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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Feb 13. 2020

유괴범으로부터 아이 지키기

"유괴가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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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이 유괴가 뭔지 아냐며 물어봤. '나는 유괴를 아는데' 그런 익살스러운 표정뭔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아들의 대답이 궁금했고 도리어 유괴가 뭔데? 되물었다.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아들은, 자신 있게 물어보는 이유가 있었다. 아마 그날 어린이집에서 유괴 예방교육을 한 모양이다. '유괴는 다른 사람이 데려가는 거야!' 솔직히 유괴를 정확히 이해한 아들의 대답에 놀랐다.  


거실 너머로 들리는 아들과 아내의 대화.

그날 저녁 아내는 아들과 역할 놀이를 했다.  


유호야! 햄버거 사줄게 같이 갈래?

아내는 아들을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치의 망설임 없이,


'네!' 대답하는 아들.


역시나... 먹을 것 앞에 장사 없었다.


그 후 아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아들과 역할 놀이를 했다.


음. 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낯선 아저씨로 빙의했다.

(오히려 상냥하게) '엄마, 아빠가 유호 데리고 오래. 아저씨랑 같이 가자!'

그전 엄마랑 연습한 효과였는지 몰라도, 아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단호하게) 악! 소리치면서 팔을 엑스 모양으로, '안돼'라고 말하는 유호.

 오~ 아들의 단호함에 웃기면서도 감탄했다.


역할 놀이가 재밌었는지 또 해달라고 하는 아들, 다른 목소리로 바꿔.

(다급한 목소리로) '유호야 지금 엄마, 아빠가 다쳤어, 아저씨랑 같이 병원 가자!'

속으로 엄마, 아빠가 다쳤다고 하면 넘어오겠지 싶었다.(안 그러면 서운할지도 몰라)

'아~ 방패! 소환' 예상과 다르게 또다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넘어오는 아들에 결국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전열을 가다듬고) '아저씨가 유호 주려고 피자, 통닭 사 왔어! 차에 있는데 같이 갈래?'

살짝 흔들리는 동공. 아들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몇 초간 망설였다. 거의 넘어온 것 같아 다시 재촉했다.


'유호가 좋아하는 피자몰 갈 건데 같이 가자' 아니나 다를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답했다.

장난치듯 큰소리로 '네!', 먹을 것에 넘어간 자신도 민망했는지 웃음이 터졌고 한바탕 같이 웃고 말았다.  


먹을 것 앞에 무너진 아들이 웃겼다. 어째서 엄마, 아빠가 다쳤다고 했을 땐 단호하더니 고작 통닭, 피자 유혹에 넘어갔는지. 아이는 아이일 뿐 장난스럽게 놀이하듯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안 벌어지리란 법은 없었다.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데 안 따라가고 배길 아이가 있겠는가. 웃음기 빼고 '엄마, 아빠도 모르고 유호도 모르는 사람이 가자고 하면 절대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따라가면 엄마, 아빠를 못 볼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그럼 아는 사람은 괜찮은가? 순간 말을 이어가다 동네 아는 사람, 아이와 친한 사람도 위험할 수 있단 생각에 순간 말을 멈췄다.


아이 눈높이 맞춰 설명하기 어려웠다. '엄마, 아빠가 누구한테 부탁해서 유호를 데려오진 않아! 누가 됐든 같이 가자고 하면 안 된다고 해야 해!'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이한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 도와달라고 하면서 가자고 하면 어려서 못 한다고 해야 해!'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아들은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라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적다. 어릴 때부터 인사를 잘했던 아들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기 스타였다. 그래서 무작정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란 말 같아 마음이 더 불편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낯선 사람, 알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한테 경계하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 처음에는 인사를 재촉했다. 따라 하길 바라며 아들 보란 듯이 의도적으로 먼저 인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의 마음을 존중하고 기다린다. 크면 클수록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어쩌면 아들은 자신을 지키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들. 긴장감과 경계심,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이해심 그 사이에서 자유롭게 컸으면 좋겠다.  


tip: 아이는 놀이로 배우는 것 같습니다. 놀이하듯 역할극 하면 더 빨리 배웁니다. 의도된 행동을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할 때까지 계속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아이가 크면 클수록 발연기도 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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