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도 좋지만,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
회사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팀장님께 받았던 피드백이었다. 이 피드백을 받고는 조금 띵했다.
'책임감'은 내가 어릴때부터 가져온 나의 강점이자, 취준시절 자소서에 항상 넣었던 단어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책임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작은 잘못된 언어의 해석에서부터였다.
어렸을 때부터 내 일은 A-Z까지 스스로 해와서 그렇다는 그럴싸한 유년시절 습관과,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내가 스스로, 혼자 잘 이뤄내면 그게 더 훌륭한 거 아냐?'라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 그 시발점이었다.
실제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러한 관습은 큰 문제가 없었다. 대학 때는 협업을 할 일이 많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이나 조별과제 등의 경우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그건 역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 강점이 더 이상 강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때_
문제는,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입사 초기에는 업무의 퀄리티보다는 기간 내에 완수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
상사가 가이드를 주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내게 업무에 책임 질 의무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넘어가야 하는 과도기에 위기가 찾아왔다. 결과물을 타인에게 설득해야 하는 시기. 항상 옳은 결정을 해야 했고, 결정을 옳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과가 좋아야 했다. 나는 그동안, 내 장점이자 강점이라 생각했던, 그러나 어딘가 반쪽짜리 답 같은 '책임감'을 안고 일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책임감은 혼자, 모든 걸 해내는 것이었다. 업무의 퀄리티를 혼자 컨트롤하려 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건 남에게 귀찮은 일을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다른 걸 고민하는 시간을 내가 빼앗을 순 없어',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 내 도움으로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점차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같은 답 안에서만 맴돌기 시작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 강점이자 칭찬으로 들어왔던, 자부심으로 여겨왔던 '책임감'이
나를 혼자 끙끙 고민만 하는, 미련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생각에 변화를 준건 어느 날이었다. 팀장님의 제안으로, 나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 경쟁 PT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업무를 할당하고 최종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결과를 내보내야 했다.
기획의 뼈대를 세우고, 논리를 맞추고 팀원들이 가져오는 결과물을 봐줘야 했기 때문에, 모든 걸 세세하게 챙길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자연스럽게, 팀원들에게 업무를 나눠줘야 했고 필요한 자료와 아이디어를 요청해야 했다. 상사에게 보고하기 전, 내 생각이 잘 표현되었는지, 구조가 맞는지 점검하기 위해 의견을 묻는 일이 잦아졌다.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고민하니 다른 시각들이 보였다.
내가 최종보고를 했지만, 내 손과, 다른 사람들의 손이 거의 절반씩 들어간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꽤 괜찮은 결과물이었고, 상사의 칭찬도 이어졌다.
내가 모든 걸 혼자 하지 않았는데도, 일이 잘 완성된 것이었다.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그동안 들었던
책임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책임져 왔던 걸까'
인터넷에 '책임감'이라고 검색했다.
책임감(責任感) :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어디에도 '혼자, 스스로'한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저 맡은 일을 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저 잘 완수해내면 되는 거였다. 책임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봤다.
나만의 정의 : 책임감(責任感)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고, 끝맺음 짓는 그 자체
정의를 바꾸고 나니, 생각과 질문이 바뀌었다.
1. 그럼 제대로 끝맺음 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 어떻게 책임져야 하지?)
2. 제대로 끝맺음 짓기 위해서는 일정을 맞춰야 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3.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뭐고,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렇게 스케줄링해야겠다.
4. 내가 잘하는 건 이거고, 이 파트는 누가 잘 알고 있더라?
5. 도움을 요청하는 건, 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바꾸고 나니 생각의 방향이 바뀌고, 질문이 바뀌고, 다른 답이 도출되었고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 많이 묻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막힐 때는 의견을 물었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고, 포기할 일은 과감히 포기하고 팀원에게 내렸다. 훨씬 더 빠른 순환이 이어졌다.
내 강점의 정확한 가치 찾기_
내 강점인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를 모르겠는 경우가 있다.
나의 일은, 콜드 메일을 보내거나 섭외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종종은 무가로 셀럽을 섭외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팀장님이 '00님이 섭외를 잘하니 한 번 해봐요'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큰 칭찬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게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섭외를 잘한다는 게, '무엇'을 잘하는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섭외의 왕'이라고 불리던 동료의 메일을 보았다. 메일 바디를 보는 순간 '메일은 용건만, 간단히 보냅니다'라고 그동안 배워온 게 한 번에 깨져버렸다. 상대를 섭외할 수밖에 없는 이유, 요청 사항, 그에 대한 참조 내용, 개인의 경험담, 그리고 상대가 OK 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일종의 러브레터나 마찬가지였다. 나 같아도 마음이 동해서 덜컥 OK 할 만한 메일이었다.
'섭외'의 사전적 정의는 섭외: 연락을 취하여 의논함이지만,
이를 통해 깨우친 건 '섭외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상대가 취할 이득을 던져 설득시키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 그 동료는 나에게 섭외의 왕이 아니라, 설득의 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섭외'라는 능력의 본질을 깨닫고 나니, 나 역시 그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더 타당한 근거를 찾기 시작했고, 승률은 더 올라갔다. 나에게도 '새로운 섭외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단순히 '섭외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득을 잘하고, 그러기 위해 논리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바라볼 때 관점이 달라지면 그것을 새롭게 재정의할 수 있다.
직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게 직장과 직업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직업은 내 꿈과 비전을 실행시킬 도구이다. 그렇기에 커리어 패스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고,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공감하는 박진영의 직업관(1번이 직업, 2번이 꿈에 해당한다)_SBS 집사부일체 中
소설가, 문체부 장관, 교수, 언론인, 평론가.
이 모두를 한 인생에서 만들어낸 지식인 이어령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남들은 나한테, 당신은 안 해본 일이 없다. 직업이 12개나 되지 않냐.라고 하지만,
나는 오로지 글 쓰는 일 한 가지만 했다"_youtube 채널 '셀레브' 인터뷰 中
직업을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는대로 행동한다.
내 머릿속에 만들어진 개념과 관점에 따라 답을 찾는다.
개념과 관점이 늘 동일하다면 늘 동일한 답 밖에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정의와 전제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다.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언어로 재정의하라'_트위터 Sean Joh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