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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Feb 17. 2019

결혼 전과 후가 바뀐 명절 풍경

부모님은 역시 며느리와 손자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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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원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으로 네 식구다. 우리 가족의 성향은 대부분 조용한 편이다. 혈액형으로 성격의 모든 면을 말하기는 무리가 있으나 모두 A형이다. 내향적인 성향에 소심하고 어딘가 가슴 한편에 상처 하나 짊어지고 살아간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증조할머니를 모셨다. 증조할머니는 아흔이 넘는 연세에도 정정하셨다. 임종 순간도 그랬다. 아무튼 증조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까지 명절이나 제삿날이전국에 있는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돌아보면 연휴 내내 시끌벅적했고 손님맞이에 분주한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남자, 여자 따로 밥상을 차렸다.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명절이나 제사가 아니면 먹어보지 못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그날만 기다렸다. 과일 바구니 안에 온갖 종류의 열대 과일(바나나가 귀했다.)과 특히 곶감과 밤을 먹기 위해 새벽을 넘기는 제사에도 꿈벅 꿈벅 졸린 눈을 비비며 버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명절의 모습도 바뀌었다. 점차 명절이나 제사 때 간소하게 지내게 됐다. 점차 친척들의 방문도 줄었다. 명절 문화가 바뀐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니신 이후로 다시 한번 분위기가 바뀌었다. 제사 대신 기일로 지냈고 그때부터 오롯이 우리 네 식구만 명절을 보냈다.


  조용했던 네 식구 명절 모습은 내가 결혼한 뒤로 다시 바뀌었다. 아내가 넉살이 좋고 워낙 성격이 좋아서 무뚝뚝한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충분했다. 아내 덕에 활력이 생겼다. 어쩌면 결혼 자체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용했던 명절 모습에 숨이 트였다. 아버지, 어머니도 웃기 시작했다. 모습마저도 부모님이 노력하는 것을  나는 안다.


부모님의 활력소는
나의 결혼이었고 아내였다


  결혼할 때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집안 분위기에 혹여나 아내가 놀라지 않을까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많은 걱정을 했다. 침묵에 가까운 우리 집 분위기에 반에 처가댁의 분위기는 우리 집과는 상반됐다. 처가댁은 형제가 많고 가족끼리 단합이 잘 됐다. 한마디로 즐겁고 유쾌한 가족 분위기였다.(결혼하기 전 처가댁 명절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신 이후에 명절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물론 지금 교회 출석이나 예배드리진 않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처음 교회 다니게 된 이유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아버지에게 당부한 말을 따르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아버지의 변화에 놀랐었다. 아버지는 내가 교회를 다닐 때 싫어했었고 화냈었던 분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변화에 감사하다. 만약에 아버지가 예배식으로 명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 한마디로 끔찍하다. 지금도 그 많은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고지식한 시아버지를 감당하느라 아내와 적지 않은 갈등으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부모님은 결국 아이였던가


  아이가 태어났다.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첫아이와 명절을 보낸 모습이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듣지 못한 웃음소리가 고요했던 집안을 울렸다. 부모님은 결국 손자, 손녀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아이는 아버지와의 서먹한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지극하다. 때로는 너무 지나치고 아버지 방식대로 하기를 강요하지만 어쨌든 손자는 아버지의 또 다른 삶의 목적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이를 가진 아내를 위해 곰장어, 토마토, 키위, 온갖 생선류, 바나나, 딸기, 시금치... 산모에게 좋은 음식을 날랐다. 때론 아내를 위해인지 손자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아버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2019년 4살이 되는 아들과 보낸 설 명절은 더욱 웃음꽃이 폈다. 아들은 성향이 외향적이라 말과 행동이 에너지가 넘친다. 에너지의 소비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남자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도 많고 애교도 많다. 이제 말문이 틔여서 맥락과 상황과 전혀 상관없이 아무 말 대잔치다. 이 모습에 부모님은 배꼽 잡는다.


  설이 지난 2월 11일에 둘째가 출산했다. 추석이 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첫째는 동생을 잘 맞이했을까. 둘째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할지. 남자 둘을 키우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되고 궁금하다. 아마 몸으로 노는 아들 덕에 나의 몸은 남아나진 않겠지만(보약 하나 지어야겠다.) 어쨌든 힘들어도 마음으로는 풍요롭지 않을까. 무엇이든 간에 우리 가족이 건강만 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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