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말고, 집부터
관세는 벽이다. 벽만 높이 쌓는다고 텅 빈 마당이 집이 되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외쳐댄 제조업 부활은 구호로는 그럴듯했으나, 공장도 기술도 숙련된 손도 없는 빈 터였다. 러스트벨트가 죽어간 것은 세계화 탓만은 아니었다. 기계가 사람 일을 대신하는 속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장에서 필요한 것 사이의 괴리, 공동체의 해체, 마약과 정신건강 같은 민감한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서 생긴 일이다.
관세와 보조금? 그런 건 시간 벌기용이다. 정작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뭘 할 거냐는 거다. 땀 흘린 만큼 제대로 받는 임금과 안전한 작업환경,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갈 수 있는 일자리 구조, 현장과 밀착된 재교육 프로그램과 도제 시스템, 품질을 보장하는 기준과 지역 공급망, 무엇보다 마약이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바라보는 정책 등이 있어야 한다. 윤리라는 건 아침조회 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게 바보짓이 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래야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이다. 즉, 노동의 윤리가 다시 자란다.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가져와보자. 미국의 관세 장벽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변수지만,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핵심 부품이나 소재의 자립도를 높이고,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로 생산과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자동화는 냉정하게, 그러나 일자리 설계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동선을 줄이고, 숙련 기술 교육을 일상 업무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성과는 숫자로 관리하되 신뢰는 약속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품질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실패를 감점 요소가 아니라 학습 기회로 받아들이는 문화. 회사가 직원을 지켜주면, 직원도 회사를 지켜주게 되어 있다.
2004년의 미국은 지금보다 덜 낯설었다. 시간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때로는 방향을 확 바꿔버릴 줄 안다. 그러니까 우리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빈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선 우리 기성세대의 기억 속에는 공장 현장의 엄격한 규율, 납기일을 지키겠다는 약속,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협업의 리듬이 있다. 그때 우리를 끌어올린 것도 결국 '눈에 보이는 윤리', 즉 실천하는 윤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담장부터 쌓을 생각 말고 집부터 제대로 지어야 한다. 품질과 안전, 배움과 존중이 기둥이 되는 튼튼한 집 말이다. 윤리가 바로 그 집의 설계도인 셈이다. 그 설계도를 가장 정교하게 그려내는 나라가 다음 라운드의 제조업 승자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