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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네임입력 Jun 17. 2023

서른의 시작

서른병

어릴 적 나는 서른이 되었을 때 무엇인가 갖춰지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함이 있었다. 결혼을 하거나 세계일주를 꿈꾸며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직장에서 인정받아 적절히 일하고 적절한 보수를 받고 적절한 삶을 영위하는 그런 막연함 말이다.


하지만 거창한 나의 어릴 적 상상 속 서른은 현재의 내 모습으로 인해 와장창 깨어져버렸다. 현재의 나는 몇 년간 배운 전공을 살린 직장을 그만두고 살던 지역까지 벗어나 새로운 직장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햇병아리였고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어 결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을 생각하던 연인과 3년 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어 방황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상이 깨진 서른은 나에게 막연함이 가져다줄 희망이 아닌 불안함과 좌절감으로 가득 채워진 질병으로 다가왔다. 연인과 헤어진 이후 아무 생각 없이 주 6일 근무로 두 달간 일을 하다 몸에 무리가 와 파스와 편두통 약이 항상 옆에 있어야 했고, 퇴근 후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우울감과 자책감이 집 안을 가득 채워 잠에 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더 이상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심리치료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가 나를 보더니 

"서른병이 왔나 보네."라고 했다.


'서른병?'


사전적인 의미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검색해 보니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서른이 된다면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일들은커녕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기력함을 느껴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해지는 심리적인 질병(?)이라 했다.


나의 환상은 서른병이라는 질병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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