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기다리지 마, 우리 버스 차 사고 났어."
"우리 차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에 기사가 잘 멈췄고,
상대 차는 중앙선으로 넘어가기 전에 멈췄어."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에 멈췄다는 아내의 말에 놀랐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부터 살폈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유호는?" 다행히 아들은 멀쩡히 잠을 자고 있었고 아내만 충격으로 머리와 어깨를 차창에 부딪혔다고 했다. 괜찮다는 아내 말을 듣고 그제야 안심했다. 휴! 크게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야.
"여보! 내가 먼저 사고 나서 더 크게 사고 안 난 건가?"
"진짜 오빠가 액땜함"
살면서 액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될 줄이야. 아내가 교통사고가 났던 이틀 전에 내 생애 처음으로 액땜으로 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일진이 사나웠다.
"선생님 어디세요?"
출근길에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방금 우진이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는데 선생님을 찾는다며 어서 전화해보라는 것이다. 우진이 어머님이 찾는다는 말에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사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전날 담임 선생님과의 문제로 우진이 어머님이 교무실로 찾아와 언성을 높였다.
알고 보니 아이의 말만 듣고 아이를 때렸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수업 방해하는 아이를 교육복지실로 데려와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아이를 끌어안은 것이 문제가 됐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다. 어찌 됐든 교육복지실로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안고 갔으니 말이다.
한 시간 가량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날에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어머니처럼 매일 같이 아이 문제로 전화를 받으면 노이로제에 걸릴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학교 전화번호만 봐도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 싶었다. 어느 순간 자식을 잘못 키운 죄인이 돼버린 것이니 말이다.
전날처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성을 높이는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해를 푸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교육복지실은 어려울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곳, 교육복지사는 아이의 마음을 듣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가 진정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오히려 어떻게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마터면 아동 학대로 신고될 뻔했다.
그날은 자체평가보고서를 제출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우진이 어머님과 면담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만족도 조사 결과를 엑셀 파일에 코딩했다. 급하게 자체평가보고서와 만족도 조사 결과표와 교육복지 현황표를 첨부해 내부기안을 올렸다. 하필 동아리 축제가 있어 안전 지도와 사진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바쁜 와중에 다윤이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부랴부랴 다윤이 아버님과 통화를 했다.
그날따라 정신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오후에는 사전답사 출장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오전에 끝내야 했다. 지금도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교통사고가 나고 나서야 일진이 나쁘다는 것을 느꼈다. 차 사고로 정점을 찍었다.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버스 왼쪽 측면을 들이박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동료 교육복지사 있었고 나는 뒷자리 우측에 비스듬히 앉아서 단체 예약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무엇에 홀린 듯 사거리를 지나가다가 버스를 받은 것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가 순간 버스 머리가 보였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재생 속도를 줄인 것처럼 모든 것이 느려졌다. 한동안 피어오르는 연기만 멍하니 바라봤다. 조수석에 타 있던 선생님이 힘겹게 차문을 열고 비청거리며 도로로 나갈 때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한문철의 블랙박스 영상에서 자주 보던 광경이었다. 범퍼는 아주 아작이 났다. 엔진 오일은 도로에 흘러내렸고 상가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운전한 선생님은 아픈 몸을 챙길 겨를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사고 수습하느라 바빴다.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겸 커피숍에 갔다. 모두가 약속한 것 마냥 차가운 음료를 시켰다. 레몬 에이드를 마시며 그제야 숨 돌렸다. 선생님 모두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했다. 운전한 선생님이 자책을 하자 다른 선생님이 사람이 안 다친 것이 중요하다며 다독였다.
그날 밤 아내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가족에게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조금 더 미끄러졌다면, 고속도로에서 차가 전복됐다면, 뒤에 오는 차와 추돌해 2차 사고가 났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람의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 이번 일로 3초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이 정해진 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버스가 2~3초 늦게 왔으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충돌했을 것이다.
진정 액땜이라는 것이 있다면, 문득 나의 사고로 아내와 아들의 더 큰 사고를 막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주어진 시간, 살아 숨 쉬는 지금이 행복의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다쳐서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