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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07. 2019

어머니와 고사리

육지인의 제주도 첫 고사리체험

고사리, 고사리, 제주 고사리


강원도 춘천에 사시는 울 오마니의 이 주문과도 같은 외침을 나는 재입도한 작년부터 틈만 나면 들어왔다. 올 겨울, 제주도로 다시 이사한 딸네 집에 첫 방문하신 엄마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고사리를 찾아 드라이브하는 내내 두 눈이 분주했다. 조금만 한적한 도로로 접어들면 이내,

"여기 고사리 많겠네. 아이구. 고사리 자라기 딱 좋겠다."

방금 지나쳐 온 길가의 현수막을 뒤돌아보며,

"뭐야? 고사리가 벌써 나온거야? 차 다시 돌려봐라. 고사리라고 써있네."

봄도 되기 전 그럴리가 없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되돌아가 확인한 현수막의 글씨는

'제주 고사리와 흑돼지의 만남, 흑돼지 고사리 구이'라는 식당의 홍보용 글이었으니, 아흐~ 우리 오마니의 고사리 사랑이여!


 엄마의 전원생활은 15년차로 육지에 살다 제주 조용한 시골마을로 오게 된 나에게는 시골마을 선배님이다. 엄마의 시골생활 중에는 5,6년전부터 고사리를 꺽어 말리는게 봄철 큰 일과가 되었다. 간간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말려서 파는 고사리의 이문이 쏠쏠하여 장 파는 일과 함께 제법 재미를 보고 있다 하였다. 

농한기의 한겨울동안 몰라볼만큼 찐 엄마의 살들은 봄이 되고 산을 오르내리며 고사리를 꺽을 때면 쏙 빠져 날씬해지곤 했다. 그 모습을 몇해 반복하며 고사리 반찬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저 '우리 엄마의 살들을 정돈시켜주는 고마운 나물' 정도로만 고사리에 대한 인식이 정립돼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제주도 고사리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제주도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라더라'하는 정보가 들어간 것이다. 마침 사고뭉치 막내딸이 제주도로 살러 갔겠다, 엄마의 이번 2019년 봄은 가열찬 고사리 채취의 전투해로 추운 겨울부터 전열이 불타올랐다.


 기다리던 봄이 되었다. 집마당뿐만 아니라 조금만 발을 내딛어도 제주에는 온 사방이 꽃이었다. 나무에도 꽃, 땅에도 꽃. 벚꽃부터 유채, 매화를 넘어 이름모를 숱한 꽃들에 취해 헤롱거리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고사리 많이 나는 곳은 알아놨어?"

"눼에?"

"엄마, 여기 일 끝나면 바로 갈거니까 잘 알아놔. 사람들 많이 안가는 곳으로"

전화를 끊는 내 손이 떨렸다. 그 분이 오신다. '고사리 할망'

가뜩이나 빈약한 습자지같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고사리 포인트 찾기'에 돌입했다.

"oo엄마, 자기 고사리 꺽으러 갔었다했지? 어디로 가면 돼?"

"oo언니, 지난번 고사리 많다던 곳이 어디죠? 서귀포였나?"

어쩌다 얼굴 마주치면 목례 정도만 하는 뒷집에도 절박한 심정으로 물어본다.

"안녕하세요. 혹시 근처에 고사리 많이 나는 곳 아세요?"

관심없던 남편까지 가세하여 운전하며 좌우를 살핀다. 

"저기, 저 곳 아닐까? 딱 고사리 많게 생겼잖아. 야. 근데 고사리가 음지에서 자라냐? 양지에서 자라냐?"

"....."


엄마가 오시기로 한 전날, 커다란 박스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이게 뭐지? 나 인터넷으로 시킨 거 없는데?"

커다란 박스에는 지난번 다녀가실 때 마땅히 덮을 이불이 없다며 남는 이불을 보내시겠다던 엄마의 솜이불이 한채 들어있었다. 더불어 커다란 배낭과 배낭 안에는 장갑과 고사리 앞치마, 팔 토시와 목에 두르는 수건, 그리고 햇빛을 가릴수 있는 챙 넓은 모자까지 있었다. 고사리 채취에 필요한 장비를 먼저 택배로 보내고 다음날 드뎌 그 분이 오셨다. 울 엄마. 육지에서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오느라 저녁 늦게 도착한 엄마는 다음날 아침부터 채근을 하셨다.

"우선, 가까운 곳부터 가보실래요? 근처에 한 곳은 내가 엄마 온대서 다른 엄마랑 한번 가봤어."

"그래? 그럼 첫날이니까 가까운 곳부터."

올때 끌고 온 캐리어에서 꺼낸 건 목이 긴 장화였다. 엄마꺼와 내꺼.

고사리 베테랑인 엄마의 조언대로 장화를 신고 고사리 앞치마를 두르고 배낭을 맸다. 장화 안에는 두개의 양말을 신었고 팔까지 오는 토시를 꼈으며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모자를 쓴 후 귀밑으로 내려 턱밑에서 끈을 맸다. 커다란 배낭을 매고 두툼한 장갑을 꼈다. 집에서 오분도 채 걸리지 않는 산이랄것도 없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둘은 가열차게 걸어갔다. 둔턱을 넘자 양지바른 곳에 펼쳐진 얕은 구릉의 고사리 밭이 나타났다.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활짝 핀 고사리들을 보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야, 이것 좀 봐라. 벌써 이렇게 펴 버렸네. 아이구, 진작 왔어야 하는걸."

활짝 핀 고사리 옆으로 삐죽 나오고 있는 아기 고사리들이 보였다. 엄마는 입구서부터 파이터로 돌변했다. 허리를 굽히고 양손으로 빠르게 눈앞에 보이는 아기 고사리들을 꺽기 시작했다. 이제 뭐 좀 보일까 하며 제자리에서 눈만 굴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어느새 엄마는 4배속의 빠르기로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엄마와 딸은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말없이 고사리만 꺽었다. 반복되는 움직임과 내리쬐는 햇빛으로 힘들어질무렵 나는 허리를 펴고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되겠어? 여기 많지?"

"야, 여긴 퍼진 고사리야. 크고 두꺼워야 꺽는 재미가 있지? 이거 말고 그런 건 없어?"

헉..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실줄 알며 뿌듯했던 나는 그대로 좌절했다.


다음 날, 말로만 듣던 한라산 중산간 도로에 도전했다. 

"언니, 그냥 산록도로 달리다 보면 길가에 차 많이 서있는데 있어. 거기로 그냥 들어가. " 

막내딸 친구 엄마에게 미리 알아둔 정보를 되새기며 운전대를 잡았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을 일이었건만 옆에 있는 엄마를 보면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집에 있는 빵과 물을 챙겨들고 고사리 의복으로 환복한 후 한라산으로 향했다. 산록도로로 접어들어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길가에 급하게 주차해둔 차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차된 차들과 그 위로 펼쳐진 언덕을 재빨리 스캔하며 고사리 포인트를 어림잡아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웠다. 모자끈을 다시 질끈 동여매고 마음급한 엄마가 앞장을 섰다.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보이는 가시 철조망의 틈을 벌리고 낮은 포복으로 진입에 성공했다. 생전 가보지 않은 군대를 사십 넘어 다시 가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언덕 사이사이로 이제는 내 눈에도 구분이 되는 고사리가 보였다. 역시 엄마는 입구에서부터 양손의 신공을 발휘하더니 순식간에 3배속의 빠르기로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여기도 고사리가 작았다. 많긴 한데 길이가 잘아 역시나 이곳도 엄마를 만족시킬수 없는건가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그 때, 우리 곂으로 누가 봐도 고사리 베테랑의 모습을 한 두 명의 여인이 몸도 가볍게 걸어갔다. 

"고사리 꺽으러 가시나봐요? 여기분이신 거 같은데 어디 가면 큰 고사리가 많아요?"

특유의 나긋나긋하면서도 집요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엄마는 물었다.

"아휴. 여기가 다 고사리죠 뭐. 특별히 큰 고사리라고 있나요? 여기 덤불같은데 보시면 좀 굵은것들 보여요."

"그럼, 두 분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순간 당황한 두 분의 표정.

"저희는 그냥 저어기 위에. 저기로 일이 있어서 가는 거라."

발걸음을 재촉하는 둘 뒤로 우리 모녀는 음흉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몸을 사려가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거침없이 오르던 그들은 어느새 어두운 숲속을 헤치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더 위는 힘들겠다. 우리는 여기서 하자."

위에서 내려다보니 도로옆 입구에는 여전히 울긋불긋 사람들이 보였다. 

"야, 저기는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데야. 프로들은 저런데껀 보지도 않는구만. "

역시 위로 올라올수록 두께와 길이가 달랐다. 다만, 그만큼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것 또한 꽁으로 되는 건 없는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눈앞에 너무도 쉽게 펼쳐진 것들은 작고 볼품없고, 좀더 가치있는 것들은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을 오르고 매의 눈으로 찾아야 보였다. 역시나,


소중한 것들은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이게 뭐 별거라고, 고사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 말려놓고 볶아놓고 입에 들어가면 다 그게 그거지. 하던 나도 며칠째 꺽다 보니 상품이 뭔지 감이 왔다. 덤불을 헤치고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키 큰 아이가 나를 보며 까꿍할 때 느껴지는 희열. 짙은 갈색의 긴 줄기에도 부드럽게 꺽이는 그 느낌. '아~ 심.봤.다.' 욕심만 많아서 그렇게 많은 고사리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며 한껏 구박했던 엄마의 '고사리 꺽는 재미'. 그 재미를 나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와 계신 일주일 중 사 오일을 아침마다 한라산 등성이를 오르며 고사리를 꺽었다. 강원도에 비하면 이건 뭐 껌이라는 엄마의 얘기처럼 제주도에는 한라산이 있었고, 한라산의 품은 넓었으며, 그 품만큼이나 고사리는 넉넉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갈 때나 날이 궂어 조금 늦게 도착한 날이면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의 행렬부터 맘이 급해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제주도민이 된 딸은 말했다. 

"진정해. 고사리는 많고 앞 사람이 꺽고 가도 뒷사람에게 먹을만큼은 남겨놓는대. 엄마 몫은 다 있으니 걱정을 마세요."


그랬다. 너무 많은 욕심은 금물.

엄마가 와 계신 일주일동안 제주날씨답게 일기예보따윈 아랑곳 없이 날이 오락가락했다. 해가 났다가도 구름이 몰려왔고, 안개가 덮여 한치 앞이 안 보이다가도 금새 하늘이 개고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기도 했다. 방심했던 엄마가 당황할 만큼 짙은 안개 때문에 하마터면 칠십대 할망 산에서 길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는 제주도였다. 

기.다.리.면 되었다.


기다리다 보면 구름이 물러가고 파란 하늘이 나오고,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나고, 몰려오던 안개가 지나고 다시 개이는 곳이었다. 조금 작은 고사리는 어렵지 않게 온 사방에 뿌려져 있었고, 크고 여문 아이들은 덤불을 헤치고 숨어 있었으며 한 곳에서 대여섯개의 실한 아이들을 정신없이 꺽다보면 여지없이 가시덩쿨이 모자를 잡아끌며 '그만, 나머진 욕심이야'라고 소리없이 타박을 주는 곳. 먹을만큼만, 혹은 팔수 있을만큼만 욕심내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 조용히 일러주는 곳. 

사월의 제주도는 고사리로 뜨거웠고 육지로 돌아간 엄마는 내게 고사리 앞치마와 장화, 장갑과 배낭을 전리품으로 남겼다. 가기 전날까지도 오락가락했던 날씨로 결국 데친 고사리를 냉동하여 택배로 보내고 비행기에 오른 엄마. 

"야. 여기 오니까 날이 쨍하니 살 거 같다. 거기 날씨는 왜 그러냐? 고사리 여기서 받자마자 잘 말리고 있다. 다 좋은데 그래도 고사리는 거기가 많긴  많더라. 좀더 꺽고 올걸 그랬어. 공항에서 두 노인네를 만났는데 세상에 그치들은 고사리를 열근이나 말려서 왔대지 모냐? 담부터는 아침 일찍 가서 하루종일 꺽어야겠어. 담부터는 주먹밥을 싸라. 물은 안되겠더라. 물은 마시면 자꾸 목말라서 안돼. 막거리를 가져가야돼. 막걸리는...."

끝이 없는 엄마의 고사리 이야기. 

'엄마, 내년에는 내가 꼭 고사리 포인트 많이 알아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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