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를 고민하시나요?
네! 너무 고민했었습니다.
익살스러운 아들, 아들 말과 행동에 웃음이 넘친다 둘째가 태어난 후, 삶의 패턴이 그 전과 또 다르다. 첫째 때는 아이가 한 명이라 아내와 내가 집중해서 돌볼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돌보고 있으면 아내는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볼일을 봤다. 서로 교대가 가능했다. 가끔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거나 단둘이 차를 마실 수 있어 좋았다. 그만큼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었는데... 둘째가 태어난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솔직히 아내의 힘듬을 덜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지만 나는 기껏해야 퇴근 후 잠깐, 주말에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전부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아내가 더 바빠졌다.
첫째가 4살 될 때 숨통이 뜨였다. "아이가 3살까지는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처럼 적어도 3~4년을 더 기다려야 그날이 다시 찾아오겠지. 첫째와 놀아주다가도 시간 되면 배고파 우는 둘째, 분유 먹이기 위해 거들어주기 바쁘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아프면 결국 둘 다 병원 신세를 못 면한다. 어느 때보다 병원에 많이 가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잠 패턴이 또 바뀐 둘째에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그나마 나아진 점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벌벌 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하루하루 두 아들을 키우는데 아내와 나는 정신없다.
그런데...
요즘...
셋째를 고민하고 있다.
둘째가 태어난 지 5개월이 지났다. 다시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는 젖먹이 육아로 돌아갔지만 배냇짓(눈만 마주치면 웃는다)하는 아들을 보면 쌓였던 피로도 싹 가신다. 아들 옆에 나란히 누워 아들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면 어느새 아들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들 역시 나의 눈을 보고 옹알옹알하면서 입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셋째를 상상하게 된다. 셋째는 어떨까? 아들일까? 딸일까? 뭇 여성들에게 돌 맞을 일이지만 궁금하다. 갓난아이를 보면 아이를 또 낳고 싶은 엄마의 마음처럼 남자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다. 요즘 부쩍 아내와 셋째 이야기를 한다. 셋째는 아들일까? 딸일까? 서로 확실히 딸이라고 한다면 낳겠다며 맞장구를 친다. 오히려 아내는 어물거리는 내가 확실하게 정해주길 바랐다. 내가 낳자고 하면 낳을 기세였다. 아내도 나도 딸(아이)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나 보다.
사실 나는 첫째가 딸이길 바랐다. 내가 장남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첫째가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아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장남의 불필요한 책임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다. (사실 이 또한 편견임을 안다) 그보다 아내를 닮은 딸을 상상하면, 귀엽고 이쁠 게 분명했으니... 딸이 이다음에 커서 아내와 같이 쇼핑하러 가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아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엄마한테 딸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살가운 아들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들만 있는 엄마는 수명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다음 나와 아들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딸이 채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도 아들이었다. 이번 생애, 나에게 딸은 없나 보다. 남자아이라고 알려주는 의사 선생님이 야속했다. "고추네요."라는 선생님 말에 한동안 멍하니 말을 잇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순간 병원 내에 흐르는 정적은 나의 심정과도 같았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이별의 5단계처럼 처음에는 아니길 부정했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됐다. 오히려 남자 형제가 두 아이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다.
나의 잘못된 편견은 깨졌다. 남자는 무뚝뚝할 거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고 편견이었다. 내가 못 이룬 나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키우기 나름이었고 성별의 차이가 아닌 성향의 차이였다. 첫째 아들은 수다쟁이다. 남자아이는 무뚝뚝할 거란 생각을 했는지... 아이가 크면 클수록 나의 편견이 깨졌다. 첫째 아들은 산후 조리원에서부터 남달랐다. 수유하러 갔다 온 아내의 말에 따르면 소리가 남다르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옹알이도 말도 빨랐다.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는 말소리가 마치 딸 같다. 요즘 말로는 아들을 이길 수 없다.
둘째도 말이 많다. 첫째 때처럼 쉬지 않고 옹알거린다. 분명 첫째에 비해 태교 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첫째가 나 대신 한 태교 덕이지 않을까. 두 아들을 보고 있으면 속으로, 하늘은 나에게 딸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딸 같은 아들들을 선물해주셨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태어난 지 5개월 밖에는 안됐지만 옹알이는 첫째 못지않다. "유호보다 더 말이 많겠는데?" "더 세겠어!"아내와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는 단둘이 있고 싶다 나는 셋째를 마음에서 접었다.
솔직히 셋째를 가지고 싶었으나 선뜻 가질 수도 없다. 아들일지 딸일지 모른 판에 모험할 수 없다. 두 아들과 놀다가 아들 셋을 상상하면 단숨에 셋째 생각이 쏙 들어간다. 또한 딸을 낳기 위해 계속 낳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들 셋... 상상하기 힘든 세계가 펼쳐지겠지... 또 다른 차원의 모습이겠지. 아들 둘을 키워보니 아들 셋 가진 집을 보면 대단함을 넘어 존경스럽다. 아들 셋... 뭔지 모르게 걱정이 앞선다.
첫째 때와 다르게 아내를 챙기지도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가 쏠려있다. 솔직히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 쪽으로 더 기울어진 것 같다. 아내와 이야기할 틈도 없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정신이 없다. 아이들과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난다. 아이들을 재우면 9시, 그때부터 손가락 까딱 하기 싫어진다.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다.
아내의 몸과 마음이 아플까 봐 걱정이다. 셋째 생각을 접은 가장 큰 이유다. 욱신욱신 아프고 저리는 손목과 발, 뭉탱이로 빠지는 머리카락, 앉았다 일어설 때 허리가 아픈지 "아이고"라는 하는 혼잣말, 아이 돌보느라 건너뛰는 끼니, 제대로 자지 못하는 잠, 피곤에 피곤을 짊어진 모습, 경력 단절로 인한 불안감, 육아 스트레스... 무엇보다 또다시 10개월의 임신의 과정을 보내게 할 순 없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아이가 생기면 당장 차도 바꿔야 한다. 5명은 승용차로 감당이 안된다. 지금도 챙겨야 할 짐이 많은데... 가방이 아니라 케리어를 끌고 다녀야 할 생각에 와우!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집도, 옷도, 놀잇감도, 먹을거리도... 지금 나의 벌이로는 감당이 안된다. 아무리 아이가 알아서 큰 다지만 아닌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일만 하다, 빚만 갚다 나이만 들겠지 하는 생각에 확실히 접게 되었다.
둘로 만족해야겠다. 자식 욕심은 없었어도, 딸 욕심은 있었는데... 이만 나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두 아들을 살가운 딸처럼 키우는 게 빠르겠단 생각을 했다. 엄마와 데이트를 즐기는 아들로 키워야겠단 생각을 했다. 사실 아들이라고 해서 다 무뚝뚝한 게 아니요, 딸이라고 해서 다 살가운 것도 아닌 것을, 그냥 지금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두 아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면 될 일이었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둘째는 장모님찬스, 단둘이 떠난 나들이 무엇보다 아내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없을 이 시기에 아이들 키우느라 젊음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아이들을 빨리 키우고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고, 산책도 하고, 아이들 맡기고 여행도 가고, 운동도 취미생활도 같이 하고 싶다. 동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더라도 아내에게 집중하고 싶다. 더는 둘만의 시간을 미루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