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30분. 뭘 하기 참 애매한 시간이다. 운동가기도 그렇고(귀찮고), 책을 읽기도 그렇고(귀찮고), 공부하기도 그랬다(귀찮았다). 애꿎은 핸드폰만 연신 만지작거렸다. 그사이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이러다가 이도저도 아니겠다 싶어 글쓰기로 마음먹었다.
"덜컥 덜컥"
"웅웅"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세탁기는 오늘도 돌아가는구나. 매일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듣고 30분이라도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이라고 했던가. 단 15분이라도 매일 노트북에 앉아 있는 게 중요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저자는 습관을 가급적 시작하기 쉽게 만들라고 했다. 저자는 "습관 관문"이라고 이름 붙였다. 목표가 책 한 권 쓰기면 습관 관문은 한 문장 쓰기가 되는 것이다.
"시작을 쉽게 하라. 나머지는 따라올 것이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글 쓸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미자 원액을 꺼냈다. 냉동실 문을 열고 얼음을 꺼내 머그컵에 넣었다. 오미자 원액을 얼음에 타 물을 섞었다. 나름 노트북 켜기 전에 항상 준비했던 루틴? 저자가 말한 습관 관문인셈이다.
신기하게도 아이스 오마자차를 식탁에 내려놓자마자 노트북 가방을 가지러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스 오미자차를 준비했더니 나머지는 따라왔다. 처음에는 30분이라도 써야지 생각했는데 벌써 노트북을 켠 지 1시간이 지났다. 어차피 TV는 빨래 개면서 보면 된다.
그 사이 세탁기가 다 돌아갔는지 딸깍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띠 띠리 띠띠" 세탁이 끝나는 알람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글 쓰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탈수된 빨랫감을 옷방에 있는 건조기에 넣었다. 건조기를 돌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마저 글을 쓰고 있다.
아이스 오미자차를 보고 글쓰기 위한 습관 관문을 여러 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미자 원액은 거의 다 먹었으니 새로 사고, 먹다 남은 경옥고가 있어 경옥고와 따뜻한 물 한잔도 괜찮겠다 싶다. 매일 30분 글쓰기 목표를 지키면 내게 와인 한 잔 선물하는 보상까지 더하면 어떨까. 주말 저녁 와인 마시며 드라마 보려고 악착같이 쓸 것이다. 어쨌든 오미자 원액부터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