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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각시 말고 각시가 좋다

by hohoi파파

집에 우렁이 각시가 산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누가 청소했는지 거실이 말끔하게 치워졌다. 혹시나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물독을 찾았다. 집안 어디에도 우렁이 각시가 살만한 물독은 없었다.


우렁이 각시는 청소한 흔적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출근하는 척하고 다시 집으로 가야 몰래 밥을 짓는 아름답고 참한 우렁이 각시를 볼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우렁이 각시는 언제 왔을까.


아내가 집을 비운 지 3일째 됐다. 지난 주말 둘째가 자다 말고 일어나 구토했다. 그날부터 물만 먹어도 토했다. 하루 종일 누워있더니 결국 월요일에 입원했다. 그 뒤로 아내가 둘째를 병간호하고 있다.


반나절만에 아내의 빈자리를 느꼈다. 아내 없는 아침 이렇게 정신없을 수가 있나. 아침을 먹이고 두 아이 등원 준비하는데 기운 다 뺐다. 여전히 아이들 옷 입히는 게 어렵다. 뭐 입힐까 고민하다가 시간만 늦어졌다. 엄마 없는 티 나면 안되는데.


아침에만 못 치웠을 뿐인데 도둑이 든 마냥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거실에 벗어 둔 채 널브러져 있는 내복과 수건이 보였다. 허물 벗듯 나와 이불도 그대로 펴 있었다.


"어차피 저녁에 치우면 돼."


그날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실이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왔다 갔어?" 아내에게 집에 왔었냐고 물었다. 병간호하고 오후에 출근까지 하려면 집에 올 시간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진짜 대충 치웠어." 청소기만 밀어 달라는 아내 말에 놀랐다. 아내는 오전에 병간호하고 오후에 출근한다. 퇴근하고 밤새 병간호하느라 힘들 텐데 언제 와서 청소했대.


세탁기엔 다 돌아간 빨래가 있었고 언제 돌렸는지 건조기에는 다 마른빨래가 있었다. 집에 와서 가져갈 짐 챙기고 청소하고 건조기와 세탁기 돌릴 정신이 어디에 있었을까. 그 와중에 설거지까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얼마나 힘들까. 두 아이 등원 시키면 퇴근까지 8시간 동안은 자유다. 혼자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자투리 시간에 책도 읽을 수 있다. 글까지 쓰고 있으면서 힘들다고 엄살부리면 안된다.


"수요일에 교대하자, 목요일은 내가 병원에 있을게"


아무리 우렁이 각시가 좋다 해도 우리 집 각시만큼 좋을까. 각시가 힘들다고 하면 바로 연차를 쓸 셈이다. 빨리 퇴원해서 집에 왔으면 좋겠다. 우렁이 각시 말고 각시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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