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엇보다 '휴식'의 의미가 컸다. 그랬기에 평소에는 뜨아해하던 숙박비에 나름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 지난 겨울이 너무 고되고 북극보다 더한 추위였기에 무엇보다 따뜻한 곳이 간절했다. 동남아 여러 도시중에 '다낭'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따뜻하고 산뜻해서 덜컥 예약했는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보니 온통 방송에 베트남 여행이 등장했다. 그만큼 지금 '다낭'은 한국인들에게는 핫한 곳인듯 했다.


사람많은 곳을 병적으로 싫어라 하는 내게 사실 이곳은 그리 탐탁치 않은 곳이라는 걸 여행 첫날부터 실감해야 했다.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다 보니 밤 비행기, 그것도 연착까지 해서 도착한 이 곳의 시간은 새벽 3시. 우리를 호텔까지 태워줄 가이드는 출국 전부터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오기 시작해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언제 나오느냐며 지속적으로 나를 보챘다. 공항을 나서고 나니 그의 재촉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던 것이


앗, 이곳도 겨울이었다!

따뜻한 나라 사람들이 추위를 더 잘 탄다는걸 필리핀에서의 경험으로 모르지 않는다. 공항을 나서는 우리를 반겨주는 바람이 동남아답지 않게 제법 쌀쌀했다. 기다리던 여행사 직원은 털이 곱슬곱슬 달린 겨울점퍼를 입고도 몸을 잔뜩 웅크리며 추워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을 제외하고 현지인들은 모두 경량패딩을 입고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 동남아의 겨울. 아, 그렇다. 필리핀에도 이 때즈음이 겨울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우리는 필리핀에 있었고 나름 겨울인 그때 아이는 물놀이를 거의 하지 못했었다. 추운 것까진 아니었지만 물놀이를 할 정도는 아닌 날씨였다. 게다가 어찌된 것이 국내여행에서는 항상 '럭키'하여 비가 오다가도 우리의 여행때는 해가 났었는데, 몇해 전 일본여행부터 우리가족의 해외여행때는 항상 날씨가 받쳐주질 않더니 이번 여행에서도 여행의 첫날부터 흐린 하늘과 마주하고 있다. 필리핀보다 베트남이 더 추운 듯하다. 기온도 그렇고 바람도 불고.


 새벽에 도착하면 현지에서의 하루는 항상 엉망이 된다. 생체리듬이 끊기고 비행기에서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현지에서의 적응을 위한 몸의 예민함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 하기 때문이다. 역시 출국 전 늦은 저녁까지 마신 진한 커피 탓에 내 몸의 신경세포들은 예민해져 있었고, 데리고 온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온 몸은 더욱 긴장돼 있었다. 비행기에서 책 한권을 다 보느라 잠들지 못했고 심상치 않은 기류로 인한 기체의 흔들림은 때 아닌 멀미까지 밀려와 새삼 이젠 해외여행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됐다는 사실을 몹시 슬프게 절감해야 했다. 전날까지 야근을 하고도, 며칠동안 술을 마셔도 비행기에 타서는 마냥 설레고 기운이 넘쳤던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펐고 겨우 사십 넘은 이 나이에 받아들여야 할 현실로는 믿어지지 않아 나는 또 한번 슬퍼졌다.


 자는 둥 마는 둥 다낭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고 다낭은 흐린 하늘과 부는 바람으로 나를 맞이했다. 두해전 이맘때 갔던 일본 후쿠오카 여행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막내아이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던 그 일본여행에서 어렵게 떠난 우리를 반긴 건 오십년만에 폭설로 인한 철도중단의 소식이었다. 3박 4일의 여행중 이틀을 예약했던 유후인까지 갈수 있는 모든 철도와 도로는 통제되었다. 결국 첫날부터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짐을 싣고 빼곡한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리며 숙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 되었었는데...

그때보다 상황은 나아 나름 럭셔리한 리조트에 아예 조식을 포함한 3박을 예약해서 왔건만 첫날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했다. '조식은 사랑'이라고 외치며 전날 잠들기 전까지 굶주렸던 배를 잡고 밥먹으러 가자며 더 자겠다는 큰아이에게 소리를 질러가며 서두르게 한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때 아닌 부지런함으로 아침부터 파도치는 바람부는 바닷가 산책에도 모자라 요 근래 움직이지도 않던 무릎을 높이 들어가며 리조트 둘레를 달리기까지 했던 나의 의욕은 아침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처음 마주한 이름모를 향신료 냄새에 바로 꺽여버렸다. 고수도 아닌 것이 줄곧 내 예민한 후각을 파고 들더니 그 다음부터는 멀쩡한 빵까지 입맛을 잃게 만들었다. 시들해진 나에게 연이어 부족한 수면을 요구하듯 쏟아지는 졸음과 체력의 한계까지. 그럼에도 어떻게 온 여행인데 첫날부터 늘어질 수 없다는 명제하에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아이들을 채근하여 시내투어를 나섰다.


 흐리고 추운 날씨에 우리 가족은 호텔에서도 연신 춥다며 궁시렁대다가 결국 한국에서 입고 온 옷차림 그대로 시내투어를 나섰다. 원래 패키지 여행을 혐오하다시피 하는 성격이라 모든 일정에 투어예약을 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도시라 들었고 휴양이 목적이었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다 보면 다 해결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나의 안이한 생각이었음을 첫날부터 우리는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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