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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Jun 26. 2019

타운

필리핀 사업, 앙헬레스 그곳은 악마의 도시_7

#필리핀 뽀락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난후, 그녀는 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난밤 한국인 동업자와의 불쾌했던 경험과는 달리 처음 대한 필리핀인들은 순박하고 순수해보였다. 앞으로 모든 결정권을 그녀가 갖고 직접 소통을 하기로 해두었으니 그동안 동업자를 통해야만 가능했던 일의 진행도 보다 빨라질 수 있을 터였다. 


그들의 한국인 집은 다음 달이면 비워주게 되어 있었기에 필리핀에서 머물 숙소를 찾는 일이 시급했다. 이미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오기 전, 한인사이트를 통해 매물로 나온 집들을 서치했었고 그중에 맘에 드는 몇곳과 만나기로 약속해둔 터였다.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그녀와 남편은 매니저인 초나의 소개로 몇 곳의 숙소를 안내받았다. 현지 부동산 브로커가 차를 몰고 왔고 남편과 그녀는 서로 짧은 영어로 인사를 나눴다. 현지인 브로커는 운전대를 잡고 이내 시내에서 멀지 않은 타운으로 접어들었다. 한 눈에 봐도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 관리가 잘 안된 낡은 타운 하우스란 걸 알 수 있었다. 사는 이들은 주로 필리핀 현지인들인 듯 보였고 브로커가 안내해준 집안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다. 그녀가 생각해왔던 타운하우스와는 그 괴리가 너무 컸다. 지저분한 실내와 변변치 못한 가구들, 험해 보이는 동네환경. 그런 곳에서 그녀의 아이가 지내야 한다고 상상하니 더없이 심란해졌다. 그녀가 필리핀을 선택한 배경에는 한국에서의 환경보다 안락하고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게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가게가 오픈되면 그녀와 남편은 아이를 두고 나갈일도 많을 터였다. 가정부인 아떼를 둔다 해도 집안에만 있을수는 없는 일, 적어도 함께 놀 또래 아이들과 놀이시설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어디든 사람사는 곳이니 현지인처럼 못살 것도 없지만 굳이 이곳까지 와서 이런 환경을 감내하며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아직 어린 자녀의 문제였기에 그녀는 급격히 우울해지며 이내 피곤해졌다. 이후로 이어진 몇몇 집들 또한 처음 본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 집들의 임대료가 그리 싸지만도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시내에서 가깝다곤 하지만 당췌 그런 금액을 주고 그런 환경에서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심란해진 마음으로 머리를 싸매고 한인 사이트를 통해 집을 보기로 한 사람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커다랗고 매끄럽게 빠진 차를 타고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만에 제대로 된 한국사람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말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에 매너있는 말투, 온화한 미소를 띤 그는 그들을 반기며 그의 차를 손수 운전하여 집으로 안내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간 초행길이라 해도 생각보다 꽤 먼 거리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상점들을 지나고 몇개의 교차로를 지나 다른 도시의 이정표를 마주치며 30여분을 달렸다. 한국에 비해 좋지 않은 이차선 도로에는 차량과 더불어 오토바이, 트럭까지 빼곡했고 한낮의 열기만큼이나 그로 인한 매연과 소음, 먼지가 풀풀 날렸다. 

"초행이라 그런가요? 제법 먼거 같네요."

"처음이라 그러실거예요. 시간상으로 보면 3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저희도 처음에 시내에서 가까운 곳만 보다가 가격에 비해 맘에 드는 곳이 너무 없어 조금 멀리 가자 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현지인 매니저 소개로 몇몇 타운하우스를 보고 왔는데 몹시 심란하더라구요.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 여기 현지인들처럼 못 살아요. 저희도 처음에 가 보고 놀랐어요."

"사장님 댁이 사진으로 보니 엄청 좋더라구요. 한인 타운하우스라는 것도 맘에 들었구요.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니까요."

"아이가 있다 하셨죠? 저희 타운 하우스에 아이들 있는 집들이 많아요. 저희는 부부만 살지만 초중고 다양하게 아이들이 있어요. 아이랑 지내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실 거예요. 다 왔습니다"

시내에서 한참을 달려 좁은 도로로 접어들고도 또 한참을 지나온것 같았다. 좁은 길로 꺽어들자 오르막이 보였고 양옆으로 시골길같은 모습이 이어지더니 눈 앞에 타운하우스의 출입구가 보였다. 출입문을 지키고 있는 현지인 가드는 총을 들고 서 있다 멈춰선 차량을 보더니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입구에 들어서니 잘 정돈된 바둑판 모양의 땅들과 그 위에 지어진  멋진 집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제법 규모가 컸고 군데군데 집을 짓고 있는 공사현장과 텅 빈 집터들도 보였다. 반쯤은 집이 들어섰고 반쯤은 짓거나 들어설 예정인 듯했다. 코너를 돌아 오른쪽 창문 많은 이층집이 그의 집이었다. 넓은 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는 그림같은 이층집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창이 많아 탁 트인 느낌이 맘에 들었다. 이미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통해 봤던 집인만큼 낯설지 않아 더 반가웠다. 사진보다 더 예뻐보였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구석구석 안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인테리어가 정갈하게 돋보였고 전체적으로 안주인이 좋아하는 화이트톤으로 밝고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평소 화이트성애자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인테리어에 흰색을 선호하는 그녀의 취향과도 잘 맞았다. 


이층에서 내려온 그의 와이프는 더없이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말도 어쩌면 그리 조근조근 조리있게 잘 하던지 그들은 좀전까지 필리핀인들의 왁자한 언어와 매캐한 담배내음, 정신없던 시내의 매연과 소음에서 뚝 떨어져 낙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동네는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으며 넓직한 집들은 깨끗했고 아름다웠다. 파란 잔디마당에 아름다운 이층집들, 그리고 집안일을 봐주는 아떼와 꾸야들. 반짝이며 세워져 있는 차들과 여유 넘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그녀는 필리핀에 온 이후 처음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집이 맘에 들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내와의 거리가 멀고 임대료도 생각한 것보단 비쌌지만 그들은 그 정도는 한국에서도 감수하며 살아온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사업차 마닐라로 떠나야 해 집을 임대한다는 집주인은 집이란 낮뿐만 아니라 저녁도 봐야하니 별일 없으면 아예 저녁도 먹고 하루 자고가는 것이 어떻겠느냔 제안까지 해왔다. 그녀는 친절한 그들과 깨끗한 그들의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난밤 그녀가 지냈던 클락지구의 지저분한 콘도를 생각하니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았았다. 무엇보다 그 콘도에 거주하고 있는 동업자와 또다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초면임에도 그녀는 그들의 친절을 받아들여 그 집 이층에서 단잠을 자고 아침까지 얻어먹은 후 그 집을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앙헬레스로 알고 있던 그곳의 실질적인 주소는 '뽀락'이었음을 나중에 알았고 그곳이 한인들 사이에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빌리지란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 집을 나와 그녀와 남편은 매니저 초나가 소개해 준 몇몇 타운 하우스들을 더 둘러보았지만 그 금액에 그 정도로 안락하고 편안하며 깨끗한 곳은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인들만 산다는 점이 오히려 안전해 보였고 타운에 어린 아이들이 많다는 점 또한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은 그 집에 대한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송금한 후 한달 후에 입주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필리핀에서 지낼 숙소까지 결정하고 나니 마음의 짐이 더 없이 가벼워졌다. SM몰에 들러 그들의 가게가 될 현장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20평 정도의 매장 내부는 80% 정도 공사가 진행되었고 출입문에는 그들이 만든 상호의 comming soon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다음날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했기에 그날 저녁은 그들의 직원이 될 이들과 회식을 갖기로 했다. 한 푼이 아쉬운 때였지만 앞으로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렇다면 그녀의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 저녁 그들은 SM 몰에서 만나 적당한 가격의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함께 식사를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한달 후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앞으로 많이 도와달란 말을 잊지 않았다.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갈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남편이 현지에 남기로 했다. 동업자와의 껄끄러움을 피해 남편은 클락지구 콘도를 나오기로 했다. 남편 혼자 지낼 곳을 찾아 그들은 여러곳을 보러다녔다. 직원 중에 한명이 숙박업을 운영하는 친인척의 도움을 받아 시내에 있는 허름한 방 하나를 소개했다. 영화에서나 가끔 보던 동남아 뒷골목 허름한 여관 같은 그곳은 일단 임대료가 쌌고 월 단위로 계약이 가능했다. 열악한 환경 속 혼자 고생할 남편을 생각하면 안스럽고 미안했지만 그들은 앞으로 가게를 오픈할 때까진 어떤 비용도 아껴야 했다. 어차피 잠만 잘 거라면 굳이 비싼 클락지구의 콘도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차가 없어도 그들의 가게가 있는 SM몰까지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거리에 숙소가 있어야 그가 수시로 공사 현장을 체크하고 상권을 분석할 수 있을 터였다. 한달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조금만 고생이 되도 참으라며 그녀는 남편을 다독였다. 

"괜찮아. 난 어차피 잠만 잘 텐데 뭐. 한달 후면 당신과 우리 딸이 올 거고, 그땐 좋은 집으로 이사도 할 거고 차도 렌트할거니까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내리쬐는 뜨거운 필리핀의 햇살 아래서 어느새 까맣게 익은 남편은 그녀를 보며 애써 씩씩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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