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i파파 Feb 29. 2020

만약 아내가 셋째 임신 테스트기를 내밀어도

# 첫째의 기억

2015년 가을이었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이른 아침, 작은 스티로폼에 있는 상추 모종에 물을 주고 있었다. 상추 모종은 옥상 텃밭에 관심 있었던 어느 지인이 베란다에 심어보라고 준 것이었다. 사실 중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 텃밭을 하고 있었고, 상추 키우는 것에 거부감 없다. 꽃상추, 담배상추로 기억한다. 그날도 여김 없이 일어나자마자, 자식 돌보듯 물을 주었다. 상추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모습어이없었는지 내는 내다 버리라고 했고 나는 자식 같다며 웃어넘겼다.

초음파 사진에 콩만해서, 달콩이 유호

아내가 뭔지 모르게 분주해 보였지만 이상한 낌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날도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상추 모종에 물을 흠뻑 주고 다시 거실로 들어오는 나에게 아내 무언가를 내밀었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그때까지 왜 보여주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눈치 없는 남편이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두줄. 두줄? 두줄이 임신이었던가 순간 헷갈렸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내를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상추 자식 키우지 말고, 이 자식 키워!


아내는 답답했는지 "임신이라고! 임신이야!" 임신했다고 알려줬다. 그 순간 남편으로서 점수 딸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물개 손뼉 쳤을 것이다. 그때 아내를 와락 끌어안고 뜨거운 키스를 했어야 했다. 설렌 마음으로 임신 소식을 전하는 아내와 달리 눈만 끔벅끔벅, 꿀 먹은 벙어리였다. 아내는 나의 반응에 실망했다고 했다.(이 말이 두고두고 생각날지 그땐 미처 몰랐다.) 만약 둘째를 임신한다면 꼭 이날 치욕을 되갚아주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 둘째의 기억

2018년 6월 여름이었다. 아내와 3박 4일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풍림 다방으로 기억한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현무암 돌담이 이쁜 아담한 커피숍이었다. 수요 미식회에 나온 맛집이라 갔다. 빨간 페인트칠된 돌에 새겨진 풍림 다방. 원목 인테리어 따뜻한 느낌깊은 커피 맛어우러졌다. 녹색 커피잔 풍림 브레붸와 파란 커피잔 풍림 티라미슈를 마셨다. 다시 제주도에 간다면 꼭 들리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아내와 나는 우두둑 슬레이트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껏 분위기를 냈다.

제주의 주 전주의 주, 주주의 지호

첫째가 태어나고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결혼 전 데이트하는 기분이랄까. 제주도는 잠자고 있는 연애 세포를 깨우기 시작했다. 여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 미래 계획까지 다. 포스트잇에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하는 아내. 끄적끄적 쓰는데 집중하는 나에게 아내는 선물이라면서 봉투 하나를 툭 건넸다. 임신 테스트기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다 계획이 있었다. 째 때 놓친 기회가 다시 왔다. 이 순간만을 벼르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리바리했던 첫째 때와 다르게 임신임을 바로 눈치챘다. 그렇지만 기껏 아내에게 다는 말이. (담담하게) 두줄이구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차 확인한 것 전부다.


마음 준비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첫째 때는 갑작스러웠다고 쳐도 둘째 어떻게 반응을 할준비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알고도 당한 셈이다.


핑계 대자면 둘째만큼은 계획 임신이었다. 첫째와 3년 터울로 낳고자 내와 전투적으로 시도를 지만 계획대로 임신되지 않았고 그렇게 몇 개월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제야 임신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어쨌든 캄캄 무소식으로 심하고 말았다. 상하지 못한 테스트기 적나라한 줄은 결국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삼세판 이랬던가! 만약에 신이 내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면. 황하지 않고 그 순간 감격만큼은 확실히 표현하고 싶다. 어리바리한 표현으로 한 평생 잊지 못할 그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이 글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아내일 것 같다.) 출산 후 산후조리에만 신경 쓰도록 모든 것을 쏟을 거다.


낭만 쏙 빼고, 웃음기 빼고 정말 상상해봤다. 아내가 셋째 임신 테스트를 내밀면 어떨지...


내밀어도...(다음  기대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는 육아에도 치명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