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i파파 Jul 27. 2023

아들 방 연장 계약 조건

아들, 방 빼고 싶지 않으면

몇 주 전 방이 생긴 아들이 부럽다는 글을 발행했다. 글은 몇 분만에 실시간으로 노출됐다. 참 오랜만에 조회수가 터졌다. 언제 한 번 브런치 앱 인기글로 추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조회수가 쭉쭉 오르더니 결국 통계 랭킹 12위를 탈환했다. 아쉽지만 10위 권 안에는 들지 못했다.


그 사이 아들 방이 멋들어지게 꾸며졌다. 침대가 설치될 때만 해도 방안에는 빈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지금은 새로 산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에 교과서가 꽂혀 있고, 방과 후 수업 때 만든 클레이 작품들이 놓여있다. 이제 칙칙한 회색 블라인드 대신 블링블링한 커튼을 설치해 주면 된다.


그동안 아들의 방을 몰래몰래 들어갔다. 들킬세라 쓰윽 들어가 맥없이 책상에 앉는다. 이런 데서 글을 쓰면 없던 글감도 떠오르겠는걸. 맞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허리를 휙휙 돌리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매일 글은 쓰지 않고 장비 탓만 하는 게으른 브런치 작가는 오늘도 아들 방에 머물고 있다.

피식 웃다가 도둑이 제 발 저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냥 나가는 법이 없다. 쓸데없이 매트리스를 꾹꾹 눌러본다. 살금살금 계단에 올라 침대에 눕는다. 솔직히 그렇게 아늑할 수 없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죽 벋고 매트리스와 한 몸이 된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들이 귀신같이 부른다.


 "아빠! 내 방에 있지?"


호시탐탐 아들 방을 노리고 있는 검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아들에게 빙 둘러댔다. “아들~!!!!!!” 침대 매트리스가 너무 좋다. 의자에 발판이 있어서 편하겠다. 새 커튼을 달면 더 이쁘겠다. 주황색 빛 스탠드 조명이 아늑하다. 수납공간도 넓다. 아빠는 네 방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앞으로 책상에 앉아서 숙제하는 거야."

"책상을 쓰지 않으면 아빠가 쓸 거야."


아들에게 언제든지 방 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오늘도 거실 식탁에서 받아쓰기 연습하는 아들에게 환기시키며 황급히 방에서 나왔다. 이제는 이케아에서 산 스탠드 조명도 탐나더라.


아들 방 연장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알림장 확인과 숙제는 책상에서 한다.
2. 혼자 잔다.
3. 자기 방 정리정돈, 청소는 스스로 한다.


공간도 익숙해야 친해진다. 잠잘 때만 방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놀랍게 아들은 자기 방이 생긴 날부터 혼자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책상이 인테리어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책상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야만 했다. 하교 후 해야 할 일들을 식탁이 아닌 책상에서 하도록 했다. 되도록이면 책상에 앉아서 끝내도록 했다.


솔직히 불쑥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동생들 때문에 자기 방인 듯 자기 방이 아닌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방 주인이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하고 청소해야 한다. 언제 날 잡아서 방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방 연장 계약 조건을 내밀어야지. 아들, 얄짤없는 거 알지? 방이 생긴 자의 책임을 잊지 말지어다.


헉! 연신 아들 방이 부럽다는 글이 되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방이 부러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