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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30. 2018

늪_1

기묘하고도 교묘한 보험설계사의 구조

그것은 왜였을까?
난 마치 마법에 홀려 향기에 이끌리듯 그렇게 그곳으로 빨려들어갔다. 


지극히 냉소적이고 그간 산전수전 다 겪어 왠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리라 자신했던 내가 말이다.


 올 봄은 내게 황홀하면서도 부끄러운 계절이 될 것 같다.

나는 이번 봄을 '보험'이라는 것에 올인하며 혼신을 다해 전념했다. 학교다닐 때도 흘려보지 않던 코피라는 것도 처음 흘려봤고 스스로 가한 자기통제의 스트레스로 인해 두달 동안이나 생리도 끊겨가며 내 인생이 달라질수 있다는 희망에 시간과 노력을 배팅했다. 짧은 시간동안 이렇게 깊고 빠르게 나를 홀 릴수 있었던 것, 그 "보험의 세계"는 사실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과거형으로 말할수 있는 건, 일주일 전부터 제 정신으로 돌아와 현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해왔던 '사회인'이었던 나도 그럴진대, 집에서 주부의 역할에 충실했던 주부들에게는 이 경험이 얼마나 생경하고 당혹스러울까 생각해 본다.

보험을 시작하게 되리라고 대부분은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단 한번도 내가 보험 분야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난 금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있던 보험도 다 해약하고 다시 가입할 필요성도 못 느끼며 사는 사람이었기에.

 

상경계열의 특성상 대학 선후배, 동기 중에 금융권 그 중에서도 보험쪽으로 취업한 이들이 많았다. 어쩌다 만난그들은 대부분 지점장으로 간 케이스였고 관리직이었기 때문에 직장인으로서의 스트레스나 어설픈 사회인으로서의 힘겨움 등을 토로하는 정도였지 내게 보험을 강요하거나 그 필요성에 침을 튀기며 설명한 적은 없었다. 보험업에 취업한 이들 모두 남자들이었기에 술자리에서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보험아줌마들 상대하기 짜증난다', '회사는 노골적으로 설계사들 때문에 너희가 월급받고 사는거라고 얘기한다'는 정도였다. 한번 정도는 선배중에 한명이 실적을 맞춰야 한다며 후배들을 모아놓고 설문지 같은걸 돌린적 있었지만, 그 자리마저도 자산이 없던 나를 5분도 안돼 파악한 선배의 배려(?)로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을뿐. 그들이 말하는 그 '보험아줌마'가 내가 될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은 한치 앞도 알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으며, 그 무엇도 '내가 아니라고' 말할수 없단 걸 깨닫게 된 중년의 봄, 나는 잡사이트를 통해 연락해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헤드헌터로 한때 일했던 경험이 있어 잡사이트에 내 이력을 올리는 걸 정말 싫어한다. 구인사로 일정금액을 내고 등록하면 이 사람, 저사람 다 나의 이력에 대해 볼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포지션으로 검색을 반복하며 올려진 사진까지 몇번을 보게 되면 보지도 않았던 사람과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인냥 말 한번 섞지 않아도 그 사람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내가 보여지고 평가되어지는 게 싫어 나는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지원하고 싶었던 퓨전 한정식의 일자리가 있어 부득이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작성했어야만 했다. 원하는 곳에 지원하고 난후 내렸어야 할 이력서를 잊어버리고 방치했던가 보았다. 무심코 받아든 수화기 너머의 세련된 여자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마트내 소음에 묻혀 명확한 내용전달이 힘들었다. 그냥저냥 흘려듣다 어디시냐고 물으니 'OO생명'이란다. 보험회사라는 소리에 짜증이 일었다. 


"죄송한데요. 보험회사면 전화 끊겠습니다."

"아니 저희는 일반 보험회사와는 다른데. 일반지점과는 달라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요. 한번 오셔서 얘기도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귀가 번쩍했다. '다들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요.'는 말만 벼락처럼 들렸다.

운영하던 가게를 가맹점주에게 넘겨주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필리핀에서 쫄딱 털리고 들어온 이후로 아직 회복중인 상황이었다. 하루하루가 절박한데 벌써 한달째 쉬고 있었다. 지난 겨울은 내게 너무 춥고 힘들었기에 이 정도의 휴가는 받아 마땅하다는 위안을 핑게삼아.

더는 미룰 수 없는 밥벌이의 절박함이 존재하던 때였다. 이 분야 저 분야를 기웃거려 봤지만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나의 소망과는 달리 그 분야를 떠나있던 시간이 어느덧 십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나이의 무게는 더욱더 무겁게 와 닿았다. 이사하려 부동산을 전전해본 사람은 안다. 취업하려 잡사이트를 전전해본 사람은 안다. 바라는 눈높이와 현실사이의 벌어진 간극에서 느껴지는 무기력함과 비참함을.

이제 정말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급여를 받으며 일할수 있는 시간이 내겐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동안 경험했던 회사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어느 회사도 만족한 곳은 없었고, 정년까지 버틸만한 곳은 없었으며, 존경받을 사람들만 있는 곳은 없었다. 회사를 나와야 할 이유와 비전을 주지못해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다 내게는 존재했다. 그 당위성을 안고 사업이란걸 해보겠다고 좌충우돌 정신없이 부딪치고 깨지고 울고 웃으며 지나온 시간들을 지나 내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나는 취업전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오래 일하고 싶었다.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그곳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과 기대도 이제는 사실 피곤했다. 그런 걱정없이 오래 일할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곳이 있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였다. 다른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오직 그 말만 내 귀에 내려와 꽂혔던 것은.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나는 면접을 위해 회사를 찾아갔다. 보험회사라는 말에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귀에 선명하게 각인된 그 말을 내 두 눈과 귀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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