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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Feb 12. 2018

베트남 다낭

2018 우리의 겨울여행_3

 다시 도착한 호이안은 여전히 시끄럽고 매연과 담배연기속에 머리가 띵해왔다. 그럼에도 고픈 배를 위해 나름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들었고 예약없이도 안내를 받을수 있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속에서 주어진 메뉴판은 뭐가 그리도 많은지 당췌 뭐가 뭔지 알수가 없었기에 또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하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추천한 메뉴를 주섬주섬 짚어가며 주문을 했다. 나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뭐 그리 맛이 있는 맛도 아닌 그냥저냥한 맛이었다. 그나마도 뭔가를 뱃속에 집어넣으니 기분도 좀 좋아지고 머리도 차분해지는 것이 살것 같았다. 여전히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우리는 길거리에서 외치는 마사지 삐끼에게 가격을 흥정하고 마사지 샵으로 안내받았다. 우리같은 한국사람들이 입구부터 바글바글 앉아 저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발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온통 어딜가나 한국사람이었다. 젊은 청춘들, 연인들, 가족들, 중년의 남자들, 여자들. 다낭은 한국의 또 하나의 도시같았다. 그냥저냥한 마사지를 받고 여전히 오들오들 떨며 이 하루가 이리도 길수 있나 의심해보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하나둘 켜지는 상점의 등불들, 속속 모여드는 거리의 야시장을 보며 일찍 돌아가려는 마음을 접고 그래도 야경을 보기로 했다. 그나마 받은 마사지에 몸이 조금은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저녁의 호이안 올드타운은 또다른 모습이었다. 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시내를 관통하는 강물에 배들이 띄워지기 시작하자 소원을 비는 촛불이 켜진 종이배가 등장했다. 강을 향해 난 가게들은 저마다 고운 등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어느 카페에서는 통기타 소리에 맞춰 청량한 목소리의 라이브가 시작됐다. 낮을 가득 채우던 오토바이도 사라지고 더불어 경적소리도 매연도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광객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거리에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차려입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싱그러움을 발산하고 관광온 노랑머리의 서양인들도 편안한 얼굴로 노천까페에 앉아 맥주와 와인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다. 너무 아름다웠다. 한낮의 저주가 밤이 되자 마법이 풀려 천사의 도시가 된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나와 딸아이들은 아름다운 불빛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피자를 먹으며 사진을 찍었다. 엉망이었던 하루가 그나마 조금은 행운의 여신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한 것 같아 움추렸던 마음도 펴지는 것 같았다.

 등불도 볼만큼 봤고 배도 채웠고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셔틀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향했다. 세 타임중에 우리가 예약한 마지막 타임은 아니었지만 올때 타고왔던 큰 승합차를 생각하면 우리가 탈 자리는 충분히 있을거라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내렸던 옷가게를 다시 찾았을때는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고 이제는 쉴수 있다는 안도감에 우리 모두 기쁨의 한숨을 쉴수 있었다. 잠시후 우리가 머무는 숙소의 이름을 새긴 차가 도착했고 기다리던 서양인 커플과 우리는 바로 차에 올랐다. 아침에 올때 탔던 차보다는 작은 차가 왔기에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시간을 바꿨다는 내 설명에도 흔쾌히 타라는 운전기사의 말에 아이들과 뒷좌석에 앉아 안도할 수 있었다.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또 한 커풀이 왔고 이제 좌석은 모두 꽉 차 더이상 사람을 태울수 없게 되었음에도 기사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안불안한 마음에 뒷좌석에서 연신 기사눈치만 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기사는 느릿느릿 안경을 꺼내 코에 걸치더니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예약표와 맞춰가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베트남어로 뭐라뭐라 통화를 했다. 출발시간이 다 되어 더이상 탈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이제 고생끝이라며 안도하려는데 저만치서 두명의 한국인이 오더니 차량을 보고 반색을 한다. 이내 좌석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두팔을 벌리며 헐리웃 액션을 취하자 기사양반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차를 돌아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꺼야. 이건 아닐꺼야. 아니어야만 해. 난 오늘 너무 힘들었어. 그럴리 없어'

기사가 뒷문을 열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 일이분의 시간이 마치 천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눌한 영어였지만 분명 그 말은 미안하지만 우리가 내려줘야겠다는 것. 그리고 원래 약속했던 다음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아..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너무 피곤했고 이노므 호이안이란 작은 시내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있었으며 남은 두시간을 더 있으라는 건 형벌과는 같은 일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지침과 피곤함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어쩔수 없는 상황속에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알겠다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갈테니 대신 나중에 청구할 금액에서 편도분만 계산해달라고 했다. 난 그것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줄 알았다. 뭐 그리 대수라고 그 정도는 해줄수 있는것 아닌가. 아마도 택시비가 더 나올 터였고 그 금액은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었다. 그러나 호텔측과 통화를 한 기사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꿔주었고 데스크의 여자는 예약을 취소할 수 없으며 택시를 타고 오더라도 약속한 비용은 모두 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예약을 취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고 자기들이 먼저 차를 빌릴때 비용을 지불했다는 내용 같았다. 말해봐야 안될 뻔한 소리에 결국 나는 알겠다 하고 두시간후에 다시 이곳에서 기다리겠다 했다. 몹시 미안해하며 기사는 손님들을 태우고 사라져갔고 간신히 힘을 내어 아이들에게 다시 시내로 들어가자고 씩씩하게 말했지만 이미 큰아이는 잔뜩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럴만도 했다. 시내는 어두워지고 있었고 낯선 곳에서의 첫날은 이미 충분히 힘들었다. 그럼에도 택시를 타고 들어가기에는 여러모로 낭비되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결국 가까운 커피샵에 들어가기로 하고 보이는대로 괜찮아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커피와 레모네이드 한잔을 주문했다. 들어갈때 보니 이미 테이블에 와인잔과 식기들이 셋팅되어 있기에 음식점인것 같아 커피를 마시고 갈수 있겠냐 물어보았었다. 흔쾌히 그러라 하기에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좀전까지 마시던 커피를 또 시켰던 것인데 어째 커피와 음료를 놓고 핸드폰에 열중해 있는 우리를 보는 종업원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급기야 들어온지 20분도 되지 않았는데 계산서를 테이블에 소리나게 놓고 갔다. 주변을 보니 대부분 핏자나 파스타, 와인을 마시는 손님들이었고 나도 음식점을 해본 사람으로서 음료 두잔에 시간을 때우겠다는 우리가 탐탁치 않을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입장에서 구태여 서둘러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고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고 잠시 쉴곳이 필요했다. 잔뜩 심통이 난 큰 아이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고 안스러운 막내는 그나마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며 지친 와중에도 호기심에 빛나는 눈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종업원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조금씩 나눠마시는 커피가 다 비워지기도 전에 심통이 난 종업원이 다가왔다. 빌지 갖다줬는데 봤냐는 말에 나도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졌다. 봤다고, 뭐 지금 계산하라는 거냐고, 나갈때 하면 될거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말하고 나서도 여전히 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먹은 저녁을 또 먹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은 다시 강쪽으로 나가보자며 테이블위에 음료값을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버렸다. 저 싸가지 없는 못생긴 종업원을 내 잊지 않겠노라 혼자 씩씩대며..



 이제는 손님이 제법 줄어든 강가에는 여전히 등불이 강물에 흔들리며 일렁였고 노랫소리가 더욱 운치있게 들려왔다. 강가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강물은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갑자기 모든것이 허망하게 밀려들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모든 아집과 욕심들이 다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정신없이 피곤했던 오늘 하루도, 원망이 가득했던 남편도, 요 근래 이 모든 고통을 나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던 한국에서의 생활들도 그저 한낱 가벼운 깃털처럼 생각됐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며 함께있는 이 모든 낯선이들 또한 밥벌이의 비루함과 모진 삶의 고통 속에서 견디고 버텨낸 이들이라 생각하니 사는 것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 하루 고군분투했던 나의 시간들도 역시나 버리지 못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웃음만 났다. 우리를 버리고 떠난 숙소의 셔틀도, 좀전까지 나를 갈구던 이름모를 종업원의 심술궂음도 그저 가벼운 헤프닝일 뿐이었다. 사는게 뭐그리 대단하다고, 나 혼자 뭘 그리 힘들었다고, 내가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내가 뭐라고..

해탈의 경지처럼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이들 역시도 그 곳에서 차시간을 기다리며 여유를 가진 듯 금새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지나 다시 셔틀은 약속한 장소로 왔고 우리는 나중에 숙소에서 먹을 컵라면까지 사들고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피곤한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지만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내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했고 침대에 누워 기절하듯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긴 하루를 뒤돌아보며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다낭에서의 첫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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