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차이를 안다는 것
우리 식구가 미국에서 산지 벌써 19년이 넘었다.
다섯 살, 한 살인 두 아이들을 데리고 겁도 없이 단출하게 짐 꾸려 미국에 왔다.
안정된 직장 놔두고 갑자기 공부하겠다는 남편 뜯어말리라는 주변의 권유도 많았다.
그때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이 앞서 긴장감으로 어린 두 아이 챙기는 일부터 짐 싸는 일까지
여러 거추장스럽고 힘든 일들도 가볍게 해 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의심쩍기도 하다.
두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었을까?
미국에서 살면서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가운데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과 차이에 대한 발견, 이해, 그리고 포용과 공감은 늘 새롭다.
지금도 기억나는 재미난 일이 있다.
미국 친구네 집에서 텃밭을 함께 가꿀 때였다.
어느 날 보니 심지도 않은 비름이 많이 자라나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그것을 뽑아 집에 가져와 그날 저녁 나물로 무쳐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 그 밭에서 큰 딸아이와 그 집 아들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피터는 비름이 잡초라고 뽑아 버리려 했고, 솔이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왜 뽑아 버리느냐고 따지고 있었다. 한 공간에서 살아도 서로 먹는 문화가 다르고 차이가 있는 것을 어쩌랴!
우리는 아이들 덕분에 웃으며 음식 문화의 차이를 깨달았다.
비단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나이 들어 어른들끼리 문화의 차이, 다름으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옛날 졸업식 장면이 떠오른다. 남편이 공부를 끝내고 졸업을 하던 날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미국 친구가 사진을 잘 찍어 졸업식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우리 식구와 같이 졸업식장에 갔다. 그때 시부모님과 이모님이 멀리서 오셔서 동행했다.
그 날 따라 루스는 어딘가 어색하고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표정을 자꾸 지었다.
그래서 내가 "너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니?" 하고 물었다. 그때 그녀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참다못해 물었다.
오늘 같이 기쁜 날, 어르신들의 표정이 왜 이리 심각하니?
화난 표정인데 졸업식에 오기 전 무슨 일 있었니?
어르신들이 이 기쁜 날 왜 활짝 웃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어색한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충분히 공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은 외국인들이 볼 때 화난 표정 같다. 무뚝뚝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Stone Face"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게 사실이다.
어르신들이 뒤늦게 공부해 박사학위 따는 막내아들의 졸업식 보겠다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오셨는데 그 자리가 얼마나 기쁘지 아니했겠는가?
그래도 속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활짝 웃으시기보다는 진중하게 점잖게 앉아 계시는 것뿐이었는데...
속 사정도 모르고...
내가 웃으며
" 당연히 표현하지 못할 만큼 기쁘시지! 그래도 겉으로는 신중한 표정을 짓고 계신 것뿐이야."
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루스는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그녀가 아주 놀라기도 하고 속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또 드러냈다.
우리 식구들이 졸업식 행사가 끝나고 남편이 자기 졸업 가운을 벗어 아버님께 입혀 드렸다. 그리고 어머님께도 입혀드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 루스는 깜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 남편이 노력해서 학위를 받는데 왜 부모님께 졸업 가운을 입혀드리냐? 조금 속상하고 억울하다."라고 했다. 내가 그 친구 얼굴을 보니 노력의 상징과도 같은 졸업가운을 부모님께 빼앗긴 것 같은 느낌도 든다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이것도 한국의 졸업식 문화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졸업식 때 그렇게 많이 한다고 했다. 졸업식을 하기까지 부모님께서 마음으로 많이 지원해주셨으니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야 루스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아주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서로의 문화가 많이 다르다.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는 동양문화가 서양 문화와 달리 공동체 문화인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루스는 그날 많이 감동했다고 그 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다.
어떤 일도 온전히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그동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사람의 유머, 기도, 인내와 헌신이 함께 어우러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