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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24. 2019

수국이 피면 장마가 온대요.

여름이 오는 소리, 쑤쿡쑤쿡

큰언니는 수국을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가 다시 제주로 재입도하고 난후 제주로 다녀가라는 내 말에 언니는 수국철이 되면 가겠노라 말하곤 했다.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일은 바빠 다른 나라도 아닌 비행기 타면 한시간도 안돼 도착할 수 있는 이곳임에도 가족들이 우리를 찾는 건 일년에 한두번 정도가 최선이다. 그저 동백꽃이 피고 지고, 벚꽃이 피고지고, 유채꽃이 피고질때마다 사진으로라도 카톡으로 전하는 것이 언니에 대한 나의 작은 예의다. 비록 이곳에서 함께 감상하진 못해도 언니의 삭막한 도시생활에 잠시나마 힐링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이 동생의 마음이다.  



칠년전, 첫 제주살이때 우리는 지금의 서쪽이 아닌 제주의 동쪽에 살았었다. 

그곳에선 함덕바다가 가까웠고 김녕부터 월정리, 종달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우리의 단골 드라이브 코스였다. 제주 동쪽을 향하는 도로 한켠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계절마다 달리 피었고 여름이 오는 길목에선 함지박만한 수국길이 이어졌다. 


수국이 피면 장마가 온대요.


제주살이에서 자매처럼 지냈던 동생은 종달리 수국길을 알려주며 내게 말했다. 그때부터 내게 수국은 '장마가 오기전에 꼭 봐야할 꽃'이 되었다. 



육지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수국을 가끔 봤었다. 아름다운데 탐스럽게 크기까지 한 수국은 팝콘 같기도 하고 어여쁜 새색시의 부케같기도 했다. 제주에 와서 본 수국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더 탐스러웠으며 더 신비롭고 우아했다. 제주의 수국은 동서남북을 괘념치 않고 곳곳에 핀다. 제주 서쪽에 살고 있는 지금, 남편과 나는 아침마다 동네 한바퀴를 산책한다. 계절의 여왕 오월부터 유월까지 동네 집집마다 수국이 안 핀 곳은 없다. 많든 적든 집집마다 수국을 심었고 뿌리내린 수국은 건강하고 탐스런 자태를 뽐내며 화려함의 절정을 향해 달렸다. 한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그 빛깔은 어쩜 그리도 조금씩 다른지 하루가 다르게 진해졌다가 바래지기도 하고 옅어졌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도 한다. 



 아침산책길에서 우리는 제대로 길을 걸을 수가 없다.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수국들에 발목이 잡혀 일일이 들여다보고 감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어루만진 후에야 걸음을 뗄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고운 자태를 맘껏 뽐내고 주렁주렁 탐스러움을 매단 수국에 취해 있는 동안 어느새 장마 소식이 들려온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수국들도 어느새 그 고운 빛깔이 조금씩 바래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네 한때의 젊음이 물러가듯이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고 풍성했다. 장마가 가고나면 이제 본격적인 한여름 더위가 시작될 것이고 뜨거운 여름이 가고 나면 높은 가을이 올것이다. 꽃은 지겠지만 제주의 여름을 알리는 수국은 내 맘속에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담길 것이다. 영원히 기억될 우리네 젊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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