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멈추게 하는 주범, 잔소리

by hohoi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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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소리가 대화나 소통을 방해하는 주범이라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경험했다. 잔소리는 뇌를 멈춘다는 연구도 있다. 상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상대의 말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더 이상 상대의 말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못 미친다. 잔소리는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활성화시킨다. 단지 나를 괴롭고 듣기 싫은 말에 불과하다. 그때부터 대화는 단절된다. 상대의 모든 말에 감이 들며 한 귀로 흘려듣게 된다. 심지어 반항심까지 일어난다. 어쨌든 잔소리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 주범이다.


짝사랑이 이루어 지기 어렵듯 원활한 대화와 소통은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 성사되기 어렵다.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말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와 상대가 수평적인 관계 일 때만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없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면 항상 답답함에 불편했다. 자식 된 도리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후회감만 들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뿐이다. 어쩌면 불편한 감정을 꾹꾹 누르는 나의 모습에 지쳤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벽에 대고 이야기하면 이 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반복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나를 지치게 했다. 반복된 좌절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 이야기할 때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부당하고 억울하고 아버지와 달리 생각하지만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 나의 이러한 태도는 목숨 걸 일도 아닌 일에 목숨 걸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어차피 나의 생각과 마음은 중요치 않다는 것에 비롯됐다. 속 시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귀와 입을 닫는 자동적 반응을 하고 있었다.


그만 말하라고


최근 아들이 나에게 한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들에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에 불과한지 눈에 거슬리는 행동(습관처럼 코를 파고 눈을 비비는, 동생을 꼬집거나 힘껏 누르는, 카시트 안전벨트 매기, 양치질 하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는 나에게 "그만 말하라고" 짜증 섞인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4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맞는지 놀랍기만 하다. 나의 간섭과 조정은 아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싶어 할 때부터 시작됐다. 4살 아들의 입장에서 나의 말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는 훈계에 지나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나는 억울하다) 어쨌든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에 대한 간섭을 안 하기란 어려웠다. 좋은 방향으로 안내하고 조력하기 위해 부모의 잔소리는 필요하다. 다만 자녀 입장에서 듣고 싶은 잔소리는 따로 있었다. 자녀와의 효과적인 대화를 위해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다음 글은 아이 눈높이에 맞는 대화법에 대해 올릴 예정입니다. 아들과 아웅다웅했던 시행착오의 내용을 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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