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관찰의 함정

by jiwu

조선일보 정옥희의 칼럼 한 구절이 계속 생각났다. "한 사람의 몸짓과 내면이 긴밀히 연동된다는 전제에서 우리는 타인의 몸짓을 면밀히 관찰하며 그의 성격·심리·인품을 가늠하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파악할 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몸짓을 관찰한다. 손을 어디에 두는지, 시선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앉는 자세는 어떤지.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읽으려 했던 상대의 속내는 종종 빗나가고, 도리어 내 속내가 먼저 파악당하고 만다.


왜 그럴까. 칼럼은 명쾌하게 지적한다. "맥락이 제거된 몸짓이 친근하고 무해하다 해서 그가 친근하고 무해하다는 보장은 없다." 몸짓은 교육될 수 있고, 연습될 수 있고, 전략적으로 배치될 수 있다. 부드러운 미소와 느긋한 몸짓으로 신뢰를 얻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실제 관계가 시작되면 그 부드러움은 증발하고, 예상치 못한 날카로움이 드러나곤 한다. 반대로, 첫 만남에서 경직되고 무뚝뚝해 보였던 사람이 가장 세심하고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된 경우도 있다.


몸짓은 몸짓일 뿐이다. 그것은 내면의 '증거'가 아니라 '단서'에 불과하다. 그것도 맥락 없이는 해석 불가능한, 불완전한 단서. 우리는 너무 쉽게 몸짓에 의미를 부여한다. 팔짱을 끼면 방어적이라고, 눈을 자주 깜빡이면 거짓말을 한다고, 말끝을 흐리면 자신감이 없다고. 하지만 팔짱은 단지 추워서일 수 있고, 눈 깜빡임은 렌즈가 불편해서일 수 있고, 말끝의 흐림은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 있다.


사람들과 일하면서 더 절실하게 느낀다. 중요한 협상, 프로젝트 논의, 새로운 파트너십. 이 모든 순간에 나는 상대를 '읽으려' 한다. 하지만 몸짓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 안다. 오히려 몸짓에 집중할수록 본질을 놓친다. 정작 중요한 건 그가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하는가, '누구를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가였다.


그렇다면 타인의 속내를 파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세 가지를 배웠다.


첫째, 시간을 들여라. 한 번의 만남으로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모습과 사적인 자리에서의 모습, 위기 상황에서의 태도와 평온한 일상에서의 태도는 다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여러 상황에서 상대를 지켜본다. 협상 테이블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일이 끝난 후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일 때, 그때 비로소 신뢰가 쌓이기 시작한다.


둘째, 말의 일관성을 추적하라. 몸짓보다 더 정직한 건 말의 패턴이다. 사람들은 몸짓은 통제할 수 있어도 말의 일관성은 유지하기 어렵다. 처음 했던 약속과 나중에 하는 말이 어긋나는가. 다른 사람에게 한 말과 나에게 한 말이 다른가.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발언과 사적인 대화가 모순되는가. 계약 협상 때 나눈 대화, 이메일의 문구, 전화 통화 내용. 시간이 지나 이 기록들을 다시 읽어보면, 상대의 진짜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셋째, 구조를 보라. 개인의 몸짓이나 말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속한 구조와 그가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가다. 출판 생태계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나쁜 시스템 안에서는 나쁜 결정을 내린다. 반대로, 까칠해 보이는 사람도 건강한 구조 안에서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된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건 '관찰'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몸짓을 읽으려는 순간, 나는 이미 상대를 대상화하고 있다. 그를 분석하고, 분류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진짜 이해는 그와 함께 일하고, 갈등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온다. 그 과정은 느리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몸짓 읽기라는 착각보다는 훨씬 정직하다.


얼마 전, 처음 함께 일하게 된 사람과 첫 미팅을 했다.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거의 말을 잇지 못했다. 손은 계속 떨렸고,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자신감 없음', '소통 어려움'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준비해 온 자료를 먼저 살펴봤다. 그리고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작업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피드백을 받아들이는지, 제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그제야 알았다. 그는 단지 낯선 환경에 약할 뿐, 자기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명확한 관점과 집요한 완성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정옥희의 칼럼은 이렇게 경고한다. 맥락 없는 몸짓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그의 자질과 능력이 가려지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다고.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가 몸짓에 의존할 때, 우리는 사실 관찰하는 게 아니라 자기 편견을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긴장한 사람을 보면 '무능하다'는 편견을, 부드러운 사람을 보면 '신뢰할 만하다'는 환상을 투사한다.


몸짓은 단서다. 하지만 단서는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맥락은 시간과 관계, 구조 속에서만 드러난다.

작가의 이전글AI 시대, 장밋빛이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