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실 창밖은 참 차분하다. 그간의 혼란을 잠재우듯 세상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다. 그새 거센 눈보라가 눈앞을 가렸다. 살얼음 위에 소복이 쌓인 전주천에서 오리 떼가 한가로이 물질을 하고 있다. 천변의 가로수길을 따라 자동차들이 어디론가 달린다. 멀리 보이는 페이퍼 공장은 제 소임을 다하듯 연일 굴뚝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누군가는 창밖을 보며 '일할 맛 나겠다'라고 감탄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가 없어 더없이 좋다. 벚꽃이 피는 4월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따라 모락모락 김이 나는 머그컵 옆으로 책상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둔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인생에 관한 책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하는 그런 책들. 이제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 책 에필로그만 읽으면 된다. 작가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나름의 방식대로 살라고 했다. 그것이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저자의 방법을 보며 아직 읽지 못한 에필로그 '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올해 떡국 한 그릇 더 먹으며 마흔셋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으면서 훌륭한 신념을 올바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잘못된 신념을 폭력으로 실천하려다 실패한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이 책은 나에게 해독제와도 같았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에 머물고 있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각자 나름의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중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응원봉으로, 난방 버스로, 키세스 시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