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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Feb 21. 2018

더글라스, 나와 같군요!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 '빅 퀘스천'

"내가 가진 생각들과 어쩜 그리도 다르지 않은가요?"

 

 '빅피쳐'로 많이 알려진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빅 피쳐'로 그를 알게 된 이후 수많은 그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의 해박하고 깊이있는 지식,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문체, 재수없으리만치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참으로 적절히도 인용하는 그의 문학성. 무엇보다 그의 작품속 주인공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내게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의 작품속 주인공들은 여러 험난한 고난과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현실을 인정하고 모진 비바람을 맞아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뒤돌아보며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비난하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의 글 대부분에서 내가 느낀 것들은 그러한 '자기 생에 대한 대한 주도성'이었다.

 그의 존재를 알리고 가장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던 '빅피처'에서의 변호사 '벤'에서 사진가 '게리'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랬고, 독일 이전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역사와 사랑의 이야기 '모멘트'에서의 '토마스' 또한 그러했으며 '템테이션'에서 위기에 처한 스타작가인 '데이비드'가 또한 그러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인 '로빈'이 남편 '폴'의 배신으로 위험천만한 일들을 겪게 되는 '비트레이얼'에서도 이렇게까지 주인공을 비참하게 만들어야만 했는가란 의문이 들 정도로 주인공을 비극으로 몰아넣음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평범한 한 여인의 삶에 어느날 드리워진 지난 과거의 먹구름을 시작으로 황색 저널리즘의 추악한 이면을 심도깊게 파헤친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서의 주인공 '한나'도, 딸아이의 죽음이라는 운명의 슬픔속에서도 결국은 자신을 잃지 않고 이겨내는 '리빙더 월드'의 '제인 하워드'도, 며칠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나 온전한 몰입을 경험했지만 현실과 타협한 남자에게서 배신감을 맛본 '파이브 데이즈'의 주인공 '로라'도 인생에서의 역경과 슬픔을 이겨내고 주도적으로 생을 이끌어나간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은 진득한 인생 이야기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배울 만큼 배운 엘리트 지식인들이며 특히 문학적으로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경우 대부분은 그들이 갖고 있는 광대한 지식을 통한 현학적 끌림이며 실존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주인공들의 대사가 작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주인공들은 여행을 즐겨하며 실존적 문제에 대해 관조적이고 시니컬한 논조를 유지하며 사랑보다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접근법을 보여준다.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만 주인공들은 절망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어서 다시 태양을 보고 내일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누구든 자신과 맞는 취향의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더글라스 케네디란 사람이 딱 그랬다.

그의 서늘하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론 인간적이고 따뜻한 작품세계가 좋았다. 요란하지 않으며 스토리에 집착해 너무 급하게 달리지도 않으며 적당히 생각하게 하고 적당히 고민하게 하며 적당히 궁금하게 하는 그의 글쓰기 기법이 좋았고 기존작품들과는 다른 결말에 신선함을 느꼈다. 아마도 이런 나의 편애는 항상 나를 고민하게 했던 부부의 문제, 일의 문제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그가 저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살아감에 있어 고민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사랑, 돈과 명예, 건강, 가족의 문제일테고 문학작품들 또한 그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소재의 공통점이라기 보다는 그 소재들을 대하는 '관점의 공유' 때문이라고 해 두겠다.


 그런 그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생각들에 관한 자전적 에세이를 냈다. (책을 낸지는 좀 된 것 같은데 내가 그 책을 서점에서 발견한 건 최근이다.)


빅 퀘스천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는 동안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의견들이다. 한번의 이혼을 경험하며 그도 많이 아팠었나보다. 이혼과정과 그로 인한 아픔들, 자녀들, 자신의 어린시절까지 자전적 이야기와 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기술한 책이다. 그에게 상처가 되었던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냉정하게 그려져 있다. 그가 알고 있고, 갖추고 있는 문학적 소양을 통해 인용한 뛰어난 작가들의 말들은 대단히 적합하고 인상적이서 나 또한 다이어리에 글을 옮겨 적어보기도 했다.

사는 건 사실 다들 비슷비슷하여 그 옛날을 살았던 뛰어난 작가들이나 나같은 서민들이나 고민하는 것들은 다 똑같았던 듯하다. 그런데 다 같이 겪는 그 아픔과 고민들 속에서 누구는 뛰어난 글을 통해 작가가 되고 누구는 작품을 보고 고개만 끄덕이는 독자가 된다는 이 현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문제들과 내린 결론에 대해 그는 보다 현학적이고 간결하며 설득력 있는 문체로 명쾌한 결론을 내 주고 있다. 시니컬한 종교적 관점, 결국은 아닌 사람과 지속하는 의미없는 결혼에 대한 냉정한 판단, 어찌보면 이기적일수도 있는 본인에 대한 분석 또한 객관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의 뛰어난 서술력은 읽는 내내 공감과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사는게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살아가는 것 자체는 원래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비극이 닥쳤을때 주저하고 움추러들 필요는 없겠다. 용기를 갖고 내 자신을 믿고 내 생각대로 나가다보면 좋은 날도 오고 보람도 느낄 때가 있고 그러는 거겠지. 사는게 크게 대단할 게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자고 보다 쿨하고 심플해지자고 요즘 나는 내게 말하고 있다. 지난 일들에 대해 아파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기보다는 훌훌 털고 일어나 뒤돌아보지 말고 다시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이번 생에 주어진 내 몫이라고, 투덜대지도 말고 크게 흥분하지도 말자고 나를 다독이고 있다. 그런 내 마음을 그도 이미 오래전에 알았던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의 백마디 말보다 수많은 떠들석한 현자들의 말보다 그의 냉소적인 자전적 글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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