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꼭 김밥 싸줘"
아들이 아내에게 김밥을 싸 달라고 한다. 알고 보니 다음 날이 소풍 가는 날이었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을 떠올려보면 엄마가 꼭 김밥을 싸주셨다. 신난 아들을 보니 소풍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어릴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다. 들뜬 아들은 김밥 만들 재료를 샀는지 아내에게 재차 확인했다. 아들이 버스 타고 멀리 떠나는 것이 좋긴 좋은가 보다.
반면 아내는 걱정이 컸다. 김밥을 만들기가 부담되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마음 같아서는 시중에 파는 김밥을 사다가 도시락을 싸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실망할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사실 집 근처에는 새벽에 문을 여는 김밥 집이 없기도 했다. 아내는 걱정하며 마트에서 김밥 속 재료를 샀다. 그날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며 서둘러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사실 김밥 만들기가 쉽지 않다. 김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맛살, 당근, 시금치, 햄, 계란, 단무지는 기본으로 들어간다. 밥을 고슬고슬 잘 지어야 해서 물 양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재료를 다듬어 데치거나 볶는 것이 일인 것이다. 김밥을 쌀 때나 썰 때도 조심조심. 김밥 옆구리가 떠지지 않게 공들여야 한다.
새벽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만 들어도 바빴다. 아내는 김밥을 쌀 속 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어떤 표정으로 김밥을 싸고 있을지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김밥 싸는 아내를 보고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소풍 가는 날이면 전날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엄마의 아낌없는 사랑이다. 갑자기 어떤 마음으로 김밥을 싸셨을까 궁금해졌다.
그때는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김밥을 말았다. 밥통에 밥이 동나도록 김밥을 말았다. 소풍 갈 생각에 일찍 잠에서 깨면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슥슥 김밥을 마는 소리에 한껏 들떴다. 부엌 창호지 문을 열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 옆에 앉으면 김밥 꽁다리를 주시면서 맛보라고 했다. 김밥을 마는 어머니를 구경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지금은 길거리에 김밥o국이 천지지만 어릴 적은 소풍날이나 운동회날 아니면 엄마 아빠 따라 결혼식장에 가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김밥 먹으려고 소풍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나둘 아이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깨더니 모두 일어났다. 거실에 나와보니 아내 옆에 옹기종기 모여 김밥을 싸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내는 이내 김밥을 먹기 좋게 썰었고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 입에 쏙쏙 넣어주었다. 마치 어미새가 물어다 준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은 아기새 같았다. 아침 부엌 풍경에 뭔지 모르게 몽글몽글 감동이 피어올랐다. 부모가 돼서야 부모의 마음을 알다니 부끄러운 마음까지.
"김밥 진짜 맛있다."
입이 짧아 반찬 투정이 심한 둘째가 맛있게 먹고 있어 신기했다.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둘째가 나를 보더니 진짜 맛있다며 엄지를 척 올렸다. 한동안 집안에 쩝쩝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아내는 그새를 못 참고 둘째에게 "어제 먹은 송송 김밥이 맛있어?, 아니면 엄마가 싸준 슬슬 김밥이 맛있어?"라고 물었다. 둘째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슬슬 김밥"이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사 먹는 김밥보다 엄마가 직접 싸준 김밥이 맛있나 보다.
선생님이 되어보니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을 보면 부모가 어떤 부모 일지 그려진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보고 있으면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지가 보인다. 김밥, 도시락 싸기가 힘든 이유이다. 김밥에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함께 말려있기 때문에 맛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 젊은 날의 엄마가 그립다. (대신 아내가 싸 준 김밥을 아침부터 세 줄이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