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i파파 Dec 27. 2018

어느 외국인 아빠에게 배운 육아법

침착한 태도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내와 아들, 처제 가족, 장모님과 함께 처남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호주에 유학 중인 처남과 중간 거리에 만나 가족 여행을 즐길 요량이었다. 우리 가족은 비행기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뒷자리에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있는 승객은 뒷자리에 앉도록 배정한 듯했다.


  그중 유독 시선을 끄는 어느 외국인 가족이 있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고 싶어도 영어를 할 줄 모르니 답답한 노릇이다.(항상 여행을 하면 영어 공부에 대한 자극은 된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아무튼 2살과 7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고 아내와 딸은 조금 떨어진 옆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다.


  2살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아빠가 주로 돌보았다. 밥을 먹이고 안전벨트도 채우고 비행기 안에서는 아들을 챙기고 놀아주는 일은 아빠의 몫인 것 같았다. 엄마가 아들에게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울음이 한동안 계속될 때 잠깐 아들을 자기 자리로 데려간 것이 전부였다.(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아이가 울 때는 엄마가 최고의 진정제인 것 같다)


1. stop. stop. stop.

  아빠가 아들의 행동에 한계를  둘 때 했던 말이다. 상황은 이랬다. 아이가 안전벨트를 안 매고 돌아다니려고 했다. 순간 아들을 확 채고선(아빠의 힘과 속도를 봤을 때는 안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내 아빠는 아이에게 어떤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듯했다. 설명 과정에서 칭얼거리고 떼를 쓰는 아들. 2살로 보이는 아이로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다. 유일하게 들리는 단어는 stop. stop. stop. 분명한 것은 한계를 두는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였다.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가 되는 상황에서는 분명하게 한계를 두는 아빠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2. Look at me.

  모든 대화를 앞서 하는 말이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려고 애썼다. Look at me. Look at me. Look at me. 차분하게 아이의 눈을 응시했고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아이는 아빠의 말에 무엇이 못마땅 한지 입을 삐죽삐죽 삐죽거리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고 맞췄다.(사실 나도 비슷한 상황에 말하기 전에 "유호야 아빠 봐봐" "아빠 봐봐" 눈 맞춤을 시도했다가 내 눈을 피하는 아들에 당혹스러웠다. 아들에겐 나의 눈빛이 무섭고 두려웠나 보다.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래서 육아는 어려운 것 같다)


3. 중용을 지킨 아빠

  사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계속되는 아이의 칭얼거림과 떼쓰는 것에 외국인 아빠도 짜증 날 법도 했다. 쉽게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화를 낼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여 빠른 상황 종료를 위해 아이에게 다그치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외국인은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날 것으로 훈육하지 않았다. 외국인의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내심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외국인 아빠는 세 단계를 꼭 거쳤고 계속해서 반복했다. 이 상황뿐만 아니었다. 아이에게 훈육하는 상황일 때는 이  모든 과정을 그대로 했다. 놀라운 것은 아이의 행동이 아빠의 의도와 훈육하는 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빠의 눈 맞춤과 단호했지만 따뜻한 목소리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 탁월했다. 그런 양육 태도 덕일까. 아이는 스스로 할 줄 알았다.


  아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안전벨트를 스스로 맸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아이를 봤을 때는 밥도 스스로 먹고 있었다. 물론 아빠가 흘리고 먹는 아이를 끝까지 지켜보는 인내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는 혼자 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도록 배려했다. 숟가락과 포크 사용을 2살 아이라도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밥을 스스로 먹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2시간 정도 아빠 옆자리에서 혼자 놀았다. 아빠는 이어폰을 끼고 애니메이션 감상에 집중하고 있었고 아이 놀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이가 놀이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느껴졌을 때 한 번씩 같이 놀아줬다. 그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 혼자 놀이에 빠져 집중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분명 2살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안정감 있게 혼자 놀지... 믿기지 않아 넋 놓고 봤던 것 같다.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장면은 최근 아들에게 했던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한계 두기와 무관심하기 사이에서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았던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개입해야 할지 무관심해야 할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때론 나의 짜증스러운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단호한 태도라고 했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지시하고 강요하는 태도라고 여겼을 것 같다. 양육할 때 침착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어설프게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에 베지 않는 이상 내 양육 방법이 아니다. 짧은 순어느 외국인 아빠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재만으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