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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26. 2020

강제 유대인 부모처럼

언제 TV를 봤는지. 2주 동안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못 보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TV를 보고 싶으면 온 가족이 굳이 처가댁에 간다. 첫째 역시 '할아버지 찬스'를 노리는 것이 웃기다. 


강제로 TV 끄기를 당했다. 범인은 바로 둘째다. 


지호가 TV를 깼어, 화면이 안 나와.


퇴근 전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 뭔지 모를 불길함이 밀려왔다. 아내의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오빠! 지호가 TV를 깼어" TV 앞에서 놀다가 들고 있던 장난감을 화면에 내리쳤다고 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왜 하필 TV인지 이제 갓 돌 지난 아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아! 육퇴 후 삶의 낙이 사라졌다.


신혼집 꾸밀 때 집에 TV를 놓지 말자는 아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사실 나는 TV 보기를 좋아한다. 결혼 전 퇴근 후 잠들기까지 TV를 봤다.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특히 드라마 본방사수를 지켰다. 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죄다 저녁 11시 이후에 하는지 거의 자정을 넘겨서 잤다. 누워서 TV 보기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랜 취미 생활이다.


TV를 놓지 말자는 아내와 그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팽팽한 줄다리기. 결국 윈윈 하기로 했다. 새로 구입하지 않고 아내가 쓰던 TV를 가져오는 조건과 TV 보는 요일과 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그것도 얼마나 감사하던지. 


첫째는 두 돌이 지났을 때부터 TV를 보여줬다. 하루에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보여줘도 청소할 때, 외출 준비할 때, 밥 먹일 때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보여주지 않았다. 그마저 아기 상어, 뽀로로, 안녕 자두야, 엄마 까투리가 전부였다.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부터 헬로카봇, 또봇 V, 미니 특공대로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 로봇 만화로 진화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첫째에게 절제력이 생겼다. 원래 보기로 했던 약속 시간보다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끄자고 하면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직접 TV를 끈다.


약속 시간 5분 전, TV를 꺼야 함을 미리 알려줬다. 이제 꺼야 할 시간이라고 아들에게 알려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했다. 아이가 크면서 방법이 달라지긴 했다. 아이가 주도하면서부터 "이것 까지만 보고 끌 거야!" 협상하면서 버티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자막까지 다 봤지만 그래도 아들은 자제하려고 애썼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의 TV 보기 규칙이 깨졌다. 잘하던 절제도 동생이 있으니 TV 끄는 것을 힘들어했다. 떼가 심해졌다. 둘째 밥 먹일 때, 씻길 때, 재울 때 어쩔 수 없이 보여준 것이 그동안의 패턴을 깬 것이다. 

두 아들, 참 가관이다.

문제는 둘째였다. 첫째는 다섯 살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TV에 집중하는 둘째를 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TV를 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텔레비전에 무섭게 빠져드는 둘째. 그것이 결코 집중력이 아님을 알기에 더 걱정했다. TV에 무섭게 빠져드는 두 아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갈등이 일어났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TV를 고치지 않기로 했다. 유대인 부모처럼.


거실에 TV 대신 책장을 놓는다는 유대인. 소수 민족인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비결은 교육이었다. 그 밑바탕에는 질문과 토론을 강조하는 가정교육에 있었다. 유대인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토라]와 [탈무드]를 읽으며 토론한다고 한다. 그런 문화로 유대인 가정의 거실은 대부분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라고 한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책을 읽고 지금 당장이라도 TV를 치우고 책장을 사야 하나 싶었다.

집에 텔레비전을 없앴을 때 일어나는 변화는 놀라웠다.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안 봤을 때 생기는 가정의 변화를 조사 연구했다. 텔레비전을 없앤 집의 자녀의 51%가 전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는데, 부모들 중 83%가 '텔레비전을 없앤 효과'라고 밝혔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독서, 놀이, 취미 생활, 운동 순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본문 참고 -

TV를 안 보는데 가장 걸림돌은 나였다. 내가 안 보면 해결될 일이었다. 지금도 고장 난 TV를 보며 아쉬워한다. 지금 이 시간면 해피투게더 할 텐데, 라디오스타 할 텐데. 불금이면 더 곤욕이다. 주말, 육퇴 후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내가 문제였다. 


TV를 안 보는 대신 다른 것으로 채워야겠다. TV가 고장 난 후 지금까지 TV를 안 보는 대신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육퇴 후 허투루 쓰는 시간, 낭비되는 시간이 4시간이나 됐다. 결코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했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 책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서 대화하기, 매일 베갯머리 15분 독서하기, 토론하기가 유대인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유대인에게는 흔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 같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실천하지 않는 이상 현실이 되긴 어려운 것 같다. 오늘부터 강제 유대인 부모처럼 살아보련다. 나부터 실천하면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의 불시착과 미스터 트롯이 끝난 다음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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