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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Oct 15. 2019

여행의 이유, 육아 때 후회하는 것들 중에

"아들과 지리산다녀왔어요."

아버지에게 아들과 함께 지리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자랑하듯 꺼냈다. "아버지, 저 아들 잘 키우고 있죠?" 칭찬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정이라도 받을 요량이었다. 사실 말을 꺼낸 본심은 그랬다. 나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던 아버지는 다짜고짜 "자주 다니는 게 아니냐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잘 다녀왔느냐?, 유호는 좋아하더냐?" 이 말을 기대했는지 몰라도 듣는 내내 불편했다. 쏟아내는 아버지의 잔소리는 한마디로 "어린 나이에 자주 데리고 다니면 버릇 나빠진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글 쓰는 지금도 아버지가 그렇게 역정내실 이유였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단지 본심을 몰라주는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만 남는다는.


종종 아들과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다. "어차피 어린데 아이가 기억하겠느냐, 기억 못 하는 나이에 가는 여행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런 이유로 아이와 여행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공감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우연히 아들과 갔었던 장소에 다시 가게 되는 날이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호야 여기 온 거 기억나?"라고 물어본다. 아들의 대답은 그때마다 달랐다. 기억이 난다는 장소도 있었고 모르겠다며 새로워할 때도 있었다. 사실 어른들도 매일매일 새롭고 선별해서 기억하는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강렬하게 각인되지 않고서야 기억 못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아들과 여행 가는 이유, 앞으로도 갈 이유는 이렇다.


집안에서만 노는 것도 하루 이틀

아들이 크면 클수록 집안에서 노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딱 세 살 무렵이었다. 아들은 집안에만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들은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다. 아이의 기질이 한 몫했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 좁은 집안을 답답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다. 비가 오거나 외출하지 못하는 날이면 그 한계를 더욱 절실히 느꼈다. 충분하게 쓰지 못한 에너지는 떼쓰는 일에 빌미로 돌아왔다. 신나게 놀면서도 금방 지루해했고 사소한 일에 보채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집에서 놀 때 아이와 실랑이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아파트에 살면 스트레스는 더 심하다. 뛰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남자아이라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끄러우니 살살 걷자"라고 타일러도 그때뿐이다. 돌아서면 뛰어다니는 아들에 두 손 두 발 다 든다. 뛰고 싶은 아이도, 뛰지 말라고 결국 혼내는 부모도 스트레스이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첫째의 하루 에너지 총량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았다. 분명 하루 종일 집 밖에서 실컷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집만 보이면 안 가겠다고 했으니. 이런 아들 덕에 자연스럽게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발달을 촉진하는 여행

뇌는 우리 몸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 여행은 아무래도 낯설고 귀찮다. 불편하다. 반면에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여행 나름이겠지만. 어쨌든 여행 자체가 오감을 자극하기에 뇌 발달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집 밖에 널렸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들은 여행을 하면서 평소 책으로만 봤던 곤충, 동물, 탈 것들을 실제로 봤다. 한 예로 아들은 어려서부터 중장비를 좋아했다. 여행을 하다 중장비나 탈 것을 보면 타요타요와 연관 지어 타요의 버스, 엘리스의 구급차, 빌리의 불도저, 포코의 포클레인, 크리스의 레미콘 캐릭터 이름을 술술 말할 정도였다.(지금은 중장비에서 또봇 V로 관심사가 바뀌었지만)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그림 카드, 책으로로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직접 보는 것이 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가끔 아들이 나가는 말로 "여기 갔었잖아!" 제차 확인한다. 그날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묘사하진 못해도 분명한 것은 퍼즐의 조각처럼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들에게 그때 어땠는지 물어보으면 아들이 기억하고 말한 장소는 모두 좋았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아들은 지난 여행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때 느꼈던 행복감을 추억하고 떠올리는지 모른다.


친밀해지는 아들과의 관계

아이와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은 아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다. 도시락과 여행에 필요한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 기분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설렌다. 약간의 설렘, 기대, 흥분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와 같다. 자연스럽게 대화와 스킨십이 는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들과 먹는 재미가 솔솔 하다. 휴게소에 들러서 한 손에는 소떡소떡을, 다른 손에는 호두과자를. 여행하며 맛집에 들르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이것은 나의 만족도를 위하여) 밖에서 먹을 뿐 밥상머리 교육이라 생각한다. (부작용은 너무 일찍 외식에 눈 뜬다는, 휴게소 가지는 아들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여행은 함께 이야기를 쌓는 과정이라 친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어려서부터 관계를 쌓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나중으로 미루다간 영영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 부모의 울타리에 벗어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초등학생만 돼도 부모와 함께 다니기를 꺼려한다. 그때 섭섭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이 입장에서 부모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십 대가 되면서 부모보다 친구들과 시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건강하게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함께 하지 않는데 과연 다음이 있을까.


오늘도 아이들과 이별 중이다. 언제 나의 품을 떠날지 모르는 마당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않으면 언제 즐길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해온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사소한 행복을 미룰 수 없다. 아이들과 지금 아니면 아니기에, 오늘도 여행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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