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키우는 재미, 꼭 아들 키우는 것 같기도 하고
딸에게 엄마가 둘이다. 진짜 엄마와 엄마 같은 아빠가 있는 모양이다. 이제 "아빠"라고 부를 때도 됐는데 언제까지 엄마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이제 아빠라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딸에게 "아빠 해봐" "아빠" "아빠" 아빠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장난치는 건지 딸은 씩 웃으며 "엄마"라고 말한다. "아빠는 어딨어?" 물어볼 때마다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가리키는 것을 보면 분명 아는데 말이다. 딸, 언제 아빠라고 불러줄 거니.
"소이 잘 자!"
"으~응"
"소이 안녕!"
"으~응"
"소이 사랑해"
"으~응"
막내 딸이 태어난 지 19월이 되더니 애교가 늘었다.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는 딸에게 "아빠 잘 자라고 뽀뽀해줘야지" 했더니 가는 길을 멈추고 되돌아와 볼을 내민다. 딸은 "뽀뽀"라고 말하면 입술 대신 볼이나 이마를 내민다. 코로나 네이티브 세대라서 그런지 절대 입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딸은 딸이다. 두 아들도 애교가 흘러넘쳤지만 딸의 애교에 묻히다. 사실 아들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일 아침 문안 인사를 한다. 쿵쿵쿵 아침마다 작은 방에서 안방으로 걸어오는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알람시계가 따로 없다. 아침저녁으로 손 흔들며 안 되는 발음으로 "안녕"하는데 녹는다.
잠자는 나를 깨우지 않고 자고 있는 머리맡에서 논다. 자는 척하면 배 위를 올라타 껑충껑충 올랐다 내렸다 한다. 그러다가 가슴에 파고들어 안긴다. 까르르 웃다가 눈 맞추고 미소 짓는다. 손가락으로 코를 꼭꼭 누르며 장난친다. (요즘 "머리 어깨 무릎 발" 노래를 배우고 있다.) 매일 딸의 애교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다.
내 생애 딸을 키운다니 감격이다. 처음으로 딸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애매한 길이에 머리숱까지 적어 묶어주기 힘들었지만 딸을 앞에 앉히고 빗질해주는 기분은 묘하고 좋았다. 조금만 더 크면 앙증맞은 머리핀도 꽂아 주겠지. 딸의 머리를 이쁘게 땋으려면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가끔 아들 셋 키우는 느낌이 든다. 노는 모습이 꼭 아들 같다. 딸은 몸으로 놀기를 좋아한다. 등이나 무릎 위에 올라타는 것이 놀이다. 두 아들과 부대끼며 과격하게 논다. 매트 위를 구르고 미끄럼틀 마냥 비스듬히 세워 미끄럼을 탄다. 침대에서 범퍼 침대로 뛰어내린다. 딸의 서슴없는 행동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딸 아빠의 근심. 어디라도 다치고 부러질까 봐 걱정이다. 딸은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났다.
퇴근하면 딸이 두 팔 벌려 돌고래 소리를 낸다. 현관에서 깡충깡충 뛰며 맞이한다. 일부로 모른 척하거나 바로 아는 체하지 않으면 난리다. 바짓가랑이 붙잡으며 안아 달라고 조른다. 안아 들어 올리면 내 품에 쏙 들어온다. 요즘 딸(아들) 키우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아내가 힐끗거리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