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불태우다 홀랑 타 버리고 말았다

by hohoi파파

만사가 귀찮다.


언제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째 써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언제 또 글 쓰라는 권면 알람이 울릴지 모른다. 브런치에서 닦달하기 전에 꾸역꾸역 글 하나 쓴다.


멍한 기분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소진되면 나타나는 증상을 검색했다.


사실 글쓰기 번아웃 되었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뭐라도 써보려고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집중 못하고 그새 딴짓한다. 몇 글자 끄적이다 말고 다음에 쓰기로 미룬다.


소진은 다양한 이유로 경험할 수 있는데 번아웃이 되면 집중력 저하와 무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피로감, 두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경험하고 일을 미루는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한 동안 일이 손에 안 잡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소진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지난 두 달 동안 하얗게 불태우다 홀랑 타 버렸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새벽 글쓰기에 전념했다. 토요일은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퇴고에 매달렸다. 스스로 정한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써가며 발버둥을 쳤다. 결국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열흘이 지난 5월 18일에 최종 원고를 메일로 보냈지만 말이다.

문제는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력이 찾아왔다.


지난 두 달 동안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글 쓰고, 한 시간 운동했다. 이제는 규칙적인 생활조차 버거운 나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원인 모를 어지러움증으로 구급차를 타야 했으니 말 다했다. 지나고 보니 더는 열심히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슬프지만 완급 조절이 중요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어렵게 만든 새벽 글쓰기 루틴도 깨지는 데는 한순간이더라.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힘을 비축해야겠다. 열심히 살았기에 소진됐다 생각한다. 스스로 위안하며 며칠 더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최종 원고를 보냈다. 아직 출판사로부터 피드백을 듣지 못했다. 책의 형태로 인쇄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제 고개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정상에 오르려면 아홉 개의 봉 정도는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한숨 돌리며 까마득하게 보이는 정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팔걸이에 기대 멍하니 바라보는 저기 저 고양이 표정을 짓고 바라본다. 느닷없는 악천후로 강제 하산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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