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유 시간을 보내"
"언제 올 건데?"
(나름 머릿속으로 주어진 시간을 계산했다.)
"애들 저녁 먹이고 올게"
(아내에게 올라간 입꼬리를 숨기느라 애먹었다.)
아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세 아이를 태우고 장모님을 만나러 갔다. "그냥 자고 오면 안 돼?" 학교에 내려 주고 떠나는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심이었다. 여보! 그냥 내가 내일 들어갈게.
오늘은 예비 중학생 모임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CGV에 가서 [데시벨]과 [동감] 중에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줬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2시에 일이 끝났다.
앗싸, 이제부터 자유 시간이다.
오랜만에 허락된 자유. 솔직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지만 막상 자유의 몸이 되니 당혹스러웠다.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혼자만의 시간을 잘 쓴 것인가.
천변을 걸을까, 서점에 가서 책을 읽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쓸까, 아니면 집에 가서 어제 애들 재우다 못 본 [소방서 옆 경찰서] 드라마를 볼까.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주어진 시간은 촉박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자유 시간이 끝날 판이다. 일단 집 근처로 가자.
버스에서 내려 정처 없이 걷다가 빽다방에 들어갔다. 결국 호기롭게 온 곳이 집 근처 커피숍이었다. 집에 가서 TV를 볼까, 글을 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침에 챙겨 온 노트북을 켰다. 여기서 웃긴 것은, 아내가 집에 오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육아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커피 맛도 모르면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빽's카페라테를 마실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메뉴판을 공부했다. 오늘은 안 마셨던 것으로 마시자.
"피스타치오 빽스치노 주세요."
빽다방에 온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글도 마무리 지어간다. 한 시간 동안 커피도 반 절을 마셨다. 그 말은 아내와 세 아이가 곧 돌아온다는 말이다. 이럴 때 보면 1시간이 1년 같은 내무실 시계가 그리워진다. 몇 분만 지나면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집에 가지 않고 글을 쓰길 잘했다. 분명 집에 갔으면 빈둥거리며 TV부터 켰을 것이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멍하니 예능이나 드라마를 봤겠지. 그 순간은 낄낄 거리며 웃느라 정신없겠지만 아내가 돌아왔을 때 뭔가 허무하고 허탈했을 것이다.
아내가 큰마음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준 것인데 어영부영 보냈다가는 두 번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겠지. "여보! 그래도 글 한 편 발행했어요."
"당신은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요?"
"만약 당신에게 하루 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할 건가요?"
오늘 하루 마지막 혼자만의 시간은 어제 못 본 육퇴 후 [소방서 옆 경찰서] 드라마 본방 사수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드라마 보며 빨래 개는 것도 나름 힐링되더라. 지난주에 아껴 놓은 한맥을 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