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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i파파 Mar 27. 2020

아이의 첫 말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맘마, 까까'였다

드디어 둘째가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집중하고 들어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지만 말하기 첫걸음을 뗐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며칠 사이 알아듣지 못하는 옹알이에서 몇 개의 단어로 진화했다. 아직 열 번 이상 말해줘야 한번 따라 하는 수준이지만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13개월 둘째는 지금 폭발적은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둘째가 가장 먼저 입 밖으로 뱉은 단어는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


오매불망 둘째가 엄마, 아빠 말하길 기다렸다. 유독 말이 빨랐던 첫째 때문에 기대했을까. 둘째에 대한 쓸데없는 기대치가 있었나 보다. 빨리 아빠라고 불리고 싶었다. 까마득해진 첫째 때의 그 감격을 다시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유는 또래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는다는 다소 믿기지 않는 첫 영유아 검진 결과 때문이다. 발달 지연이 되지 않도록 그 후로 더욱 신경 써서 계속 둘째에게 말을 걸어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조급할 필요 없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퇴근하면 바짓가랑이 붙잡은 둘째를 안아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쭉 돌아보며 거실을 보여줬다. 사물 이름 맞추기 게임 시작. 물론 진행도 내가, 맞추는 것도 나지만 말이다. "이것은 뭐예요? 이것은 시계예요.", "이것은 뭐예요? 이것은 TV예요.", "이것은 뭐예요? 이것은 에어컨이에요." 매일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자, 본격적으로 퀴즈 시간이야. "지호야! 시계는 어딨어요?" 두세 번 반복해서 물어보면 손가락으로 어. 응. 옹알이를 하며 가리켰다. 와~ 물개 박수 타임. 환호성을 치고 맞춘 것에 격한 칭찬을 해줬다. 나의 반응에 아들은 신났고 이제는 안기만 하면 자동으로 시계와 TV를 가리킨다.  


한 번은 "TV는 어딨어요?" 몇 번을 물어봐도 아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모르는 건지, 텔레비전이라고 하면 알까 싶어 물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혹시...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뽀로로는 어디서 나와?" 그랬더니 그제야 어. 응. 반응을 보이며 손가락질하며 가리키는 둘째. 맞춘 것보다 뽀로로를 기억하는 것이 더 신기했다. 뽀통령의 위엄을 느낀 순간이었다.(그래서 고장 난 TV를 지금도 안 고치고 있다.)  

거실에 걸려있는 결혼사진. 둘째를 안아 들어 올려 액자 앞에 선 다음 둘째에게 엄마, 아빠를 가리키며 알려줬다. 고사리 같은 아들 손을 잡고 꾹꾹 짚었다. "이건 엄마야! 이건 아빠야!" 매일매일 알려줬다. 제법 엄마, 아빠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눈과 머리와 손이 협응이 되는지 "엄마는 누구야?" 물어보면 비슷한 위치에 손가락을 짚었다. 가끔 부자연스러운 손동작으로 잘 못 짚을 때도 있지만 이제는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눈치다. 사실 둘째는 나와 아내 사진보다 첫째 사진에 먼저 반응을 보였다. "유호 형 누구야?" 하면 액자에 붙어있는 형 사진이 있는 곳으로 돌아봤다. 형을 유독 따르고 좋아하는 둘째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똥을 쌀 때도 말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엉덩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응아 쌌어요? 응아. 응아." 화장실로 가 빨간 목욕의자를 잡고 서게 하고 기저귀를 뜯는다. "응아! 쌌네, 아이고! 냄새." 샤워기로 엉덩이를 씻기면서 "시원하지?(따뜻한 물) 깨끗해졌네, 아~개운하다!" 말해주면 다 씻겨줄 때까지 가만히 엉덩이를 대준다.


동물 울음소리 나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도 수도 없이 틀어줬다. 돼지는 꿀꿀, 오리는 꽥꽥, 강아지는 멍멍. 그중 오리가 가장 정확하다. 내가 오리 하면. 둘째는 꽥꽥. 꽥꽥하면 꽥꽥 따라 한다. 까르르 웃으며 반응 보이는 둘째.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면서 손으로 반짝반짝 표현하는 둘째가 마냥 신기하다.


두뇌의 발달이 급격히 일어나는 13개월에서 20개월 사이에 어휘의 폭발적인 증가가 일어난다고 한다. 둘째는 13개월에 들어섰다. 그래서 둘째가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둘째를 관찰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부쩍 많아진 상호작용에 건강하게 크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둘째의 첫마디는 엄마도 아닌 '맘마'였고 아빠도 아닌 '까까'였다. 먹는 것에 졌다는 것에 내심 서운했지만. 솔직히 쓸데없는 경쟁심으로 아들의 첫마디 아빠였으면 했다. 다른 이름보다 더 많이 알려줬는데 먹는 것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보단 먼저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들아 더 열심히 아빠라고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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