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교육복지실 창밖을 바라봤다. 천변을 바라보니 계절이 바뀌었다. 시간 참 빨라. 얼마 전만 해도 붉게 물든 가로수길이 가을을 알리더니,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바짝 말라붙은 잎들이 찬 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금세라도 떨어질 듯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그 사이 기록적인 첫눈이 내렸다.
첫 출근 때
9월 복직 후 바쁘게 지냈다. 새 발령지가 신규 교육복지 중점학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학교도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첫 출근하던 날, 업무 책상과 컴퓨터도 없었던 텅 빈 교육복지실을 보며 어찌나 막막하던지.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교육복지실에 원목 바테이블까지 들여져 있다.
현재 교육복지실
처음은 인테리어 공사가 마무리되었다고 하기에는 그냥텅 빈 교실이었다. 공간 구분은커녕 파티션조차 없었다. 알고 보니 바닥 전체에 전기보일러 시설을 설치하고 목재로 벽면을 마감하는 데 대부분의 예산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교육복지실이라기보다는 치어리딩을 해야 할 것 같은, 교실 벽면을 목재로 마감해서 구운 계란을 까먹고 식혜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필 조달청에서 구입한 업무 책상과 의자가 늦게 도착하면서 한 달 넘게 2학년 교사 연구실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그러는 사이 첫 책을 출간한 일조차 까마득하게 잊혀갔다. 책을 냈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그동안 작가의 삶과는 무관하게 지냈다. 아니 여전히 그렇게 지내고 있다. 겨우 책을 읽을 뿐이다. 그 또한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두 번째 책을 기획하고 초고를 쓰겠다는 목표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부랴부랴 글쓰기 불씨가 꺼지기 전에 오래전브런치에 저장해 둔 글을 조심스럽게 다시 꺼내 다듬는다.
학교 창고, 복도에 쓰지 않아 보관되고 방치되었던 서가, 책상을 가져다 놓았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간다. 육아와 직장 쳇바퀴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인다. 무한 반복 게임. 강제 종료 버튼 따윈 없다. 하고 싶은 일들을 간신히 붙잡아보지만 바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데, 여유는커녕 자책만 남는다. 그 사이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어느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저자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둘의 경계를 정확하게 나눌 수 없다고 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밀려오는 무력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생 첫 책 쓰기 꿈을 위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위로했다.
돌아가야 할 일상이 있기에 여행은 더 짜릿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 여행? 두 번째 출간, 동네 서점 운영을 꿈꾸며, 바쁜 일상을 조금 더 온전히 누려보기로 했다. 하지 못했던 일들, 못하는 일들에 얽매이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을 기울여 보기로 한다. 그 속에서 작은 성취와 기쁨을 찾아가며, 다시 여행을 떠날 날을 기다려본다. 일상은 어쩌면 또 다른 여행의 출발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