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식구가 모였다. 아버지가 부른 자리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 어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의 입만 쳐다보았다.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가 퍼졌다고 하네."
눈앞이 노래졌다. 지난 검사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잖아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말에 놀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빠 정말이에요?" 거듭 물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애써 웃음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 "아버지 아니죠?" 아무도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달려가 아버지의 말이 맞냐고 따져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입술을 악물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의사 선생님은 간 모양으로 보이는 기계를 보여줬다. 아버지의 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암세포가 곳곳에 번져 보였다. 꿈틀거리는 암세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껏 소리 내 울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자꾸 얼굴이 일그러진다.
슬픔이 짓누를 때 잠에서 깼다. 아 꿈이구나. 그제야 안심했다. 하지만 꿈틀거리는 암세포와 오열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한동안 누운 자리에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깊은 한숨을 몰아 쉬며 얼굴을 쓸어내릴 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어제 아버지가 재검사를 한다고 하셨지···."
잊고 있었다. 살기 바쁘고 아이들 챙기기 정신없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신경 쓰지 못했다. 아침이 밝아 오면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검사는 잘 끝났어요? 몸 좀 어떠세요? 괜찮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