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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ug 10. 2023

딸 하나는 낳아야죠

사람들에게 아들이 둘이라고 하면 반응은 늘 한결같았다. 아들 둘 키우기 힘들지 않냐며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엄지 척 하지만 금세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뀐다. 덤으로 꼭 끝말에 딸 하나 낳아야지 한마디 덧붙인다. 엄마가 외롭지 않으려면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다.


셋째까지 아들이면 어찌하리오.


솔직히 셋째마저 아들일까 봐 엄두 나지 않았다. 처조카가 놀러 와 아들 셋이 아웅다웅하고 있으면 셋째 생각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매번 피임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내심 실오라기 같은 딸 키우기 꿈을 붙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셋째는 소심한 계획하에 낳은 거나 다름없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바람처럼 운명같이 셋째가 임신이 되었다.


셋째는 특히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개월 수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초음파 영상을 볼 때마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행여나 우연히라도 다리 사이에 툭 튀어나온 무언가를 발견할까 봐 겁났다. 진료실에 누운 아내 배에 의사 선생님이 젤을 바르면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설마설마.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개월 수에 접어든 어느 날 초음파 영상을 보다가 딸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의 무서운 촉이랄까. 흐릿하고 뭉개져 뭐가 뭔지 모르겠는 영상에서 셋째의 다리 사이를 보고야 말았다. 내심 아들을 바라던 아내에게 셋째는 무조건 딸이라고 자신했다.


"이번에는 진짜 딸이야" 호들갑 떤 거지.


드디어 셋째가 태어났다. 남들이 말하는 더할 나위 없는 가족 구성원이 맞춰졌다. 아들 둘에 딸 하나. 막내가 딸이라고 하면 모두들 잘했다고 칭찬한다. 아들 둘이라고 말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호한다. 애국자라는 말도 듣는다. 나라에서 상을 줘야 한다나 뭐라나.


아들 셋보다 아들 둘에 딸하나 그림이 뭔지 모르게 안정감이 있다. 뭐 딸도 딸 나름이겠지만.


커가는 막내딸을 보면 아들 같다. 발걸음 소리는 쿵쿵, 웃음소리는 걸걸하다. 두 아들보다 개구져 말과 행동에 거침없다. 말괄량이 삐삐 같은 모습을 볼 때면 아들 셋을 키우고 있나 싶다. 아무래도 보고 배운 것이 오빠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물려주지 말았어야 했던 딱 벌어진 어깨가 한 몫한다.


"아빠 보고 싶었어."


33개월이 된 지금, 말이 터진 이후 역시 딸은 딸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딸이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애교 넘치는 목소리와 눈빛으로 품 안에 안긴다. 양쪽 볼에 뽀뽀를 하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딸아이의 애교에 살살 녹는다. 딸바보 아빠가 이래서 되는구나.


첫째는 8살이라고 본체만체 시큰둥하고, 둘째는 5살이라고 미운네다섯살의 격동기를 겪고 있다. 3년만 지나도 둘 다 하숙생 모드로 바뀌겠지. 방안에 꿀단지라도 숨겨놨는지 일제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춘기는 또 얼마나 격렬하게 보낼지 지금부터 걱정이다.   


아이 셋 키우기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셋째 낳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셋째가 아들이었어도 재밌게 키웠을 것이다. 아들 셋 우당퉁탕 육아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겠지만 아들만 있어서 느끼는 또 다른 차원의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셋째가 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도 잠에서 깨자마자 "아빠 어딨어? 아빠~" 부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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