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룩쥔장 Nov 14. 2017

그땐 그랬었지

벌써 일년

 그때 나는 필리핀이란 곳을 처음 다녀왔다. 필리핀에서도 일년 중 가장 좋은 날씨라는 십일월의 한낮은 그럼에도 27,8도 사이를 오갔었다. 그늘없는 곳에서는 뜨거운 뙤약볕에 땀이 흘렀고 차없이 걸어다니기에는 멀고도 힘겨운 길이었다. 3박 4일간의 필리핀 출장 겸 답사를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을 땐, 오노란 은행잎들이 거리에 우수수 떨어진 완연한 가을이었다. 먼지와 소음, 태양의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갑자기 차분한 북유럽에 온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정적이었고 사람들은 더없이 차분했으며 날씨마저 비가 온뒤 느껴지는 청량감과 차가움으로 제정신이 들게 만들었다.


 필리핀으로의 이사가 결정되고 난 뒤,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한국의 집은 내놓은지 하루만에 계약이 되었고 필리핀에서 살 집 또한 이틀만에 결정하여 계약금을 치뤘다. 한국에 돌아온 내 마음속에서는 이사와 관련한 그 모든 절차들이 이미 차곡차곡 수순을 밟고 있었다.

 큰 딸아이는 모든 원망을 내게 쏟아냈다.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날 더이상 미룰수 없어 얘기한 이사 이야기에 아이는 배신감과 분노로 이성을 잃다시피 했다. 그렇게 아이와의 냉정을 한달도 넘게 치뤘다. 저도 나도 서운함이 많았다. 구구절절 말하기에는 이미 우리는 서로가 준 상처로 신음하느라 말할 여유도 없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겨울을 알리는 건조함과 스산한 기운이 몰려왔다. 더불어 아이는 한국에 혼자 남겨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더욱 외로워하고 쓸쓸해하며 이 모든 것을 결정한 엄마인 내게 분노했다.

 

 이사하던 날은 십이월치고는 그래도 따뜻한 날이었다. 다행히 비도 눈도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낮게 깔린 잿빛 하늘이 불안하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아파트 팔층을 오르내리는 사다리차를 보며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어디로 갈지 모를 남은 내 인생에 지독한 불안과 회의를 느꼈다. 그럼에도 이 불안감은 기우일 꺼라며, 그동안 그 숱한 결정과 이사때마다 밝기만 하고 좋기만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노라 기억을 더듬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거라며 나홀로 위안을 했다. 모든 짐을 두번 세번 꽁꽁 싸서 국제화물로 보내고 난 텅빈 집은 공간감으로 작은 소리에도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텅빈 집에서 전기장판 하나를 깔고 최소한의 담요와 이불로 두 딸과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큰 아이를 잠시 머물 친구집에 데려다 주고 작은 아이와 나는 언니네로 짐가방을 옮겼다. 일주일을 조카와 언니와 함께 하며 앞으로의 기나긴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작은 딸아이와 나는 출국을 했다.


  올 한해 너무도 정신없이 달려왔던 내게 이 맘때가 되자 모든것들이 하나둘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하려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나둘씩 내게 스멀스멀 떠올라왔다. 강바닥에 돌을 달아 던져두었던 기억의 무게가 그 끝이 풀려 두둥실 떠오르듯이 떠밀려들었다.

아, 벌써 일년이구나..


 그렇게 작년 연말을 보냈었다.

그리고 일, 이월을 필리핀 앙헬레스에서 보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가고 싶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이란 참 무서워 다시 그때 즈음이 되니 그곳의 햇빛들, 소음들, 냄새들, 사람들이 생각난다. 무언가 어딘가 항상 들떠 있는 듯했던 그 곳.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곳의 기후 때문일 수도, 현지인들의 성향 때문일 수도, 도박과 여자 그에 따르는 부가적 사업과 잇권에 따른 인간의 바닥을 드러낸 민낯, 그 본능의 냄새 때문일 수도 있었겠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다시 우리가 돌아와 시작해야 했던 시간들. 추운 겨울을 지냈던 낯선 도시, 낯선 오피스텔, 낯선 7호선 지하세계에서의 겨울. 그때 우린 참 막막했고 그만큼 단순하게 살아냈다. 눈 감으면 잠들고 눈 뜨면 가게로 나가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그렇게 눈앞에 닥친 일만 했다. 더 앞을 볼 수도,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볼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과거를 기억할 필요도, 미래를 예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됐다. 우리는 좀더 단순해져야 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살아낼 길이었다. 그땐 그랬다.


 다행히도 그 시간들이 짧았기에 다행이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한동안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그 기억들이 찬바람 부는 요즘 하나씩 떠오른다.

광명시장을 돌아 오피스텔로 돌아오던 밤거리에서 내 손을 꼭 잡아 한벌뿐인 겨울잠바 주머니에 넣어주던 남편.

서글프게 올려다보던 하늘의 달.

떨어진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그 거리.

학교 기숙사에 가기 전, 처음 들러 하룻밤을 자고 갔던 큰 딸아이의 멀어지던 슬픈 눈.

 

지난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지금은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 앞 원룸에서 자취하는 딸아이에게 편의점 기프트콘을 쏘며 문자를 남긴다.

'날이 춥다. 따뜻하게 입고 든든하게 먹자. 편의점 음식 먹을 만하더라. 엄마도 요즘은 편의점 덕후.ㅎ'


그땐 그랬었다.

벌써 일년.


 

작가의 이전글 후룩쥔장의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