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들과 함께 지리산을 걷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까지

by hohoi파파

오늘은 큰마음먹고 아이와 지리산에 갔다. 언제 한 번쯤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용기 냈다. 전날엔 무주 덕유산에 갔고 오늘은 지리산이라니 이 모든 것이 미세먼지가 최악이라 그렇다. 아무튼 지리산으로 출발했고 성삼재 휴게소로 향하는 중 지리산 휴게소에서 소떡소떡을 먹을 요량으로 잠깐 쉬었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미안해 소스를 너무 발랐지?

아들 놀려 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분수대로 보이는 조형물을 공룡알이라고 했더니 신기했는지 주변에서 맴돈다. 4살 남자아이에게 공룡이란 신비한 동물이고 한창 역할놀이 대상이다. 아마도 이때 공룡 이름을 가장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아들 덕에 나 역시 몰랐던 공룡 이름까지 외우고 있다. 그래도 공룡알이라고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멈칫하는 아들을 보니 아직까지는 속이는 재미가 있다.

공룡알이야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눈앞에 드디어 성삼재 휴게소가 보인다. 긴 여정이었다. 이날 등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주차장에 차 댈 때가 없어 한참을 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주차를 하고 등산로 진입을 위해 걸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4살 아들과의 등산이 이렇게 쉽지 않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주차장에서 선 따라 놀기

지리산은 지리산이었다. 아직도 지리산은 추웠다. 계곡물이 꽁꽁 얼어 멋진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아들 역시 신기했던지 망설임 없이 얼음 위로 성큼성큼 걸어가 한참을 놀았다. 긴 나뭇가지를 줍고 고래를 잡는다나 뭐라나. 이때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어쨌든 노고단까지 가려면 서둘러서 가야 했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다. 요즘 아들이 조금만 걸어도 안아달라고다. 이날도 어김없이 조금 걷더니 나보고 안아달라며 양 팔을 쭉 편다. 막막했다. 이렇게 가다간 입구에서 시간 보내다가 집에 갈 노릇이었다. 눈앞에 제설도구함이 보였다. 유호야 저기 노란색 보여? 어디... 저기... 어디... 분명 봤음에도 어디냐며 장난치는 아들에 손가락으로 저기라고 가리켰다. 저기까지만 유호가 걷는 거야 그다음엔 아빠가 안아줄게라고 어르고 달랬다.

아빠의 작전이 통한 하루

그렇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여긴 걷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잘 포장된 길에 비록 돌아갔지만 편안한 길로 올라갔다. 몇 분을 걸었을까 계단이 보였다. 사실 아들을 안고 가려고 했다. 아들은 계단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올라갔다. 지금까지 걷다가 안기다가 반복하면서 올라와서 놀랐다. 아들은 계단 오르는 것은 재밌나 보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와우! 허벅지 튼튼함이 사진을 뚫고 나옴이 웃긴다.

어르신 마냥 등산을 많이 다닌 폼이다. 반절 오르고 돌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었다. 삶은 계란, 딸기, 바나나를 챙겼고 아들은 그 자리에서 딸기를 다 먹어치웠다. 내가 반절 이상은 안아주고 왔는데 아들 역시 갈증 나고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딸기를 먹으면서 산아래를 내려다보는 아들의 뒷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나도 아들도 힘들었다. 아들을 안다시피 산에 올라와서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속으로 그만 돌아갈까도 많이 생각했다. 나도 아들도 털썩 주저앉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정말 거의 다 왔다. 드디어 노고단 대피소다. 어떻게든 와보니 아들도 기분이 좋았는지 다시 생생해졌다. 사실 초코파이로 꼬드겨 여기까지 왔다.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초코파이를 샀다. 여긴 초코파이 2개가 900원이다. 비싼 건 둘째치고 우리는 당이 필요했다. 나는 나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먹다

노고단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다. 저 길 끝에 노고단이 있다. 모든 일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항상 고비가 있는 것 같다. 지칠 때로 지쳐있을 때가 가장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빠, 엄마 어딨어?
엄마한테 갈래!
차로 가자. 집에 갈래!


아들이 나에게 이 말을 할 때 정말 힘들어했다. 36개월도 안된 4살 아이한테 다소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때 나도 살짝 망설여졌다. 사실 산이 오르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온 만큼 되돌아가야 한다. 그 길이 더 힘들 것 같아 그만둘까도 생각 많이 했다.

그래도 끝까지 가고 싶었다. 정상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의 회유는 시작됐다. 안 가겠다고 칭얼거리는 아들에게


유호야 조금만 가면 도착이야!
정상에 가면 근사한 게 있대!
저기 사람들도 그거 보려고 가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힘내서 가보자!


나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이 말을 듣고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좋아! 가자!


드디어 노고단에 올랐다. 비록 노고단 정상은 아니지만 더 이상 가는 것은 무리였다. 아쉽지만 노고단에서 하늘도 보고 산아래도 내려다봤다. 아들도 신기했는지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왕복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했을 거리를 네 살 아들과 함께 오니 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함께 오른 등반이 좋았다.


그날 유호와 같은 또래로 보이거나 한 두 살 많은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분명 비슷한 나이 같은데 산에 오르는 걸음은 한두 번 온 폼은 아니었다. 한 손에는 스틱을 들고 아빠에게 보채긴 했으나 혼자서도 잘 걸었다. 유독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아들 만 셋인 가족이었다. 누가 봐도 어린아이들인데 산이 익숙한 듯 힘든 산행도 묵묵히 걸었고 좋아했다. 막내는 아빠 등에 업혀있었고 혼자 데려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셋이나 데려온 한 아버지에게 대단함을 느낀 하루였다. 어쩌면 둘째도 남자인 나의 머지않은 미래 같아 그랬나 보다.

하산길 노고단 대피소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항상 아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오늘은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


유호는 곰이랑 음... 다람쥐라고 대답했다. 정상에 오르면 곰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이 야생에서 곰을 직접 만나면 큰일 나 다음에 동물원 가서 곰 보여줄게. 지리산은 반달곰이 출몰할 수 있어 이곳저곳에 곰 그림과 경고 현수막이 있다. 노고단 대피소에 있던 곰 그림을 보고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아들은 다람쥐가 꽁꽁 어디론가 뛰어가는 장면에서 가장 흥분하며 좋아했다. 자연은 아이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낮잠 안 잔 아들이 졸려해 하산 내내 애는 먹었으나 산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등산객들이 아들을 보며 파이팅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들의 눈에는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귀여웠을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힘내라는 말을 듣는 것 하나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지리산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며칠 전 아내가 예전 데이트 때 남원에서 먹었던 돌솥 오징어볶음이 먹고 싶다는 말 때문이다. 지리산에 갔다 오는 길에 경유해서 오기 딱 좋았다. 남원에 맛집이기도 해서 하산 후 부랴부랴 전화를 했는데 이미 영업이 끝난 뒤였다.



어쨌든 오늘 아들과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아들이 오늘을 이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산에 오르는 것이 즐거웠고 힘들었지만 아빠와 함께 해서 괜찮았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해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와 산에 오른 것을 떠올려야겠다고 말이다. 이 역시 욕심인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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