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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19. 2019

쓴다는 것

더이상 공상하지 않는 어른아이

나, 웹소설 한번 써볼까?

밥벌이의 문제로 골똘하던 어느날, 남편에게 불쑥 말을 꺼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단 생각과, 아직은 부모의 부양을 기대하는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한 소위 '돈되는 직업'을 찾아 나름 절충한 대안이었다. '소설가=배고픈 직업'이라는 등식을 항상 뇌에 새기고 있는 '옛날사람'으로써 주저해왔던 일, '작가'라는 직업. 이런저런 키워드를 검색하다 요즘 작가들은 웹소설작가를 지망한다는 것과 조회수가 높으면 먹고 사는 문제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나름의 해석을 얻었다. 


오잉? 이런게 가능해? 
소설가는 소설간데 웹상에서 쓰는 소설을 말하는 거겠고, 게시판에 올리고 조회수가 높으면 계속 연재하고 그러는 거겠지? 아무래도 조회수가 높으면 출판의 기회라던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확률도 높겠고. 따로 극본을 쓰지 않아도, 시나리오 작법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아도 드라마 작가가 될수 있겠구만..


초기 모뎀으로 채팅하던 천리안, 나우누리 세대답게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글을 올리던 게시판 형식을 생각했다.  벌써 20년은 더 되었을 통신작가 이우혁의 '퇴마록'도 생각났다. 관련 정보를 찾다보니 얼마전 재밌게 봤던 드라마도 웹소설이 원작이란 걸 알게 됐다. 드라마 판권에 출판 인세까지 계산해보니 이거이거 괜찮은 작품 한 껀이면 돈버는 건 시간문제란 계산이 나온다. 이때까지도 '소설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생각지 못한 나는 웹소설가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내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내게 '글쓰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겐 '쓴다는 것'이 일상이었고, 어렵지 않았고, 별도의 준비가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숫자에 유달리 약한 나로썬 대학시절, 숫자에 강하고 글쓰기엔 약했던 선배와 레포트를 나눠쓰는 품앗이를 하기도 했다. 지난 10년동안 운영했던 가게들처럼 부동산을 임대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초기 설비를 투자해야 하는 벅찬 사업비가 드는 것도 아니었다. 펜과 노트, 요즘은 노트북만 있으면 할수 있는게 작가였다. 그리고 노트북만 세개가 있는 나로서는 세상에 이보다 더 돈 안드는 직업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내가 그동안 '소설가'가 되지 못한건,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쓸 시간적 여유와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내가 웹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근사한 작품을 바로 뽑아낼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방앗간에서 갓 뽑아져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처럼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따끈하면서도 신선한 이야기가. 


결심하고 난 후, 첫 삽을 떴다.

지난 한달간의 호텔 조식알바로 번 돈의 일부를 뚝 떼어내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품, 나만의 책상을 하나 주문해 들여놓고 작은 방에 자질구레한 짐들을 모두 치웠다. 철지난 옷들을 보관하는 옷장으로 쓰던 나무장의 옷들을 모두 다른 방으로 쌓아놓고 선반위에 집안에 굴러다니던 몇개 되지 않는 책들을 갖다 꽂았다. 그래봐야 전체 벽면의 1/10도 차지 않아 나머지는 휑뎅그레한 민벽으로 놔두고 덜렁 책상과 의자만 있는 방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나는 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뭘 써야 하지?



갑자기 백지가 되어버렸다. 하얗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막막해져버렸다. 어떤 이야기를 쓸건지, 주인공의 시점은 무엇인지, 주인공은 몇살이고 직업이 무엇이며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누구와 사랑에 빠질건지_혹은 누구와 싸울건지_, 어떤 에피소드를 갖고 있는지, 난 뭘 말하고 싶은지, 하다못해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어이없게도 난, 그저 막연히 '소설가가 되겠어!'란'생각'만 해버린 거였다. 펜과 노트, 혹은 노트북, 더 나아가 나만의 책상이 있는 작은 공간만 있으면 될 것 같았던 '소설가의 꿈'. 그러나 현실은 내가 이토록 창의력이 없는 꽉 막힌 인간이었던가 하는 자각과 그로 인한 자괴감이었다. 


며칠간 펼쳐놓은 노트북의 새 문서는 그저 빈 여백뿐이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채, 나는 그저 멍 때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랬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멍때리는 습관'이 필요했다. 그동안 해왔던 대학교 레포트 작성습관처럼 온갖 자료들을 찾아 캡쳐하고 나열한 후, 재배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은 어떤 자료를 통해서라기보단 머릿속에서 우선 구상되어야 했다. 난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야 했고, 그 인물이 내 안에서 숨쉬며 살아 움직이게 해야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공상' 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공상이 나란 인간에겐 그리도 힘든 일이었다. 지난 세월의 때는 이미 온 머리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끼었다. 그동안 습득했던 지식과 교육의 힘은 대단하여 돌이켜보니 무엇 하나도 내 힘으로 만들어낸 것은 없었다. 언제인가 어디선가 보았던, 들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의 집합체가 교묘히 모였다 흩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했을 뿐. 아무리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해도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다. 몇번의 시도끝에 지쳐버린 내게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나? 초등학교 4학년인 지금의 막내딸보다 더 어렸던 때였다. 일 때문에 멀리 떨어져 지냈던 아빠의 부재, 그리고 그런 아빠를 대신해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실질적 가장인 엄마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일찍 끝난 날이면 딱히 갈 곳이 없어 집에 틀어박혀 혼자 인형놀이를 하거나 공상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소설이란 이름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그땐 그게 마냥 재밌었다. 구성도, 풀롯도, 사전조사도 없는 무작정 쓰는 일. 그렇게 거침없이 써내려간 소설이 세편 정도쯤 되었다. 물론 개연성도 수려한 문체도 없는 마구잡이식 소설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무척이나 참신했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그때의 난 그 어떤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배움의 장이 많아지고 보고 듣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공상은 하지 않았다. 뭘 하나 하려 해도 이리저리 재어보고 물어보고 다른 이들의 자료를 조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지 의미가 있는지 따지고 검열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더이상 공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어른아이
그것은 참 슬픈 일이었다.



그 동안 욕하고 비판하고 허접하다며 비난했던 소설들, 영화들, 막장 드라마들의 작가들께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뜨거운 존경심을 표현한다. 어찌됐든 한 이야기를 완성해 낸 그들의 그 끈기와 집념, 고집과 공상의 힘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줌이 마땅하다. 이리도 막막하고 막연하며 두려운 일이란 걸 그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을 겪고 홀로 인내하고 다독여가며 그 험난한 길을 걸어 종결이란 결과물을 얻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쓴다는 것'은 그리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내었다. 그럼으로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결국, 멍때리지도 못하고 공상하지도 못하는 이 어른아이는 도움의 손길을 찾는다.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익숙한 초록창을 열고 자판을 입력한다. 

'소설 잘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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