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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Aug 16. 2023

딸바보 아빠가 딸 같은 아들이 되려는 이유

아내는 딸이랑 붙어 있는 꼴을 못 본다. 딸을 안고 있거나 뽀뽀하고 있으면 이내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시기 질투로 한마디 거든다. “작작 좀 해.” 아내는 어디선가 귀엽게? 흘겨보며 서 있다. 오늘도 딸을 물고 빨다가 아내에게 걸리고 말았다.    

 

“이래서 딸 딸 딸 하는구나!” 바라만 봐도 눈에서 순도 100% 꿀이 뚝뚝 떨어진다.     


요즘 더더욱 실감하고 있다. 딸이 크면 클수록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물론 살가움이 남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겐 그랬다. 두 아들과 막내딸은 뭔지 모르게 다르다. 뭐 요즘 들어 부쩍 아들보다 더 아들 같이 행동할 때도 있지만.   

매일 아침 딸의 문안 인사를 받는다. 밤새 안녕한지 확인하는 듯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빠! 아빠! 어딨어?” 부르면서 찾는다. 어느 날 옷방에서 새벽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 6시쯤 딸의 인기척을 듣고 없는 척 숨죽이고 있었다. 어찌나 목 놓아 부르는지 두 아들이 깰까 봐 방문을 빼꼼 열고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은 졸린 눈을 비비며 휘청휘청 걸어와 품 안에 안겼다. 매일 아침이 행복한 이유이다.


딸의 공감 능력은 일찍부터 남달랐다. 딸이 두세 살 때쯤 오빠가 방에서 울고 있으면 조용히 들어가 알 수 없는 옹알이를 하며 토닥였다.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도 딸의 공감 능력을 말하면서 반 친구들이 울고 있으면 다독여준다고 칭찬했다. 말문이 트인 요즘은 괜찮냐고 묻는다. 확실히 아들은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딸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표정이 좋지 않으면 조용히 다가와 등을 보이며 무릎에 앉는다. 그때마다 딸은 애교 섞인 말투로 [아빠 힘내세요] 동요를 틀어달라고 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안 웃을 수가 없다. 아빠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위로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간 어느 날 딸이 보자마자 아빠하고 두 팔을 벌려 달려왔다. 안아줬더니 딸이 양쪽 볼을 번갈아 가며 쪽쪽거렸다. 얼굴을 파묻고 심장 녹이는 말을 했다. “아빠 보고 싶었어.” 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찡. 이러니 딸바보가 될 수밖에. 이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이러다가 갱년기가 오면 큰일 나겠어.


두 아들은 [어른들은 몰라요]를 그렇게 틀어달라고 했었는데 그 노래나 이 노래나 마음의 찔림은 매한가지이다. 가끔 딸이 [아빠 힘내세요] 동요를 틀어달라고 하면 좋지 않은 기분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구나 자기 검열하게 된다. 무뚝뚝한 아빠의 표정 관리는 덤이다.  딸 덕분에 정신 차리게 된다.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에게 살가운 자식이 되지 못했다. 부모님 일에 무심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먼저 전화한 일이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릴 때 말고는 부모님과 여행한 적이 없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가 그동안 얼마나 적적하고 외로웠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에게 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자식이 품 안에서 떠나듯 언젠가 부모님도 곁을 떠날 것이다. 세 아이가 크면 클수록 주름이 늘고 쇠약해지는 부모님을 발견한다. 딸을 보면서 평생 아들 바보로 사셨을 부모님에게 딸 같은 살가운 아들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안부 전화해야겠다. 언제 한 번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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