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가 겪는 딜레마
이론은 꼭 어려운 학문에서만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 이론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일상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심리학이나 인문학,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이론을 통해 육아, 연애, 인간관계 같은 일상적인 일, 고민하는 문제들을 풀어 보려는 시도만 보더라도 이론은 현실과 함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현장에서 다양한 이론을 적용한다. 사회복지사는 긍정적인 성과와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람에 따라 다른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론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라도 특정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것을 보면 이론 공부는 사회복지사에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직업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이나 결핍된 욕구를 객관성을 유지하고 전문가로서 살필 수 있다. 내면에 있는 상처와 고통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통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사회복지사는 개인적인 차원의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개인이 이루고 있는 환경(가족, 사회, 물리적 환경 등)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자원 연결, 정치적 행위 같은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개입하는 일을 한다. 어쩌면 환경에 대한 개입은 사회복지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가 적극적으로 이론을 적용하고 실험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복지사의 사회복지 서비스 실천 행위는 이론을 빼고서는 설명이 안된다.
배웠던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다가 이론에 따른 성과와 다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론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사회복지사만 하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론을 근거로 일을 하는 사람(심리학, 철학, 교육학 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지 않을까.
이 생각은 대학교 시절 늘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사회복지학과는 수많은 이론들을 접하고 공부한다. 그 수가 많아서 이론과 그 이론을 주장한 사람과의 연결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무튼 외울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아서 많이 헷갈린다. 그때마다 "이렇게 많은 이론을 현장에서 쓰기나 할까"하는 생각에 책을 덮은 적도 많았다.
현장에서 일해보니 더 그런 것 같다. 현장은 이론을 적용해보고 실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론대로 맞아떨어지는 사례는 없었다.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이론도 다르고 비슷한 사례여도 개입에 따른 결과(성과나 변화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다. 이런 사실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이론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이론과 현실 사이에 겪는 딜레마이지 않을까.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의심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론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태도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이론은 현실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 인간의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 사람마다 다른 삶을 살기에 모든 것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론을 적용해 성공한 사례도 있는 반면 이론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사례도 존재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후자일 경우가 더 많다. 이론과 다른 현실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다 보니 이론을 부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반복적인 좌절의 경험은 차라리 이론이 틀렸다고 하는 편이 자신에게 나은 선택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적 태도에 불과하다.
모든 이론을 통찰하고 통합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론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으로 섣불리 시도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는 해결중심 모델과 인본주의를 선호했다. 무조건적인 긍정과 강점 중심이 좋아 보였다. 정신분석이론처럼 과거에 집중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를 통찰케 하는 노력, 사람을 보상과 처벌로 기계처럼 통제하려는 행동주의 이론도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때만큼은 모든 사례를 해결중심으로 개입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끌리는 한두 가지 이론으로 모든 대상을 동일하게 적용한 실수를 범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해야 할 원칙을 저버린 일이다. 사회복지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이론을 절대적으로 맹신한 결과다. 몇 가지 이론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이론과 이론을 주장한 사람 이름만 외운다. 이론을 만든 사람에 대한 관심은 소홀하다. 사실 이론 공부하기도 바쁘다. 많은 이론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론’처럼 사람과 이론만 외웠던 것 같다. 시험이 그렇게 나오니 그럴 만도 하다.
이론을 만들고 주장한 사람의 생애를 살피고 시대적인 배경지식을 알게 되면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론 안에는 만든 사람의 이야기, 삶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사람을 통해 이론을, 이론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론과 삶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론은 자신의 삶과 경험을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사회복지사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사람들이 호소하는 문제나 결핍된 욕구를 맥락적인 사고로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이론과 모델을 살피고 통합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전문성과 사회복지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비장 무기를 가져야 한다.
전문가라도 모든 이론을 다 잘 다룰 수 없다. 사람마다 끌리는 이론이 다르고 잘할 수 있는 이론이 다르다. 입었을 때 편한 옷처럼 내게 맞는 이론이 있다. 이론을 잘 다룰 수 있는 재능과 강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찾고 연마해야 한다.
자신이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이론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전문성을 갖추는 가장 빠른 길 같다. 내가 잘 못하는 분야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내가 다하려는 욕심이 어느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하게 한다. 한 분야에 최고가 되는 길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만 통찰하는 사고를 바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