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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11. 2019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동요도 골라서 틀어주세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 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주세요 -뽀로로 동요-


아들과 고창읍성에서

 요즘 4살 아들의 애창곡이다. [아무것도 몰라요] 이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아들은 목청도 커서 목소리도 크다. 쩌렁쩌렁하게 음정 박자 무시하고 흔들흔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노래 부르는 아들의 모습에 어이없으면서 웃긴다. 딱 4살의 귀여운 모습이다. 그 모습도 잠시 노래 가사가 아내와 나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이 노래는 차에 타는 아들이 심심할까 봐 틀어준 뽀로로 동요 모음에서 나오는 노래다. 뽀로로 밴드가 열창하는 노래라서 그런지 듣고 있으면 신나고 몰랐던 동요를 알게 돼서 좋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익숙한 동요도 많이 나와 반갑기도 하다. 차에 타면 지루해하거나 보챌 것을 예상해 항상 틀어주었다.


  아들의 언어발달은 뽀로로에서 시작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이 툭툭 뱉는 말 한마디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신기하면서도 난처할 때도 많고 당황스러운 표현을 쓸 때도 많다. 생전 우리가 쓰지 않는 표현을 쓸 때면 뽀로로, 타요타요, 띠띠뽀에서 나오는 대사였다. 그중에 뽀로로가 가장 많았다.


  3살에서 4살이 되니 언어가 놀라운 속도로 발달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부터 어휘력이 늘기 시작했으며 전에는 짧게 단어로 말했다면 지금은 그럴싸한 문장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물론 아직 문맥상 아무 말 대잔치 할 때가 많다) 마치 스펀치가 물을 빨아들이듯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를 언어로 흡수하는 듯 보였다. 아내와의 대화를 그대로 따라 해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아침해가 밝았어요


  우리 가족 중에 아들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 일찍 재우나 늦게 재우나 일어나는 시간이 같은 아이는 처음 본다. 우리 아들이 그렇다. 늦게 재우면 늦게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과 믿음을 항상 깨는 아들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서 아들은 자고 있는 우리에게 "아침해가 밝았어요."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런 표현을 하는 아들이 신기했다. 분명 전날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에 말문이 트이듯 예전에 들었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도대체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하지 하루 종일 궁금해했다. 우연히 뽀로로를 같이 볼 때가 있었는데 뽀로로가 하는 대사였다. 사실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의 노출로 대사가 아이에게 각인됐다는 것은 아이의 발달이 그만큼 폭발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어쨌든 아들 덕분에 발달단계를 공부하게 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동요도 골라서 들려줘야겠다. 이 노래는 아내와 나에게 아킬레스건과 같다. 아들이 뜻을 알고 노래를 부르는지 그냥 우리들의 반응이 재밌어서 부르는 건지 아님 단순하게 자기가 좋아해서 부르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아들의 노래 부르는 타이밍이나 행동을 보면 뜻을 알고 부르는 게 분명하다.


  주말은 아내를 위해 첫째와 여행을 다닌다. 토요일에 고창에 다녀왔다. 고창에 오가는 길에 아들이 깨어 있을 때 어김없이 뽀로로 동요를 틀어 주었다. 다른 노래에 반응하는 것보다 유독 [어른들은 몰라요] 노래가 나오면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 부분에서..."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어제는 "장난감만 사주면... 예쁜 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라며 부르는 게 아닌가. 마치 코러스 같고 화음 같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시위하듯 보란 듯이 부르는 모습에 웃다가도 생각에 잠겼다.


   장난스럽게 아빠는 유호 마음 잘 알지?라고 물었다. 질문이 잘 못 되었다. 아들은 이미 내 머리 위에 있는 듯했다. "아빤 모르고 엄만 알아"라고 답하는 아들. 워낙 장난기가 많아 장난치는 아들에 빈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서운한 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또 물으면 "아빤 알아"라고 답하는 아들 두발 두 손 다 들었다.


  같이 있고 싶어

   

  아들의 진심은 이 말에서 묻어 나왔다. "같이 있고 싶어"라고 혼잣말하던 아들에게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들의 말에서 아이들은 장난감, 예쁜 옷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속으로 함께 있지 못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자식이 원하는 것을 사주는 부모는 안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쁘다는 이유로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고 피곤하단 이유로 미루고 남들 부끄럽지 않은 뒷바라지, 환경 만들어주기가 최고의 부모 역할이라고 믿는 믿음이 어쩌면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온전한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따뜻하게 감싸주고 안아주는 사랑해주길 바란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주길 바란다. 행복의 조건에 경제적인, 환경적인 요소도 포함되어있지만 그 영향은 미비하다. 결국 내면의 힘이 중요하다. 내면의 힘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싹이 뜬다. 그래서 아이의 행복과 성공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물려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많은 유산 중에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이지 않을까. 어제오늘 아들이 장난스럽게 부른 동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다니 아들에게 고맙다. 아들이 의도든 의도치 않든 그로 인해 배우게 돼 감사하다.         


밥 먹다가도 열창 중인 아들. 아들아 가수 할 생각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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