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혼자만의 시간이 지났다. 단꿈은 원래 금방 깨는 것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현실로 돌아왔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않고 남편으로, 다둥이 아빠로.
거실은 온통 아이들이 가지고 논 장난감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색종이를 자르고 뿌렸는지 군데군데 가위질한 색종이가 흩어져 있었다. 아침에 정리할 새도 없이 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끄고 커피숍을 나온 이유는 순창으로 간 아내와 아이들이 곧 돌아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치우고 거실에 누워서 tv를 볼 것인가. 아니면 이왕 치우는 거 아내에게 감동을 줄 것인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온 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순간 현관문에 서서 고민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혼자만의 시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다둥이 아빠가 혹독한 육아에서 살아내는 법이다. 누가 뭐래도 그동안 잘 먹힌 혼자만의 시간을 쟁취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아내가 하는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아내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이 깨끗해야 기분이 좋아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거실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던 장난감부터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잘게 잘린 색종이를 한데 모아 버렸다. 돌돌이 테이프로 먼지랑 머리카락을 없앴다. 청소기만 안 돌렸을 뿐 집안을 깨끗하게 치웠다. 아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으라고 정리 정돈한 것이다.
거실을 치우고 부엌으로 가보니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가 보였다. 출근 시간에 맞춰 온 가족이 다 함께 나왔기 때문에 설거지를 할 시간이 없었다. 이왕 청소한 김에 설거지까지 해버리자. 바로 90년대 발라드 모음 노래를 틀고 고무장갑을 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후다닥 설거지를 해치웠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 들으며 설거지한다. 아내는 "언제 적 노래냐"며 세대 차이 난다고 놀리지만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설거지하는 동안만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려는 다둥이 아빠의 발버둥인 셈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에 튄 물기를 닦았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를 했다.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꾹꾹 눌러 버렸다.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까지 청소 끝.
"이만하면 칭찬받겠지?"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할 겸, 생색내려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봉~ 여태 청소했는데, 다른 거 시킬 것은 없어?"
난 애썼다고, 오늘 밤에 보자는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풋! 내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돌아온 그녀의 짧은 한 마디.
한껏 여유를 부리며 글까지 썼는데 화장실 청소쯤이야. 그날은 인심이 후할 수밖에. 오직 다음에 만끽할 혼자만의 시간을 떠올리며 화장실 청소를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위에 놓여 있는 칫솔과 치약 잡동사니를 화장실 서랍장에 넣었다. 변기와 타일 줄, 실리콘 부분에 핀 곰팡이와 붉은 물때 자국에 왁스를 뿌렸다. 한참을 솔로 빡빡 문댔다. 샤워기로 깨끗하게 씻은 다음 벽과 바닥 타일에 고인 물기를 걸레로 닦았다. 일단 집안 청소는 끝.
여기서부터 진짜 확실한 방법을 전수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긴 다음에는 어느 때보다 아이들과 잘 놀아줘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육아의 질이 달라지면 아내도 느낄 것이다.
"남편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구나."
"남편에게 자유 시간을 줘야 내가 편하구나."
화장실 청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왔다.
"여봉봉~ 유호 지호 소이야!"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얼마나 기다렸다고." 한두 시간 아이들과 신나게 몸으로 놀았다. 사실 일찍 재우기 위한 숨은 전략이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놀아서 그런지 졸려 보였다. 아이들이 눈을 끔뻑거리며 누워서 놀기 시작했다.
저녁 8시, 잠자리 의식을 일찍 시작했다. 아이들을 양치질시키고 이부자리를 폈다. 잠자리에 누워 책을 읽어줬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 날은 직접 아이들을 재워보는 것은 어떨까. 푹 쉰 날 평소보다 아이들을 잘 돌보면 앞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등 떠밀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휴가를 줘라. 집안일과 육아를 무 자르듯이 딱 잘라 나눌 순 없지만 아무리 남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서 해도 따지고 보면 아내가 하고 있는 양을 따라잡진 못한다. 알게 모르게 아내가 남편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매 끼니 챙기는 것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집안일도 아내가 하나라도 더 하더라.
사실 임신과 출산으로 아내의 사회적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휴가를 줘도 아내는 막상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친구를 만나려 해도 약속 잡기 힘들다. 오랜만에 친구 만나러 가는 아내에게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된다. "오랜만에 잡은 약속이니 늦게 들어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
웬만하면 아내가 들어올 시간까지는 카톡도 하지 않는다.
"집 걱정 말고 마음껏 놀아."
아내가 친구 만나러 나간 사이 한맥을 깠다. 맥주 두 캔을 아껴 마시며 전 날 보지 못한 [소방서 옆 경찰서] 드라마를 봤다. 비록 드라마를 보면서 빨래를 갰지만 이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며칠 뒤 아내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애들은 내가 재울 테니 커피숍에 갔다 오라고 했다. 다둥이 아빠가 또 다른 혼자만의 시간을 쟁취한 순간이다. 시키지 않은 집안일을 알아서 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면 단 몇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더라. "여보! 3시간 혼자만의 시간 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