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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Oct 24. 2018

지리산 종주로 보는 인생수업 「관계」

산행도 관계처럼 하나하나 쌓는 과정이다.

  이 학교에서의 근무는 올해가 마지막이다. 바나나 공모전은 그런 나에게 그동안의 일을 정리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 고민했다. 사례관리 이야기는 자신이 없었고 지역사회와 함께 한 네트워크 이야기는 이야깃거리가 부족했다.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나의 경험을 써야했고 고민 끝에 지리산 종주에 대한 글을 쓰기로 정했다.  


2018년 마지막 산행을 앞두고.

  30살이 되던 어느 여름, 울적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어느 때보다 서른 살의 무게는 남달랐다. 나의 감정을 종잡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우울했다. 20대가 끝났다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했다.(그때 내가 왜 우울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먼 산만 바라봤고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선장처럼 갈피를 못 잡고 한숨만 쉬었던 것 같다. 

나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서른 살, 혼자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한 뒤 산을 좋아하게 됐다. 울적할 때 바다를 보면 더 차분해지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산은 바다와 달랐다. 산행은 힘이 들어도 오히려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산이 좋아졌다.


  “학생들과 함께 산에 오면 어떨까” 


  등산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엄두 나지 않았다. 학교는 안전사고에 민감하다. 또한 학생들이 힘든 산행을 좋아할까 걱정했다. 내가 망설인 가장 큰 이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프로그램 완성은 선생님의 도움이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과학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산을 좋아하세요?"라고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선생님은 이전 근무를 했던 학교에서 학생들과 산에 자주 갔다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오래전부터 학생들과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때다 싶어 그 해 바로 사제동행 등반을 기획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생각에 그쳤던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었다.

피 튀기는 대피소 예약하기

  지리산 종주를 위해서는 대피소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을 위해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사전 추첨 발표하는 날이면 로또 번호 기다리듯 긴장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등산이라는 보도 자료를 봤다. 산에 가면 단풍이 물들 듯 알록달록, 형형색색 다채로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어쨌든 첫해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계획했던 코스는 성삼재 휴게소에서 중산리 매표소로 가는 방향이었다. 주로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하지만 이미 예약이 완료되었고 선생님과 고심 끝에 계획한 코스 반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가보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은 걱정된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한마디로 경험이 없어서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은 지혜가 된다. 결과적으로 반대로 간 코스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나은 결정이었다. 천왕봉을 첫날에 오르니 남은 이틀은 하산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래도 종주는 종주다. 어떻게 가든 종주의 길은 힘들다.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갔다면 3일 동안 계속 오르는 산행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산속에는 산속 법칙을 따라라

  지리산 2박 3일 종주하는 동안 짐과 쓰레기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걷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플라스틱으로 된 일회용 숟가락, 나무젓가락을 한 개씩 나눠주고 3일 동안 쓰도록 했다. 명분은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기였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사실 평소에 쉽게 쓰고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3일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한 노력은 절제하는 법을 배우게 했다. 


  산에는 계곡물이 전부다. 세제도 사용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설거지는 꿈도 못 꾼다. 그랬다간 벌금이다. 먹었던 식기는 휴지나 물티슈로 대충 휙휙 닦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양치는 치약을 사용할 수 없어 소금이나 계곡물로 해야 한다. 세안도 마찬가지다. 계곡물로 대충 씻고 마는 것이다. 눈곱과 정리 안 된 머리,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이 자연스럽다. 3일 동안 같은 양말, 속옷, 등산복을 입는 경험은 평소 못하는 경험은 신선하고 즐거움을 준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모든 것이 평온하다.


서로 도와주기

  지리산 2박 3일 종주에 참여하는 학생의 특징은 학교 부적응 학생, 또래관계가 어려운 학생, 학교생활 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 등 참 다양하다. 자의든 타의든 학교라는 공간에서 평범함을 벗어난 학생들이다. 대체로 이기적이면서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하다. 하지만 산행을 하면서 학생과 학생 사이, 선생님과 학생 사이가 끈끈해진다. 마실 물 챙기기, 속도가 느려진 친구와 함께 걷기, 개인으로 나눠 준 사탕, 초콜릿 친구 주기, 오르기 힘들거나 내려가기 험한 길은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 산행은 서로를 챙기게 하는 마법이 있다.


선생님과 추억 쌓기

  지리산 종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밥 먹기다. 선생님이 직접 차려준 밥상을 받아 볼 기회다. 끼니 때움은 힘든 산행의 고단함을 녹여 준다. 산속에서는 콩자반, 멸치볶음도 맛있다. 재료도 충분하지 않고 조미료도 없다. 양치질하기 위해 준비한 소금이면 충분하다. 투박하게 썬 재료를 한데 모아 끓이면 근사한 된장찌개,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햇반에 후루룩. 하루 중에 가장 빨리 끝나는 시간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식사 준비를 하게 했다. 팀별로 재료만 나눠주면 알아서 먹는 것이다. 당연히 먹고 난 다음 생긴 쓰레기는 팀 몫이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자연 이야기

  선생님의 효과다. 인솔자 선생님 중에 과학 선생님이 있다. 이 선생님은 평소에 숲 해설에 대해 해박하시다. 산행 중에 학생들에게 지리산에 핀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들려준다. 꽃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부터 모양, 특징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한 번은 어떤 잎을 뜯어 손으로 비비더니 학생들의 코에 댄다. 신기하게도 금방 냉장고에서 꺼내 썬 시원한 수박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은 침이 꿀꺽 넘어간다. 산행은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풀, 꽃, 나무를 유심히 관찰할 기회다.

산행하는 사람과 인사 나누기

   산행을 하면 특별한 경험을 한다. 자존감이 오르는 경험이다. 산행하면서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은 한결같다. 모두 긍정적인 말이다. 낯선 사람과의 인사 나누는 경험, 그 낯선 사람으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와! 중학생인데 종주를 하는 거야?”

“참! 대단하다.”

“멋지다.”

“수고해라.”

“좋은 경험을 시켜주는 선생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들을 듣고 뿌듯해하는 학생들을 보면 한 가지 확실 것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듣는 따뜻한 말, 긍정적 지지는 힘든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이유이다.


새로운 면 발견하기

  인솔하신 선생님이 평가회 자리에서 늘 하는 말이 있다.


“그 학생의 새로운 면을 봤다”는 것이다.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문제아라고 찍힌 학생은 왜곡되고 편향된 시선으로 보기 쉽다. 그 이유는 학교 안에서의 모습, 경험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과의 관계가 대부분 통제하고 통제받는 관계다. 하지만 학교에서 벗어난 산속에서는 인생을 먼저 산 선후배의 관계가 된다. 3일 동안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서로의 오해가 걷어지는 순간이다.


  산행에 참여한 학생 중에 등교를 거부해서 담임 선생님의 골치 아프게 했던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대피소에서 가장 빨리 일어났고 누구보다도 지도를 잘 따랐다. 다른 학생은 무기력해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의지박약이라고 듣던 학생이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를 끝까지 해냈다. 


  산행을 하면서 선생님들은 학생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평상시 알았던 모습이 아니다. 유쾌한 당황스러움이다. 평가회 자리는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반성의 자리가 된다.

산행은 관계처럼 과정이다.

  산행은 정상을 오르기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하나의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에  따라 박수받는 것에 익숙하다. 학교는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성적이라는 정상에 오르는 자와 낙오한 자로 구분 짓고 평가할 뿐이다.


  학교 밖 산행은 다르다. 비록 올라야 하는 정상, 하루에 걸어야 할 목표는 있지만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주변을 살핀다. 함께 오르는 친구를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라야 한다. 평소 무관심했던 꽃, 나무, 자연을 눈여겨본다. 산에 오르면서 계곡 물소리, 산새 소리, 매미 울음소리, 이야기 소리들이 아름다운 선율이 된다. 오직 정상만 생각하고 앞으로 내딛는 걸음만 집중하지 않는다. 주변을 살피는 과정을 매일매일 쌓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정상에 오른 자신을 발견한다. 산행도 관계도 매일매일 쌓는 과정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선생님들과의 약속

  올해 마지막으로 지리산 종주를 마쳤다. 아쉬움이 크다. 다음 근무할 학교에서 학생을 데리고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서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산행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섭섭함이 밀려왔다.

  지리산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 일출을 보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처음 갔었던 것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만에 일출을 봤다. 처음과 두 번은 비가 와서 흐린 날씨에 보지 못했다. 세 번째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해가 구름에 가려 한참 뜬 다음에야 볼 수 있었다. 올해는 달랐다. 드디어 지리산의 눈부신 일출을 봤다. 서서히 오르는 태양을 보며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마지막일 수 있어 일출을 허락 해주나” 싶었고

"그동안 애썼다"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3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생각이 닮아갔다.


학생 주변에 든든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한 명만 있다면 희망적일 것이다.

  이 믿음은 3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산행을 하게 했다. 10월 27일, 마지막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산행을 마지막으로 3년 동안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한 산행은 끝난다. 하지만 산행을 통해 공감했던 믿음, 가치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한 가지 바람은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각자 있는 곳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물하는 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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