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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Feb 11. 2018

베트남 다낭

2018 우리의 겨울여행_2


 숙소에서 호이안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택시를 알아보러 들른 리셉션에서는 다행히 호이안 시내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했다. 오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금액은 체크아웃할때 정산하면 된다 했다. 우리는 주어진 세개의 시간대 중 가장 늦은 저녁 9시 반을 예약했다. 시내투어니까 야경도 보고 밥도 먹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늦게 오게 될것 같아 별 생각없이 선택한 그 시간은 그러나 이후 우리의 엄청난 후회를 불러오게 된다.  


 아무 생각도 없고 정보도 없이 셔틀버스에서 무작정 내린 호이안 올드타운.

지난 일본여행에서의 불편함을 자각하며 유일하게 미리 챙겨온 포켓 와이파이를 믿고 우리는 시내투어를 시작했다. 큰아이와 나는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하며 망연히 낯선 도시에서 갈 곳을 찾았다. 그러나 이내 쏟아지듯 밀려드는 오토바이들과 이어지는 경적소리에 제대로 검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신호도 없고 차선도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 덩어리,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 관광객을 태운 씨클로까지 좁은 도로는 사람이 지나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에 시각과 후각, 청각까지 마비되는 느낌, 게다가 우리는 그곳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준비도 해 오지 않은 어수룩한 관광객이었다.


 인사동을 연상시키는 즐비한 앤틱상점들을 한가롭게 둘러보며 맛있는 쌀국수나 먹으리라 기대했던 내게 그 곳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골목을 돌아돌아도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기습은 여전했고 갈곳 몰라하는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급조한 바구니배를 타기로 하고 사람들에게 배타는 곳을 묻기 시작했다. 문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당췌 안 된다는 거였다. 난색을 표하는 그들을 붙잡고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결국은 핸드폰에서 찾은 사진을 보여준 후에야 그들은 그 배는 이곳에 없으며 그곳까지는 배를 타거나 택시를 타야하는 거리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 이럴줄 알았으면 출발 전에 한국에서 미리 투어를 예약하고 오는건데...'

뒤늦은 후회를 해보고 급하게 다낭카페 담당자에게 카톡을 날려봤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오가는 오토바이를 피해 움직이려는 찰나 빈 자전거를 끌고 오는 씨클로의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시내투어를 제안하는 그에게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며 바구니배를 타고 싶다고 하자 그는 우선 자기 씨클로를 타고 시내투어를 한시간 정도 한 다음 자기가 그곳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조건으로 30만동을 불렀다. 아직 베트남 화폐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십만동이 넘어간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뜻으로 들렸기에 가차 없이 돌아섰다. 그런 우리를 뒤따라오며 그는 집요하게 금액을 점점 더 내려 부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씨클로라는 것에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내 몸무게를 감당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데 그 몸을 태우고 이 매연 가득한 시내를 돈다는 것이 설령 내가 그 안에 타고 있다고 해도 편안하게 앉아 있을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게다가 택시로도 10여분을 가야하는 그 거리를 씨클로에 앉아 그들이 뱉어나내는 힘겨운 숨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을 자신이 없었다. 힘겹게 페달을 밟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연민과 애잔함, 나는 그런 것들이 싫었다.


 매정하게 발길을 돌려 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는 내 눈앞에 바구니배 사진이 보였다. 현지인이 하는 여행상품 패키지 가게인 듯했다. 굳이 없는 주인을 옆 가게 여자가 불러오면서 우리는 흥정을 시작했다. 이것저것 갖다 붙여 패키지로 백몇십만동을 불렀고 바구니배만 탈거라는 단호한 말에 다시 선심쓰듯 우리나라 돈으로 인당 이만원씩을 불렀다. 왕복 택시비까지 생각하면 체험비로 그리 비싸지도 싸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그러마고 했다. 젊은 남자는 신나서 전화기에 대고 베트남어로 쏼라쏼라 차를 부르고 그 사이 핸드폰을 열어 블로그를 확인한 내 눈에 이럴수가, 인당 5달러에 바구니배를 탔다는 후기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환율을 따져도 6천원도 안되는 금액에 배를 탔다면 택시비까지 더해 봐도 지금 부르는 가격과는 터무니없는 차이가 났다. 순간 제정신을 차린 나는 주려고 했던 돈을 다시 움켜쥐며 미안하지만 취소하고 지금 좀 가야겠다며 얼버무렸다. 내가 얼마나 그들에게 한심하고 재수없는 여행객이 되는 순간인지 모르지 않았다. 뒤돌아나오는 뒷통수가 보통 따가운 것이 아니었지만 낯선 곳에서 눈 먼 장님이 되어 그들의 호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호구가 된 건 지난 필리핀에서 당했던 것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을 재촉하여 데리고 나온 후 드디어 택시가 보였다. 여전히 핸드폰의 바구니배 사진을 보여주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한 후에도 바가지가 도처에 도사린다는 인터넷상의 말들에 미터기만 죽어라 노려봤다. 관광객이라고 가까운 거리를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속에 5분이면 된다던 애초에 말과는 달리 15분여를 달려간 곳은 한눈에도 외진 좁은 길이었다. 이러다 이상한 곳에 데려가는 건 아닌가 겁에 질릴 무렵 바구니배의 사진과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고 친절하게도 젊은 택시기사는 차에서 내린 우리를 보트 담당자에게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이후 영어와 한국어가 엉망으로 뒤엉킨 베트남 억양의 여자는 낚시와 요리체험까지 섞인 투어를 빠른 말로 권했고 단박에 거절하는 내 대답에 곧장 바구니배에 우리를 탑승시켰다. 가뜩이나 흐린 날씨에 바구니배가 떠다니는 강물은 더욱 지저분한 회색빛으로 보였다. 노를 저어주는 사공은 내 아빠 또래의 할아버지였는데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은 추워진 날씨에 허옇게 갈라져 있었고 고정화된 투어의 아이템인듯 코코넛잎을 꺽어 만들어준 메뚜기는 신기하다기보다는 내게는 자꾸만 애잔하게만 느껴졌다. 다닥다닥 붙어 떠다니다시피 하는 배는 생각보다 긴 한시간여를 채웠고, 중간에는 바구니배들이 모두 모여 왁자한 가운데 중앙에 있는 뱃사공에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내 젊은 그 사공은 배에 위태하게 서서 연신 뱅글뱅글 배를 돌려가며 묘기 아닌 묘기를 보여주는데 바람잡이인듯 주변에 있던 뱃사공들이 노에 지폐를 올려 묘기를 보여준 사공에게 건네주기 시작했다. 이후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의 돈이 노를 통해 전해졌고 뻔히 보이는 호객행위에 나는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 관광이란 상품 자체가 여행객들의 들뜬 심리를 뻔히 이용한 호객행위에 기반을 두고있는 건 맞지만 그냥 그 회색빛 강물위에 흐르는 남루한 그들의 비굴함이 왠지 싫었다. 오히려 옆 배에 타고있던 서양 젊은이들이 강남스타일에 맞춰 배가 흔들릴 정도로 반응하는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차라리 돈을 주라면 나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던 그들에게 주고 싶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역시 이런 식의 관광은 냉소적인 나와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이게 뭐라고 그 고생을 하며 힘들게 온건가 싶어 머리가 다 아팠다. 그럼에도 나 혼자 온 여행이 아니기에 작은 아이를 생각하면 추운 날씨에 수영도 할수 없는 리조트에 마냥 있을 수만도 없었다. 첫날부터 지독한 딜레마가 시작된 것이다. 나로서는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온 여행인데 첫날부터 이런 강행군과 극기훈련도 없었다.


 우당탕 실수와 어이없는 일들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바구니배를 타고난 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잠시 또 혼란이 왔다. 여전히 흐린 하늘은 내 머리를 내리누르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는 눈꺼풀을 더욱 무겁게 했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리조트로 돌아가기로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도 한참이 남아 있었다. 다시 또 검색이 시작되었다. 당장 무언가를 좀 먹어야겠기에 맛집을 검색했다. 다낭에 있는 바빌론 스테이크라는 곳이 검색되었고 괜찮다는 평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근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로 다가가 호기롭게 "바빌론 스테이크 플리즈"를 외쳤다. 젊은 기사는 우리가 다가가자 기뻐하며 "오우, 바빌론. 오케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에 난 역시 세계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은 다르다며 현지인들에게도 엄청 유명한 맛집인가보다, 역시 이곳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며 내 자신을 내심 대견해했다.

 택시는 좁은 길을 거침없이 달리더니 이내 시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어느 럭셔리한 건물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의외로 가까운 거리에 나는 호이안과 다낭은 그리 먼곳이 아닌가보다 생각하며 미터기에 적힌 요금대로 7만동을 지불하고 '빠이'를 외쳤다. 무엇보다 회색빛 차분하고 모던한 건물이 맘에 들었다. 계단을 오르며 뒤따라오는 큰딸아이에게 흡족하게 말했다.

"엄마는 역시 지저분한 곳은 좀 안 맞는것 같애. 난 이런데가 좋은데 아까 거기는 왜그리도 마음이 안 좋던지.. 이런 곳이 딱 엄마 취향이잖아. "

출입문을 열어주는 말끔한 복장의 지배인인 듯한 사람은 우리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더니 프론트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역시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라 배려와 서비스가 좋군.'

나는 별 의심없이 호기롭게 "스테이크 플리즈"를 외쳤다. 하지만 프론트에 있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내가 레스토랑이라고 하자 아~ 하며 이내 우리를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일반음식점 같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스테이크집 특유의 고기굽는 냄새가 전혀 없었다. 여전히 스테이크를 외치는 내게 그들은 메뉴판을 보여줬고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레스토랑 이름을 보았다. 그곳은 바빌론과는 전혀 다른 이름의 레스토랑이었고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나는 이곳이 바빌론 스테이크집이 아니냐 재차 물었다. 프론트 담당자가 다시 왔고 그는 이곳은 '파빌리온 리조트'이며 숙박을 원하는 것이냐 다시 물었다. 그제서야 딸아이와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적어도 이곳은 스테이크와는 거리가 먼 호텔이며 우리는 이름이 비슷한지도 의심스럽지만 분명 내 발음을 완전히 오해한 택시운전사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이곳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당함은 우리만의 몫은 아니었다. 프론트의 남자는 조근조근 차분한 영어로 나에게 어디로 가길 원하냐며 택시를 불러주겠다 했고 다낭에 있는 바빌론은 거리가 멀어 택시비가 많이 나올거라 설명해 주었다. 저녁이면 다시 호이안에서 약속한 셔틀을 타야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몇번의 망설임끝에 결국 호이안 시내에 있는 나름 괜찮다는 식당을 추천받고 예약없이는 힘들거라는 우려의 말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곳으로 가겠다 했다. 어이없는 짧은 인연을 뒤로 하고 새로 온 택시에 몸을 구겨넣으며 이전에 헛되이 준 7만동이 아까워 속이 쓰렸다. 굳이 한국돈으로 환산하니 3천 5백원. '그래. 그 정도는 뭐 버릴수도 있지' 애써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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