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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Feb 19. 2019

똥오줌 먹어가며 키운 아들

아들아 우린 그런 부모였단다

김제 지평선 축제에서

  첫아이를 생각하면 많은 에피소드가 떠올라 뭔지 모를 웃음이 입가에 피어오른다. 희로애락을 품은 아이라 더욱 사랑스럽다.

곡성 기차마을에서

  첫째는 4살 남자아이로 오형이다. 전형적인 오형 성격이다. 어려서부터 낯선 사람들도 잘 따랐다. 사회성이 좋은 건지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아파트 단지에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 칠 때면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한걸음에 달려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런 성격의 좋은 점은. 시댁이나 처가댁에 가면 더욱 빛난다. 양가 부모님들을 잘 따른다. 오랫동안 보지 않아 서먹할 텐데도 적응하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것 같다. 어느새 부모님 무릎에 앉고 품에 안긴다. 할아버지 할머니만 보면 무조건 우는 아이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들은 감정 표현도 잘한다. 아이가 크면서 단순했던 감정도 분화되었다. 짜증내고 우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표현했다면 지금은 다양하게 표현한다. 사실 나와 다른 성향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아이가 부러울 때도 많다. 서운하다, 속상하다, 보고 싶다. 요즘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나 삐졌어."라는 표현을 한다.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크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동생이 생겨 다시 아기로 돌아간 것 같지만(사실 네 살이면 아이가 맞는데 첫째라고 기대감이 큰 것 같다.) 조금만 걸어가도 "안아주면 편할 것 같은데.", "안아주면 보일 것 같은데."라고 떼를 쓰는 아들에 속수무책이다. 그런 모습도 웃기다.

  아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내와 배꼽 빠지게 웃었던 일이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됐을 때 일이다. 아내가 새벽에 똥 싼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아들의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생각나서 웃긴다. 아무튼 뿌지직 뿌지직 방귀 뀐 아들과 화들짝 놀란 아내의 입안에 아들의 변이 있었다. 놀란 나는 부랴부랴 뒷수습하기 바빴다. 비위 약한 아내는 그날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내에 이어 며칠 전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다. 며칠 전 출장으로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둘째 출산으로 아내는 산후조리원에 있는지라 첫째 아들을 처가댁에 맡기고 갔다. 하루 종일 아들이 나를 찾았다는 아내의 말에 하루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접고 출장이 끝나자마자 가장 빠른 시간대 차를 타고 급하게 왔다. 몸과 마음이 급했든지 피곤했든지 그날 사고가 일어났다.


  터미널에서 내려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한 차로 갔다. 타자마자 아내에게 도착 문자를 보내고 시동을 켰다. 자동차 예열을 위해 잠시 기다렸다. 목이 말랐던지 갈증이 났고 마침 운전석 옆 음료수 거치대에 있던 병이 보였다. 목마름을 해소할 정도의 양은 됐다.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음... 뭐지... 상했나... 이상한 이 느끼함은... 정신을 차려보니 음료수 통은 전날 아들과 여행하면서 아들 오줌 받아 논 오줌통이었다. 찝찝함과 비릿함이 뒤늦게 느껴졌다. 치아 사이사이 오줌이 껴있는 것 같은 느낌은 나의 정신을 점점 빼놓았다. 입을 헹구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날아갔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아내를 대신해 아들을 전담해서 하루 종일 있어보니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 아들도 어느 정도 느꼈을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신경 써도 아내의 손을 따라갈 수 없었다. 잠자리에 들어가 아들을 재울 때면 엄마를 찾는 아들을 보며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아빠가 대신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래도 엄마 없는 일주일을 잘 버텨주는 아들을 보며 감사하다. 아들아 잠깐의 서운함을 너의 똥과 오줌을 먹은 부모와 바꾸지 않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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