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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06. 2020

자신의 이름에 관심 보이는 아들에게

아빠! 아빠! 저기 전유호야!


오랜만에 아들과 차를 타고 외출을 했다. 카시트에 앉아 있던 아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빠 저기 전유호야, 전유호!" 처음에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응? 전유호?"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다시 한번 "저기! 저기! 봐봐" 손가락으로 다급하게 가리키며 "저기 전유호잖아!" 말하는 아들. 재촉하는 아들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더니, 약국이었다. "저게 왜 전유호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전.주 약국


"아~ 전주 약국!" 그제야 아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전주 약국의 전. 전유호의 전.이었다.


아들이 네 살 때였다. 보드판에 아들 이름을 써서 처음으로 보여줬다. 그 뒤로 틈만 나면 보드판에 아들 이름을 써서 보여줬다. 한 글자 한 글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들의 이름을 불러줬다. "전. 유. 호. 이 글자는 유호 이름이야!" 내친김에 가족 이름도 알려줬다. "이것은 아빠 이름이고, 이것은 엄마 이름이고, 이것은 동생 이름이야!" 글자를 알면 이름도 읽을 수 있다며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눈과 귀로 글자를 익혔다.

지금은 손도 가세했다. 제법 자신의 이름 쓰는 아들. 생각해보면 색연필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때부터 빠르게 익힌 것 같다. 처음에는 색연필을 주먹 쥐듯 잡았다. 마치 붓글씨 쓰는 것처럼. 어색하고 잔뜩 힘이 들어간 손놀림으로 쓴 글씨는 한참 들여다봐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글자가 아니었다. 아무렇게 휘날린 선에 불과했다. 하지만 끄적끄적 낙서하거나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수록 손놀림도 정교해졌다. 어느 순간 색연필도 어른처럼 잡았다. 안정감이 더해진 글쓰기는 낙서와 다름없었던 선에서 누가 봐도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되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고 한글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에게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이름 찾기에서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놀고 있다. 말 잇기 게임. 전유호의 전, 전주의 전은 같아. 전유호의 전, 전화기의 전과 같아. 전유호의 유, 우유의 유와 같아. 전유호의 호, 호랑이의 호와 같아. 이렇게 놀이처럼 말을 잇는다.


새로운 단어를 말하는 아들의 반응을 보면 나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있다. 같은 글자의 다른 단어를 연상하는 놀이는 생각하는 힘도 키우는 것 같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쥐여 짜듯 단어를 말하는 것을 보면 한글 배우기에 효과적인 것 같다. 아들은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을 보며 부쩍 컸다고 느꼈다. 초등학생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서툴지만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이다음에 아들이 커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나름 주어진 사명에 걸맞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들의 이름을 한자 뜻대로 풀면 전유호는 "온전히 세상을 온화하게(이롭게) 다스리다."다. 이름의 뜻처럼. 비록? 세상을 다스리진 못 하더라도 세상에 온화하게, 이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들아! 네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이름처럼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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