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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May 08. 2019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중년이 느끼는 인생구조학

SNS를 꼭 해야해?


나이 사십 넘어 SNS에 목매는 것도 아닌데 불쑥불쑥 뭔가가 속에서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 한때 싸월(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애정을 기울였던 좋은 추억만으로 끝났어야 할 나이. 카스(카카오스토리)까진 그래, 애 둘 가진 엄마로써 해볼만은 했어. 관심없던 페북(페이스북)은 필리핀에서 살때 필수템이라 해 억지로 가입만 했었지. 결국은 귀국과 함께 빛의 속도로 집어쳤지만. 그런데 해시태그가 살아있다는 인스타까진 차마 외면할 수 없더군. 


물론, 내 사생활을 드러내고 자랑질해서 누구 염장을 질러보겠다는 이차원적인 생각은 전혀 아냐. 그 누구보다 나를 드러내길 싫어하는 건 나이 들수록 더해지더라고. 이젠 사진 찍히는 것도 병적일 정도로 싫어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지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넘들은 외모의 굿배드를 넘어 극혐해. 왜 그 멋진 풍경에 꼭 지 사진으로 오염시켜야만 하는지. 


그런데 그놈의 사업이란 키워드가 들어가니 연관 검색어로 홍보와 마케팅이 따라오는 거지. 그동안 이것저것 소소하게 해본 결과, 그래 누구나 사업은 해볼 수 있겠더라. 아이디어? 아주아주 독창적이지까진 않더라도 누구나 나만의 아이디어 하나쯤은 있잖아?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게 어딨겠어? 인간이 살아온 세월이 유구하고 세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인간이란 종자의 기본이 있는데. 몇명만 모이면 서로 쌈박질하고, 누구 땅 많으면 나눠갖기보단 뺏어오고, 끊임없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존경하고 또 혐오하면서 발전해온게 문명이란 거  아닐까? 어쨌든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는 개개인의 절박함 내지는 호기심의 문제겠지. 한번쯤 용기는 다 내볼 수 있잖아? 그 용기가 무모하던 합당하던지간에. 그런데 이후가 문제더라고. 이걸 알려야만 하는데 말이지. 세상에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즐거워서 나혼자 살만큼 벌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지긋지긋하게 싫은 그 '인간관계'. 그 관계를 통해서만 모든 건 이루어지잖아.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졌잖아.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
양보없는 고집과 철학?
흔들림없는 소신과 뚝심?
과연 그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멋진 아이템도, 근사한 물건도, 독창적인 예술작품도 결국 누군가 알아봐주고 봐주지 않으면 빛날 수 없잖아. 깊은 산골에 틀어박혀 나는 자연인이다 하고 사는 사람이면 또 모를까? 살아있는 한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살아내는 과정에서 입고 먹고 즐기고 사는 그 모든것엔 '돈'이라는 매개체가 개입돼 있잖아. 우리가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이란 누군가 밑에서 나 죽었소 하고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거나, 뭔가를 만들어내거나, 중간에서 뭔가를 사거나 팔거나 결국은 그 프레임 안에서 다 이뤄지잖아. 그러려면 우리는 이걸 알려야 하고 누군가가 사게 만들어야 하는 거지. 


결국은 지긋지긋한 '관계'를 이어가야 하고 알리는 과정 중에 허풍이 될지도 모를 과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누군가가 무언가를 '산다'는 행위에는 꼭 필요에 의한 합리적 행동일 수도 있지만, 잠재돼 있는 '욕망'에 의한 충동구매일 확률이 높아. 그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는 각각의 스타일이겠지. 좀 올드하지만 직접 만나서 악수하고 인사하고 밥먹고 술먹고 운동하며 쌓는 방법은 시간과 돈이 들지만 그만큼 깊이가 있긴 하지. 쉽게 거절할수 없는 건 아무래도 같이 밥 먹고 술 먹으면 사람은 무언가 받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래. 요즘 세대들은 인터넷으로 소통하지. 카페니 밴드니 활동도 활발하더니 이제는 자기 위주의 소통방법을 더 선호하는 듯해. 페북이니 인스타니 어찌보면 내가 관계맺고 싶은 사람을 선별할 수 있고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으니 보다 사적으로 보여지긴 해. 스마트폰 하나면 모두 해결될것 같은 이 정보화 시대에 결국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또 관계를 맺어야만 살수 있는 거지. 


그래서 나도 흔히 말하는 '인싸'가 되려 했던거지. 왜냐면 내 제품을 홍보해야 하니까. 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조직도 없으니, 그럼에도 일은 해야겠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알리는 작업을 안할수가 없겠다 싶었지. 수없이 갈아치운 회사생활과 한국과 해외를 들고 난 지역적 이동으로 내 인맥은 습자지보다도 얇지. 초중고 전학은 없었지만 그 사이사이 이사도 많았고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도 별로 없는데다 대학 친구들은 뭐 자발적으로 멀어지게 되더라구. 그러니 모르는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SNS에 한번 기대보자 했던거지. 

 그런데 해보니 뭐 다 그게 그거야. 정말 집요하게 미친 것처럼 올인하지 않는한 팔로워수는 늘지 않더군. 작심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선팔'을 구걸하지 않는 한 포스트가 늘어도 팔로워수는 한결같더라구. 이 스마트한 소프트웨어 저변에는 여전히 여기저기 쌓아온 하드웨어적인 요소들_학연, 지연에 따른 인맥_이 바탕으로 깔리더란 얘기야. 그리 많지도 않지만 사업적 도움이 될까 싶어 맺은 팔로워들이 올린 글들을 하루에 한번씩은 보게 돼. 보다보면 아무 생각없이 그 사진만 보고 있는 내가 한심해지는거야. 서로 필요에 의해 올리는 사진들이라 맨날 그게 그거긴 한데 그 '반복' 이 주는 익숙함과 습관으로 어느새 쇄뇌당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 그러면서 이걸 올리고 있는 나도 한심하고 같은 맘으로 올렸을 상대방도 짠해지는 거야. 인스타를 본 후 항상 난 혼잣말을 하지.


참, 다들 열심히도 산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난 정말 이 짓이 싫어. 쏟아지는 광고도 보기 싫어 우리는 집에 티비도 없어. 그렇다고 요즘 드라마나 예능을 안 보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다시보기를 통해 보고 싶은것만 골라봐. 일체의 광고를 쏙 뺀 순수 상영시간만을 투자하지. 차타고 다닐때 들리는 라디오속 광고는 볼륨을 아예 줄여버려. 그런데 인스타에 스폰으로 들어가는 광고는 어쩔수 없이 필터링이 안돼. 끝까진 아니더라도 일단은 보게는 되더라구. 사실 스폰광고가 문제겠어? 개인들이 올리는 사진 자체가 하나의 광고들인데. 잠깐 훑어만 보는건데도 보고나면 잠시 멍해져. 생각보다 이게 참 피곤한 일이야. 그리고 또 생각하지. 


이 첨단시대에 우린 왜 더욱 더 획일화되는 걸까?

그동안 우리는 '규모의 경제'에 익숙해왔잖아. 대기업들이 만들어낸 제품과 홍보, 소수의 언론과 쪽수 많은 정당 같은 것. 소수까지 돌아볼 여유와 기회는 없이 자라왔지. 좀더 풍요로운 시대에선 보다 다양성이 존중될거라 생각했어. 더 많은 경로로 더 많은 취향들이 드러날테니 개취를 존중하고 존중받을 줄 알았거든. 꼭 큰 규모의 자본을 갖지 않아도 소수의 능력자들이 인정받는 사회가 올 거라는 긍정적 믿음이 있었다규.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그게 아닌거 같애. 정보가 많아질수록, 기술이 발달할수록, 아이템이 다양해질수록 사람들은 더 통제가 가능해지는 거 같아. 그 모든 것들을 선별하고 정제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크기가 부족한거야. 오히려 너무 많다보니 당황하는거지. 내가 일일이 들어가서 알아보고 써보고 느껴보고 검증해보기보단, 누군가 이 귀찮은 일들을 맡아서 한마디로 정리해주면 그냥 받아들이고 싶은거지. 제품을 구매할때도 사용후기만 보게 되고, 인터넷 뉴스를 봐도 댓글많은 기사를 먼저 찾게 되고, 기사들 중에서도 검색챠트에 올라있는 내용을 먼저 찾게 돼. 그리고 어느새 허락된 다수의 소수들은 획일화된 소수의 다수로 편입하기를 자처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를 '개돼지'라 칭하면서. 


 다른 사람 얘기가 아냐. 바로 내 얘기지. 

나이탓을 하며, 지역탓을 하며, 인맥탓을 하며 이런저런 없는 탓을 하며 게으른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야. 그러면서 세상의 잣대에 놀아나는 자신이 미더워 짜증을 내곤하지. 또 한번 발버둥치지. 세상이 만든 기준에 언제까지 끼워맞추지 못해 안달이냐고.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우리는 왜 배우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뭘 배웠는가?


 배운다고 배운거 같은데 세상이 만든 기준에 의한 배움이었을 뿐이었단 생각이 드는 거야. 정규과정을 통해, 학교란 기관을 통해 우리가 배운건 뭘까?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와 규율만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과 허울좋은 자존감? 과연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들이 각자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긴 했던걸까? 오히려 기껏 돈 들여 배워놓고 사회에 나오니 독창성이 없다고 질타받아. 그래서 그동안 배워온 것들을 벗겨내기 위해 노력해.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 몸에 밴 관습과 습관을 벗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잖아? 그걸 깨기 위해 또 돈을 들여. 책을 사 보고, 돈 들여 명상을하고, 나를 찾아 돈 모아 여행을 하고, 학원에서 배울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거금을 들여 창의력 교육과정을 들어.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아? 


그래, 나는 지금 혼돈에 빠져있어.


 지나보면 언제나 혼돈이었던 것 같아. 어릴적에도, 당연히 청소년기에도, 가장 혼돈스러웠던 청춘에도, 그리고 좀 편해질 줄 알았던 지금의 중년에도 난 여전히 혼돈이야. 그나마 다행인건 이젠 막연한 혼돈이 아닌, 어느정도는 구조가 파악된 상태에서 오는 혼돈이란 점이야. 뭐랄까? 뭐가 문제인지는 이제 알 것 같은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엔 내가 할수 있는게 너무 없다는 데서 오는 혼돈이랄까? 사실 그 전에는 뭐가 문제인지를 아예 몰랐었거든. 문제를 알던 모르던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너무 어려워. 순수 백퍼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겠단 건 아니지만, 인생을 대함에 있어 보다 캐쥬얼한 자세는 없는걸까? 


난 오늘도 생각해. 

나를 둘러싼 이 관념들에서 무얼 더 덜어낼 수 있을지를.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깃털처럼 가벼워질 때 아마도 그때가 내가 행복해질때겠지. 

그 존재의 가벼움을 난 참을 수 있을것 같애.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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