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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Jul 08. 2022

하늘은 우중충하지만 복지실에는 태양이 떴다

하늘이 우중충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퍼붓을 것 같은 날씨다. 어제 접시에 담아 놓은 두부과자가 눅눅해진 것을 보아하니 습하긴 습한가 보다.


금요일 탓인가 날씨 탓인가 기분 탓인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날씨만큼 마음도 흐리다. 차라리 비라도 속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면 답답한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텐데. 어렸더라면 비라도 흠뻑 맞았을 것이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우울한 마음이 시원하게 씻겨 내리고 축 늘어진 몸과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 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기분 탓에 우중충한 날씨를 걸고넘어지는 듯하다.


꿀꿀한 기분을 달랠 겸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끓였다. 쓴 카누 블랙을 마실까, 달달한 맥심 커피를 마실까. 오늘따라 마음이 울적해서 달달한 맥심 커피가 당겼다. 고혈압이라 웬만하면 커피 마시면 안 되는데 이것도 습관이다. 몸에 헤로운 것을 알면서도 못 끊는 담배와 술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들고 아이들이 심어 놓은 화분을 보러 창가에 갔다. 이러려고 반려 식물을 키우는 거겠지. 한동안 멍하니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잎을 바라봤다. 금방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무심코 해바라기 줄기 따라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줄기 사이로 노란색 꽃잎이 보였다.


혼자  나서 다른 화분도 살다. 이미 꽃봉오리가 몽글몽글 맺혀있다. 이제 1, 2주 사이에 꽃 피겠다. 하늘은 우중충하지만 복지실에는 앙증맞은 샛노란 태양이 떴다. 바라기 을 보마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바람 빠진 바람 인형처럼 흐느적 널브러졌었는데 다시 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힘이 생겼다.


내친김에 해바라기 꽃말을 찾아봤다. 역시 "당신을 사랑합니다." 흔히 아는 고백의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꽃말 "기다림"에 끌렸다. 기다렸기에 사랑할 수 있었고 사랑했기에 기다릴 수 있었다.


솔직히 꽃이 안 피면 어쩌나 걱정했다. "아이들과 애써 심었는데 꽃이 안 피면 어떡하지 실망할 텐데." 꽃이 안 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생각하며 키웠다. 흙이 마르면 물을 주고 볕이 들면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햇볕을 맞게 했다. 바람맞으라고 더운 날 창문도 열었다. 3개월 동안 해바라기 꽃이 피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선생님 싹은 언제 날까요?"

"선생님 꽃은 언제 필까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꽃이 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은 얇은 줄기에 찬란하게 빛났다. 어쩌면 매일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기다림으로 무럭무럭 자랐는지 모른다.

다음 주 월요일에 토마토와 해바라기를 심은 아이들을 모아야지. 너희들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꼭 말해주고 칭찬해줄 것이야. 남은 세 개 화분에서도 샛노란 해바라기 꽃이 활짝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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