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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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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13. 2019

공존의 어려움

제주에서 겪는 다양한 동물들과의 교감

#1.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


 4학년인 막내가 2학년이던 때, 그러니까 벌써 재작년일이네. 같은 반 친구들이 강아지를 키우는걸 보곤 저도 키우고 싶다며 조르기 시작했어. 다양하게 크게 관심사가 많은 아이가 아닌 반면, 한번 자기 맘에 와 꽂히는 일엔 집요한 구석이 있는 아이라 그때부터 강아지 앓이가 시작됐지. 예쁜 강아지 사진이나 유투브를 보고, 애견센터마다 들러붙어 어떤 강아지를 키우면 좋을지 나름 고심하기 시작했어. 보다 못한 나는 아이에게 약속하고 말았지.

"우리가 개를 키우기엔 집이 너무 좁아. 아파트에서 키우는 건 반대야. 엄만 개 냄새가 싫어. 개들도 아파트에서 맘대로 뛰어놀지도 못하고 짖지도 못하고 얼마나 스트레스겠어. 나중에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가면 그때 우리 키우는 걸로 하자. 엄마가 약속할께."

시무룩하던 아이는 '마당넓은 집으로 이사'라는 말에 일말의 희망을 걸곤 새끼손가락을 걸어 다짐을 받았어.



그리 금방 올것 같지 않던 그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왔어.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건 이후로 일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제주도 작은 시골동네 마당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거든. 이사와 함께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로 유기견 센터를 찾았지. '사기보단 입양'이라 생각했고 수많은 버려진 유기견들 중 한 놈이라도 거둘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을 일이었으니까. 



#2.


 유기견 센터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어. 

버려진 불쌍한 아이들이 예쁘게 단장한채 사슴같은 눈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무지였지. 아마도 나나 딸아이는 애견센터에서 본 쇼윈도의 예쁜 아이들을 상상했었나봐.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것은 아수라장, 아비규환.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울부짖는 전쟁터의 난민과 고아들 수용소 같았어. 이미 사람 손을 탄 아이들은 자기들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간택받기 위해 온갖 재롱을 부리며 자기를 데려가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 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밀려드는 개체수 때문에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피부병이 창궐했어. 걔네들이 싸는 똥, 오줌 냄새와 개 비린내, 날리는 털, 더불어 꼬여든 파리떼들. 그곳에서 자원봉사하는 분들을 정말 존경해. 뒤돌아 나올 때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두고두고 귓가에 남아 우리를 심란하게 만들었지. 

한때는 정말 예뻤던 아이들이었을 거야. 사랑받던 아이들, 재롱부리고 예쁘게 단장받던 아이들, 소형견이든 대형견이든 족보가 있는 순종견이든 믹스견이든 그들의 과거는 더없이 행복했을 거야. 그런데 그곳에선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그 아이들의 눈빛, 그리고 그 냄새는 오래도록 우리 기억속에 잔상을 드리웠고 아이는 무척이나 복잡한 마음이 되었어. 결국 우리는 아무도 선택하지 못했고 이후 우연히 우리 품으로 온 새끼고양이를 키우게 된 거지. 우리의 고양이 '몽이'가 병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난 이후로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생각했어. 몽이를 떠나보낸 충격과 슬픔이 너무 컸거든.  



어떤 동물이든 당분간은 키우지 않겠다며 한동안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한 놈씩 이름을 붙여주며 우리 나름의 치유식을 하고 있었는데 이건 또 무슨 하늘의 뜻인지 이번에는 토끼가 나타난 거야. 옆집 고양이 미호(미니호랑이를 줄여서 '미호', 성은 '구'_그야말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때는 구미호를 연상시키긴 아이지.)는 그냥 동네 길고양이 중 한 마리였어. 그런데 펜션을 운영하시는 옆집 아저씨가 이뻐라 하시며 밥을 주기 시작하신거지. 마침 갈곳 없던 이놈은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 사료를 먹고 따뜻한 마당에서 벌러덩 누워 햇살을 만끽하더니 이내 이 집에 눌러앉게 된거야. 길고양이들 중에서도 가장 근육질에 호피무늬가 한 성깔할 껄로 보이는 이놈은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듯 남다른 사냥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어디선가 새끼토끼를 물고 오기 시작한거야. 이제 겨우 눈뜬 새끼 토끼를 어디서 사냥해 왔는지 이번 봄 자그만치 여섯마리를 연달아 물고 온 바람에 아저씨는 불쌍한 새끼 토끼들을 방생해주느라 바쁘셨지. 

그 중에 아주 하얗고, 아주 까만 토끼가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어. 코너에 몰려 미호에게 죽을뻔한 이 아이들을 목격한 딸아이 덕분에 목숨을 살리게 된 까만 아기토끼를 얼떨결에 들이게 된 우리집은 이 자그마한 토끼에게 '뭉치'란 이름을 지어주었지. 까만 털뭉치 같다해서 뭉치, 은근 사고치고 댕긴다 해서 사고뭉치의 '뭉치'. 고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당근을 먹으며 뭉치는 잘 자랐어. 제법 귀도 커지고 달리기도 빨리질 무렵 또 한마리의 아기토끼 친구가 왔어. 이번에는 아주아주 하얀 털을 가진 토끼. 역시 미호가 물고 온 얘는 바로 뭉치의 친구가 되기로 했어. 우리는 하얀 토끼에게 '송이'라는 이름을 주었어. 눈송이처럼 하얗다 해서 '송이'. 


뭉치와 송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무척 잘 지냈어. 같이 붙여놓으니 푸드 파이터들이 따로 없더군. 당근이며 배추며 정말 미친듯이 먹어댔어. 더불어 커피 알갱이 같던 똥덩어리는 점점 커졌고 찔끔 싸대던 오줌의 양과 횟수도 늘어 그거 치우러 다니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 두 놈이 싸대는 똥과 오줌을 치우는데 지쳐 결국 마당에 나무로 토끼집을 지었어. 얼기설기 지은 집에 전면에는 철망을 끼웠지. 집안을 맘대로 돌아다니다 작은 공간에 갇히니 첨엔 강하게 반발하더군. 몇번의 탈출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뭉치는 급격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어. 화난 것처럼 내가 가까이 가도 엉덩이만 보인채 외면하더군. 그 큰 눈이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아 난 딸아이 없을때 혼자 한라산 중반 쯤 놔주고 올까 몇번이나 고민도 했어. 내 맘은 드넓은 평원에서 신선한 풀 맘껏 뜯어먹으며 자유롭게 지내라 하고 싶었거든. 봄에 고사리 꺽으러 갔을때 봐두었던 중산간 목장쯤이면 좋을듯 했어. 당연히 고양이도 개도 없었거든. 풀 뜯어먹는 말들은 있었지만 같은 초식동물이니 얘네들을 헤치진 않을거고 말들이 싸대는 무지막지한 똥무더기만 피할수 있다면 이런저런 바위틈이나 굴속에서 새끼치며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얘네들 보는 낙으로 살고 있는 딸아이를 생각하자 차마 그럴순 없었지. 아이는 정말 보내기 싫어했거든. 



뭉치의 죽음은 어느날 갑작스럽게 찾아왔어. 전날 변이 약간 묽다 싶긴 했었어. 잠시 산책하라고 밖으로 꺼내줬지만 평소답지 않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도 이상하다 싶긴 했지. 그래도 풀을 먹고 배도 빵빵하길래 괜찮겠지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토끼장에 그대로 뻗은 채 발견된거야.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 아침, 제일 처음 발견한 딸아이는 대성통곡을 했고 함께 있던 송이에게까지 무슨 변이 생길까 겁이 난 우리는 송이를 다시 집으로 들였어. 짖지도 울지도 않는 토끼라 슬퍼했는진 모르겠어. 다행히도 남겨진 송이는 씩씩하게 잘 먹고 잘 자라주었어. 그렇게 우리의 귀염둥이가 되어 지낸지 얼마 후, 그놈이 나타난거야. '노마'. 




#3.


'노마'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대형 유기견이야.

 대문이 없는 우리집에 어느날 나타나 잔디밭 위에 앉아 있었어. 시커멓고 커다란 개를 보는 순간 그대로 얼음이 된 나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가라고 소리만 쳤어. 가기는 커녕 나를 보고 꼬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좋아하는 놈을 보며 우리는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가까이서 보니 나름 영리하고 귀여운 면이 있었고 무엇보다 순한 아이였어. 처음에는 잔디밭에서 안 나오려 하더니 먹다 남은 고기를 주자 금새 먹어치우곤 우리를 따르기 시작했어. 마치 이전부터 키우던 얘처럼 우리가 나타나면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마중나왔고 나갈 때면 백미러로 보이지 않을때까지 우리차를 쫓아 달려나왔어. 꼬리를 흔드는 것도 모자라 그 기다란 혀로 핥아대고 좋아 어쩔줄 몰라했지. 


우리는 정말 혼돈스러웠어. 고양이부터 토끼, 개까지. 사실 우리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입양한 아이들은 없었거든. 이런저런 인연으로 다 모여든 건데 이 순하고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차마 내칠 수가 없어 키우게 된거야. 이번에도 또 인연인가 싶었지만 대형견은 사실 엄두가 나질 않더군. 이런저런 준비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 마당 한켠을 내어주기도 고민스러웠지. 어디서 온지 모를 이노마라 해서 '노마'라 이름지으며 지켜본지 며칠 후. 이노마로 인해 동네에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어. 딱히 우리 개도 아니기에 그냥 밥만 주고 있었는데 목줄이 없이 돌아다닌다고 원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한거야. 일단 아이들이 깜짝 놀라고, 놀러온 관광객들이 숙박하러 왔다가 놀라고, 지 멋대로 돌아다니는 통에 남의 파밭에 들어가 밟아놓아 원성을 듣고, 아무 집 앞에 똥을 싸놓아 주인의 역정을 들어야 했어. 그때마다 우리 개가 아니라며 해명을 하는 것도 일이라 이만저만 고민이 깊어졌지. 

매일매일 고기를 챙겨줄 수가 없어 큰 맘먹고 사료를 들였어. 대형견 전용사료 포대를 사들고 온 날, 뿌듯해하며 노마 앞에 한 가득 퍼 놓았지만 이놈은 시큰둥했어. 고기에 길들여진 까닭인지 통 먹으려 하질 않았지. 여러 원성들에 마지못해 목줄을 사다 묶어도 보았어. 생각보다 순순히 묶이긴 했지만 그때부터 우울해 하더군. 지 멋대로 돌아다니며 험한 꼴도 봤겠지만 자유도 맛본 놈이니 싫었겠지. 앞발을 모으고 그대로 엎드려 어떤 일에도 시큰둥했어. 사료도, 물도 안 먹고 멀리서 꼬리만 흔들뿐 가까이 오려 하지도 않더군. 

고양이든, 토끼든, 개든 난 그래. 가두고 묶어두는게 너무 싫어. 여기가 정글이 아니고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니 기르려면 묶고 가둘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사람인 우리도 어찌보면 살기 위해 구속되고 소속되어 있지만 언제나 자유를 꿈꾸잖아. 사람인 나도 그렇고 동물인 얘들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답답하고 슬퍼. 묶여서 답답하고 슬픈 건 나만으로 족하다 싶은 이상한 생각이 있나 봐. 고민 끝에 노마 목줄을 풀어줬어. 이쯤되면 저도 여기가 있을 곳이 못된다 판단하고 떠날 줄 알았거든. 차마 내 손으로 유기견센터에 보낼 수는 없었지만 그냥 알아서 나가줬으면 했어. 유기견센터에 보내지는 순간 대형견들은 주인이 좀체 나타나지 않고 두달후면 자연 안락사 수순을 밟게 되는걸 알기 때문이야. 저를 받아주고 잘 키워줄 수 있는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수도 있지 않을까 가느다란 희망을 가져봤어.

사건은 그때 일어났어. 목줄을 풀어줌과 동시에 잠시 풀뜯어 먹으라고 꺼내놓은 송이를 보자마자 노마는 달려들기 시작했어. 소리를 지르며 말리는 나는 안중에도 없었지. 혀를 날름거리며 거침없이 그 두툼한 앞발을 송이에게 덮쳤어. 작고 빠르지만 역시나 송이는 약한 아기토끼였고 노마는 커도 빠른 육식동물이었어. '깽' 소리와 함께 코너에 몰린 송이를 겨우 구출하고 노마에게 화가 나 부지깽이를 던진 나는 보드라운 송이 털을 어루만지며 겨우 진정시켰어. 손 안에서 송이의 심장소리가 빠르게 뛰고 있었어. 난 이러다 송이가 심장이 터져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됐어. 더불어 노마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아 돌맹이를 던지며 가버리라고 소리쳤어. 

본능에 따랐던 노마는 겁내하며 도망갔고 송이는 잠시 후 안정을 찾았지만, 이후로 노마는 나의 적이 되었어. 마침 옆집 고양이 '미호'마저 노마의 출현 이후로 겁에 질려 집에 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며칠만에 나타난 미호는 노마를 어찌나 무서워하던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우리집 쪽만 바라보며 잘 먹지도 못해 야윈 모습이었어. 그야말로 노마의 출현과 함께 온갖 문제들이 터졌고 난 어렵지만 노마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해야만 했지. 딸아이에겐 슬픈 소식이었지만 동네 민원의 온상이 될순 없었어. 아기때부터 키운 아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대형견을 키울 생각은 없었거든. 내 설명을 들은 딸아이는 고개를 외면하며 내 눈을 피했어. 모진 엄마라고 생각하는게 뻔히 보였지만 누군가는 이 혼돈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결국은 그게 내가 된 것일 뿐이었어. 이후로 노마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어. 이 집 저집에서 나가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집 주변을 배회했지. 한밤 중에 찾아오는 것까지 말릴수는 없었어. 그리고 그 밤에 또 사건은 일어난거야.



#4.


 모두가 잠든 깊은 밤, 노마는 다시 우리 집에 왔던거야.

 어둠 속에서 달빛은 빛났을 거고, 노마는 송이가 있는 토끼장을 본 거지. 허술한 철망 한쪽이 들려있는 걸 봤고 앞발로 당기고 밀려 뜯어내다시피 했어. 놀란 송이는 나와 도망치고 노마는 신나서 송이를 잡았겠지. 어쨌든 우리가 다음 날 아침에 목격한 건 마당 한가운데 널부러져 죽어있는 송이의 시체였어. 현관앞에는 노마가 엎드려 우리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고. 그렇게 송이는 우리곁을 떠났어. 처절하게 뜯겨진 토끼장만이 그밤의 대략의 사건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지. 남편은 몽이, 뭉치에 이어 송이까지 세번이나 삽으로 땅을 파야했어. 나란히 묻힌 우리 아기들을 보며 차마 딸아이에겐 죽었다 말할 수 없었지. 열려진 철망을 보며 송이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걸로 얘기했어. 아이의 눈을 피해 마당한켠에 쭈구리고 앉아 나오는 울음을 삼켰어. 

애완동물이란게 그래. 있을 땐 사실 귀찮기도 하지. 청소해주고 똥오줌 치워주고 내 밥 먹을때 얘네들도 밥 챙겨야 하고. 그런데 이렇게 가고 나면 너무 그리운 거야. 그 부드럽던 털, 쓰다듬던 따스한 온기와 느낌,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던 감정들.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어. 병으로 죽던 습격을 받아 죽던 남겨진 자로선 그 추억만 곱씹으며 두고두고 아픈거야. 이미 몇번 이런 의식을 치뤘으면 면역력이 생길법도 한데 한놈 한놈 저마다 준 정이 있으니 그때마다 가슴이 쓰려 와. 몇달 키운 나도 이런데 몇 십년씩 키운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노마를 보자마자 달려가 내 쫓았어. 내쫓으면서도 또 맘이 안 좋아. 쟤는 쟤 나름의 본능이 있는 거고, 한 집에 토끼와 고양이, 개가 함께 지낼 수는 없었던 거였겠지 싶으면서도 노마보단 송이에 대한 애정이 더 컸기에 화가 치밀어 올라. 사람이나 동물이나 애기 때부터 키운다는 건 감정의 깊이가 다를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 정말 내 손으로 키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에미의 마음이니까. 작고 연약한 것에 더 큰 연민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런 감정이겠지. 


제주에 살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이었을 거야. 

적어도 토끼나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내 돈주고 사 오는 일은 없었어. 여기선 충분히 새끼 고양이나 아기토끼를 우연하게도 키울 수 있거든. 그렇게 인연처럼 내게 오니까. 그들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내 선택에 따른 거고 내 자유의지겠지만, 그게 참 어려워. 자연스럽게 왔다가 자연스럽게 가는 그들의 세계. 그 순응의 체계를 받아들이기엔 보낸 이 아픔이 치유될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한가봐.

내 품에서 한때마다 모두 행복했기를, 그곳에서 모두모두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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