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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30. 2018

늪__2

기묘하고도 교묘한 보험회사의 구조

불황에도 건물이 쭉쭉 올라가는 건 금융업뿐이다. 그 중에서도 보험회사는 참 잘도 굴러간다 싶다.

높게 솟은 회사건물을 보며 또한번 든 생각.

'그래. 돈버는 곳은 금융업뿐이야.'


회사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인만큼 여성의 부드러운 향기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화사함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오피스 우먼의 느낌'이었다.

예전부터 면접을 보러갈때나 영업을 위해 기업 인사담당자를 만나러 갈때면 사무실을 들어설 때의 느낌을 중요시했다. 사람도 첫인상이 있듯 기업도 첫 인상이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인테리어의 특성, 근무하는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느껴지는 활기, 냄새등등.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100% 맞다고 생각했었다. 첫인상이 안 좋으면 당연히 입사제의를 받아도 거절했고, 후보자를 소개시켜 줄때도 망설여졌었다. 그런데 모르겠다. 그 모든 삘들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그 삘이 많이 흐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허울에 참 속절없이 무너지기 쉬운 허약한 존재라는 걸 내가 너무 몰랐던 거겠다.


 안내된 접견실에서 예전 직장생활 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처럼 나도 다시 구두신고 정장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출근과 퇴근이란 걸 하고 싶다 생각했다. 한때 모든게 허울이며 속빈 강정, 껍데기라며 경멸했던 그 지적허영심을 만족시키며 있는 척하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다. 

전화를 했던 팀장이 들어오고 소개를 하고 회사와 업무에 대해서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반보험 영업과는 다르다는 것이 주요 요지였다. 기존 고객 데이타베이스를 통해 우수 고객들을 관리해주는 일이 주요 업무라 했다. 지인영업의 부담을 갖지않아도 된다 했다. 초기 정착하기까지 조금 힘들수도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요식업에서처럼 일한다면 훨씬 나은 보수를 장담할수 있다고 했다. 내 얼굴을 보고 요식업에서 일할 사람같지는 않다며 이 분야에 잘 어울릴것 같다고 했다.

 사람의 진심이란 건 느껴지는 법이다. 팀장의 말이 참 내게는 고맙게 들렸다. 그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끼는 말했었다. '까페를 하면서 가장 필요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지성이었다고.'


나에 대해 높게 평가해주고 달라질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람을 만난지 너무 오래 되었다. 해맑고 예쁜 팀장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될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 희망을 나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지금 내 처지만큼 힘든건 없다 생각했다. 그야말로 난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다겪은 사람이 아니던가. 도둑질, 살인만 아니라면 내가 못할 것이 무어겠는가. 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난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다시  예쁜 옷 입고 구두신고 서류가방 들고 폼나게 일할수 있다는거다. 돈을 벌수 있다면 내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로써 해주고 싶었던 것들 해주고 사주고, 고생하는 막내딸 때문에 가슴 아파하시는 우리 엄마에게 그동안 못했던 것도 해 드리고, 항상 받기만 해서 미안했던 언니들에게도 그동안 받았던 것 다 돌려주고 그 이상으로 더해주고 나도 그렇게 살수 있다니 안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부른 팀장이 그 순간 내게는 운명의 여신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형식적인 두어차례의 면접이 더 이어졌다. 영업이 다르다는 말에 사실 나는 그닥 신뢰하지는 않았다. 보험의 꽃은 영업이고 이 많은 여자들이 앉아서 하는 일이 다른 일일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영업이 존재할 것이고 그 길은 험난할 것이라 각오했다. 주변에 보험영업을 꽤 열심히 했던 이가 있었다. 예전 직장 동료였는데 그와는 그 직장을 나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주 만났었다. 그를 통해 종신보험과 변액상품에도 가입했었고 밥도 여러번 얻어먹었었다. 그가 어떻게 영업을 했는지를 봤었고 그 길이 힘들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또한 그의 변하는 모습도 지켜봤었다. 그의 차가 바뀌고 옷차림이 바뀌고 씀씀이가 바뀌는 것이 내 눈에는 나빠보이지 않았다. 허세로 보이지도 않았다. 힘들게 일한 만큼 응분의 충분한 댓가를 받는 것으로 보였고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그의 모습을 비교했을때 그의 변화가 훨씬 보기 좋았기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당발에 성격 좋았던 그는 헤드헌터로 일할 당시 내가 필요로 하는 직종의 사람도 잘 소개해주었고 전화를 받을때나 만날때면 한결같이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인상과 경험이 좋았기에 더불어 보험영업에 대해서도 크게 나쁜 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는 몇년전 보험업을 그만두고 교육업으로 이직하여 서울을 떠나 살고 있었다는 점이 조금 걸리긴 했다. 왜 이 좋은 직업을 그만뒀을까? 내가 아는 교육업은 사실 돈되는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희망을 안고 나는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3월과 함께 신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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